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일상이 '잠시멈춤'한 이 시국에 맛집 이야기를 꺼낸다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것과 같은 눈총 받을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먹지 말라면 먹고 싶고, 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가지 말라면 가고 싶은 마음이 가슴 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인스타그램에 가끔씩 사진을 올리고 마음에 드는 사진에는 기꺼이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하지만, 맛집 사진에는 절대로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을 갖고 있는 내가 새삼 맛집 소개라니..

 

퇴직 3년 차. 운동화 한 켤레로 사계절을 버티고, 머리 염색과 파마를 하지 않으며, 옷도 최소한으로 구매하고, 책마저도 도서관 대출로 해결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으니 맛집 탐방 같은 건 내가 즐겨하는 일이 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여행· 모임 · 실내체육 · 유흥가 출입 등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독려하는 유례없는 이 시국에, 아니 그런 시국이기에 슬쩍 먹는 얘기 하나쯤 하고 싶어지는 건 뭘까.

 

 

 

 

 

 

 

 내가 이 식당에 처음으로 간 건 대학4학년 교생실습 때 지도교사를 비롯한 몇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였다. 1982년 봄이었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지? 이 식당은 원래 오산미군기지 앞 송탄 재래시장 내 깊숙한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숱하게 돌아다닌 동네였는데도 이런 식당이 있고 이런 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그 시절엔 외식이라야 학교 졸업식날 짜장면 정도 먹는 게 전부였으니까. 부대찌개 속에 넣는 햄이나 소시지도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재료가 아니었다. 미군부대와 끈이 있거나 돈이 있는 집이나 접할 수 있는 외래 음식이었다. 물론 이와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 꿀꿀이죽이라고 미군부대 식당에서 잔반처리한 음식을 한꺼번에 넣고 끓인 음식인데 모양새는 카레 비슷하고 특유의 이국적인 향이 있었다. 어쩌다가 담배꽁초를 집어내면서도 모른 척하고 먹는 구황음식이라고나 할까. 이따금 꿀꿀이죽을 파는 손수레가 들어오면 바가지를 들고가서 사왔던 기억이 난다. 이것에 비하면 부대찌개는 고급 음식이었고 미군부대 근처에 산다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고향을 둔 나로서는 '고향'하면 이 음식부터 떠오른다. 이북 출신이었던 부모님의 고향 음식은 맛있기는 했지만 내 고향 음식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 부대찌개를 집에서 해먹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한번도 우리 집에서 부대찌개 냄새를 풍긴 적이 없다. 그럼에도 고향 음식이라고 말하는 건 송탄이라는 지방 소도시에 있던 나의 본가가 팔려서 이제는 남의 손에 들어가 돌아갈 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50여 년 간 우리집이었던 공간이 사라지는 경험은 어딘지 서글프고도 쓸쓸한 눈물 맛이난다. '50주년 기념'이라고 써붙인 저 플래카드를 보고 '50'이라는 숫자에 자꾸 눈이 가는 것도 사라진 옛집에 대한 추억 때문이리라. 돌아갈 고향집 대신에 돌아갈 음식점 하나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다. '다음 50년' 동안 돌아갈 곳이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렸을 적 먹던 꿀꿀이죽이 그립다. 허기를 달래주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던 꿀꿀이죽. 다시는 먹어볼 수 없는 꿀꿀이죽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집. 그 쓸쓸한 추억을 저 부대찌개로 달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