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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촌 ㅣ 한국추리문학선 21
고태라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8월
평점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대리 동내마을 뒤산 정상에는 옥녀를 위한 제당인 성황사(城隍祠)가 있다. 조선 중종 때 남해안의 해상 방어를 강화하면서 방답진성(防踏鎭城)을 축성하고 성내에는 세 군데의 우물과 네 군데의 다리인 삼정사교(三井四橋)를 만들었다고 한다. 삼정은 군내리의 지세가 옥녀탄금혈(玉女彈琴穴)이기 때문에 옥녀가 목욕할 수 있게 만든 우물이라고 하고, 본당의 유래에 대하여는 이 마을의 지형이 옥녀탄금 형상으로 예로부터 마을의 부녀자들이 화를 많이 입었기에 바압진을 설치한 이후에 성황사를 세우고 옥녀탄금혈에 모녀 삼신(소대각시)을 모셔서 부녀자의 재화를 면케 했다고 한다. (출처 : 디지털여수문화대전 -옥녀를 달래는 성황사의 당제)
이 소설은 이 군내리의 민속을 파헤치고 싶은 작가의 열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무녀촌이라 불리는 마을은 소랑각시를 산신으로 모시면서 세습무와 강신무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이곳은 음기가 가득하여 남자들은 단명하거나 시름시름 앓았기에 어릴 때 마을을 떠났고, 남아 있는 남자는 몇 없었다. 그 중에 가야는 무녀촌 대장이라 할 수 있는 강춘례의 손자였다. 양기로 가득한 그는 음기에 짓눌린 무녀촌을 구할 소중한 재목으로 여겨졌다.
이 무녀촌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제가 열렸고, 그 굿판 한복판에서 무당이 죽었다. 마을을 지탱하던 당주무당의 죽음은 과연 벌전이었을까, 신의 이름을 빌려 자행한 살인이었을까. 그리고 자리가 비게 된 당주무당의 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될까.
무속으로 이치를 따지는 곳에 왠 떠돌이 학자가 나타났다. 누구보다 무속에 치를 떨며 민속학 교수에 못지않게 풍부한 지식을 가진 도치는 이 마을에 나타나 가야를 만나고 당주무당 강춘례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무속으로 설명하는 것도 과학과 논리로 설명하고, 과학과 논리로 추리한 것들을 무속으로도 설명하는 이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가야가 소랑정에 갔을 때 전기가 찌릿 통한 것 같이 느꼈을 때나 우물 안에서 그르르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을 때나 우물을 들여다보다 얼굴이 다쳤을 때를 설명하는 추리는 향후 사건을 파헤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과학적으로도 설명 가능하지만, 과학이 아닌 우정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마음이 말랑해졌다.
무녀촌이든 천민촌이든 양반촌이든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무언가를 꼭 지켜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원하는 바를 옳은 방법으로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릇된 방법으로 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사건이 발생하고, 각자의 신념대로 사건을 파헤치거나 은폐하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의 논리에 매몰되어 진실을 못 보기도 하지만, 갑작스럽게 통찰을 얻을 수도 있다. 도치나 가야는 어느 쪽일까. 강춘례의 며느리인 이옥화나 손녀인 금은솔, 금아리는 어느 쪽일까. 그리고 무녀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이 모든 이야기에는 '사람'이 있다. 신도 논리도 모두 사람 사는 곳에 거하는 것일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