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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속의 진주는 복통, 발열, 황달로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 자라났다. 쥐어짜는 듯한 복통이 찾아오면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 최대한 몸을 동그랗게 말거나 따끈한 찜질팩을 껴안고 뒹굴어야 한다. 37.5도를 가뿐히 넘는 체온은 오한을 동반하여 한여름에도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당기게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앓고났더니 다음 날엔 온 몸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무언가에 제대로 한 방 먹었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3개월에 한번씩 뵙는 의사를 찾아갔더니 혀를 끌끌차며 응급실로 가란다. 병원 정문을 나와서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응급실로 혼자서 터덜터덜 걸어가려니 기분이 묘했다. 응급실엔 들것에 실려가야 하는 거 아닌감?

 

몇가지 검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손등으로 굵은 바늘이 들어오고 이내 항생제와 수액이 투여되기 시작했다. 마음의 준비는커녕 아무런 대책없이 입원실로 옮겨졌다. 물론 병원에선 대책과 계획이 있겠거니....일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배를 움켜잡고 고통 속에 몸부림쳤던 이유가 비로소 밝혀졌다. 담석 때문이었다.

 

1차 내시경 시술. 몸을 엎어놓고 두 손은 묶어놓은 채 얼굴은 오른쪽으로 돌리게 하는, 아주 묘한 자세에서 시술을 당하는 것까진 좋은데 왜 잠은 재우다 마는 걸까? 반수면 상태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지 시술을 하는 의사선생님의 씨근덕거리는 소리가 내내 귓가에 들려왔다.의사선생님도 이럴 땐 보통 사람이구나, 를 확인하니 웬지모를 친근감마저 들었다. 그 와중에 말이다.

 

하필이면 다음 날이 토요일. 주말을 꼼짝없이 병실에서 보내고 월요일에 다시 2차 내시경 시술에 들어갔다. 지난 번에 반수면 상태에서 의사선생님의 투덜거림을 다 들었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제대로 잠을 자게 해주었다. 수면내시경시술이라고 했으면 당연한 일. 그런데 담석내시경시술은 보통 반수면 상태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뭐가 맞지?

 

 

 

 

 

 

 

 

 

 

 

 

 

 

 

 

 

집에서 읽다가 만 책을 갖다달래서 병실에서 마저 읽으려고 노력에 노력을 했건만.... 결국 퇴원하고도 며칠 후에 마저 읽을 수 있었다. 5박6일의 여행도 뒤끝은 5박6일이 가는데 몸 속의 진주를 제거하는 일은 그런 여행 못지않은 회복기간이 필요했다.

 

1901년에 출간된 이 소설을 박진감 있게 읽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리멸렬하지는 않았다. 나름 흥미진진했다. 티벳 스님과 히말라야 얘기라니 읽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주인공인 혼혈 소년 킴의 인도스러움(?)이 특히 생생했다. 인도스러움을 잘 잡아낸 키플링의 필력에 감탄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대단한 작가였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기회였다.

 

나이 든 여자는 보통 남자들보다 훨씬 보수적이지만, 몸도 쇠약해지고 더 이상 부릴 욕심도 없어져서인지 어떤 경우엔 베일을 벗어버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격리되어 살다가 집밖의 이런저런 흥미로운 일들을 겪으면서 그들은 여행 중에 마주치는 소란스러움과 사원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일,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미망인들과 잡담을 나눌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인도에서 이런 식으로 말년을 즐기는, 입이 걸고 의지가 굳센 할머니들 대부분은 오랜 기간 집안에 갇혀 지내온 사람들이었다.   -139쪽

 

번역이 매끄럽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원문을 읽으면 분명 버벅거릴 텐데.

 

 

며칠 동안 병원에 갇혀 있었다고 이렇게 입이 근질근질한데 '오랜 기간 집안에 갇혀 지내 온 사람들'은 어떨까 싶다. 코로나19 는 사람들 입을 얼마나 걸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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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6-2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짝 놀랐습니다. 수술 전에도 많이 아프셨을텐데, 수술까지 반수면상태에서 받으셨다니 세상에나. 내시경시술이 2차에 걸쳐 이루어지는군요.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신건가요? 1년 전 부터 생긴 통증이었다니, 진즉 병원에 가보실 걸 그랬어요.
담석은 제거하고도 또 생기는 경우가 많다던데, 조심하시고요.

nama 2020-06-29 13:32   좋아요 0 | URL
2차에 걸쳐 이루어지는 건 아니구요. 저는 1차에 실패헤서 2차까지 간 거예요.
예전부터 위염으로 고생해서 그런 줄 알았지요. 황달까지 오고나서야 놀랐답니다.
앞으로 또 생긴다면 그땐 담낭제거를 해야하지 않을까싶어요.
고맙습니다.^^

파이버 2020-06-2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번이나 수술하시다니 엄청 고생 많으셨겠어요... 다시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추천해주신 책은 번역이 좋다고하시니 끌리네요 보관함에 담아두겠습니다

nama 2020-06-29 14:06   좋아요 1 | URL
수술과 시술은 다르다고 하네요. 수술은 피부나 점막 등의 조직을 절개하거나 절단하여 병을 고치는 거고, 시술은 기구를 이용하되 수술보다는 가벼운 거라고 해요.
저는 시술이었으니, 그것도 수면으로 하는 것이라 고생은 하지 않았어요. 다만 위내시경보다는 강도가 훨씬 세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금식 상태를 견디는 게 힘들어요.

서니데이 2020-06-2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담석 많이 아프다고 들었어요.
병원에서 입원해서 치료받으시느라 고생많으셨겠어요.
시술 잘 되셔서 빨리 건강 회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nama 2020-06-30 12:38   좋아요 1 | URL
네. 지금은 괜찮아요.
담석이 맹장염처럼 흔하다고 하네요.
복통, 발열, 황달. 이 증세를 기억하면 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끝나는 식물이 있다. 

 

 

한겨울의 스산한 거리를 그나마 아름답게 장식하는 용도로 인위적으로 옹기종기 심어놓는 식물이 꽃양배추이다. 보라색이나 노란색의 꽃양배추는 모양 자체가 꽃이어서 한겨울의 삭막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꽃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그러다가 날이 풀려서 봄 기운이 무르익으면 생기를 잃어가며 썩고 문드러져서 몰골이 흉하게 무너져내린다. 그런 꽃양배추의 최후는 언제 보아도 처참한 모습이다. 꽃양배추의 생애가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동네에 곱창구이집이 있다. 어딜가려면 늘 그 식당 앞을 지나가게 마련인데 언젠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두 개의 화분이다. 한겨울에 보라색 꽃양배추가 있던 자리에 어느 순간부터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주인이 게으르군.'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꽃을 심으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치곤 했는데 어느 날 노란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양배추가 저런 예쁜 꽃을 피우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겨울 장식용으로 여겼을 뿐, 그것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꽃양배추는 그저 일회용품과 다를바가 없었다. 잠시 인간의 눈요기로 생명을 유지하다가 아름다움이 다하면 가차없이 뽑혀버리는 꽃이다. 그런데 저 노란꽃을 보고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생명이었구나. 느긋하게 기다려주면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우는구나. 미안하구나.

 

 

딱 한 번밖에 들어가보지 않은 곱창구이집이지만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져서 잠시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집 곱창구이는 맛이 좀 없던데.... 솜씨가 별로였는데... 나의 입맛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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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에 소재한 독립서점 <책방내심>에 다녀왔다. 집에서 약 13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접근하기 쉬운 곳은 아니다. 

 

도착시간은 오전 11시 55분. 개점시간은 12시. 문이 닫혀 있다. 과연 12시에 문을 열기는 할까? 길가에 서있다가 12시 5분에 갔더니, 오호, 문을 열었다. 정확하게 시간을 지킨다.

 

 

다른 건 몰라도 저 간판만은 눈에 잘 띈다.

 

 

 

입구

 

 

 

 

 

 

 

 

 

 

 

 

방명록 비슷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곳.

 

 

 

 

 

담배갑 크기와 모양의 책들.

 

 

 

시흥에 살고 있는 시인의 시집. 망설이다 패스.

 

 

 

서점주인의 품격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의자.

 

 

 

우리집 거실도 저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오래오래 살아남는 책방이 되길 기원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나: 나도 저런 책방 해보고 싶다.

남편: 저런 거 하려면 스카프 같은 것도 멋지게 두르고 품위도 있어야 하는데...

나: 당신 말처럼 만화방에서 라면 끓여야겠네.

남편: 처음엔 그렇게 봤는데 이젠 알지,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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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일상이 '잠시멈춤'한 이 시국에 맛집 이야기를 꺼낸다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것과 같은 눈총 받을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먹지 말라면 먹고 싶고, 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가지 말라면 가고 싶은 마음이 가슴 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인스타그램에 가끔씩 사진을 올리고 마음에 드는 사진에는 기꺼이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하지만, 맛집 사진에는 절대로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을 갖고 있는 내가 새삼 맛집 소개라니..

 

퇴직 3년 차. 운동화 한 켤레로 사계절을 버티고, 머리 염색과 파마를 하지 않으며, 옷도 최소한으로 구매하고, 책마저도 도서관 대출로 해결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으니 맛집 탐방 같은 건 내가 즐겨하는 일이 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여행· 모임 · 실내체육 · 유흥가 출입 등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독려하는 유례없는 이 시국에, 아니 그런 시국이기에 슬쩍 먹는 얘기 하나쯤 하고 싶어지는 건 뭘까.

 

 

 

 

 

 

 

 내가 이 식당에 처음으로 간 건 대학4학년 교생실습 때 지도교사를 비롯한 몇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였다. 1982년 봄이었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지? 이 식당은 원래 오산미군기지 앞 송탄 재래시장 내 깊숙한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숱하게 돌아다닌 동네였는데도 이런 식당이 있고 이런 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그 시절엔 외식이라야 학교 졸업식날 짜장면 정도 먹는 게 전부였으니까. 부대찌개 속에 넣는 햄이나 소시지도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재료가 아니었다. 미군부대와 끈이 있거나 돈이 있는 집이나 접할 수 있는 외래 음식이었다. 물론 이와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 꿀꿀이죽이라고 미군부대 식당에서 잔반처리한 음식을 한꺼번에 넣고 끓인 음식인데 모양새는 카레 비슷하고 특유의 이국적인 향이 있었다. 어쩌다가 담배꽁초를 집어내면서도 모른 척하고 먹는 구황음식이라고나 할까. 이따금 꿀꿀이죽을 파는 손수레가 들어오면 바가지를 들고가서 사왔던 기억이 난다. 이것에 비하면 부대찌개는 고급 음식이었고 미군부대 근처에 산다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고향을 둔 나로서는 '고향'하면 이 음식부터 떠오른다. 이북 출신이었던 부모님의 고향 음식은 맛있기는 했지만 내 고향 음식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 부대찌개를 집에서 해먹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한번도 우리 집에서 부대찌개 냄새를 풍긴 적이 없다. 그럼에도 고향 음식이라고 말하는 건 송탄이라는 지방 소도시에 있던 나의 본가가 팔려서 이제는 남의 손에 들어가 돌아갈 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50여 년 간 우리집이었던 공간이 사라지는 경험은 어딘지 서글프고도 쓸쓸한 눈물 맛이난다. '50주년 기념'이라고 써붙인 저 플래카드를 보고 '50'이라는 숫자에 자꾸 눈이 가는 것도 사라진 옛집에 대한 추억 때문이리라. 돌아갈 고향집 대신에 돌아갈 음식점 하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다. '다음 50년' 동안 돌아갈 곳이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렸을 적 먹던 꿀꿀이죽이 그립다. 허기를 달래주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던 꿀꿀이죽. 다시는 먹어볼 수 없는 꿀꿀이죽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집. 그 쓸쓸한 추억을 저 부대찌개로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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