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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뮤지컬 닥터 지바고를 보고 왔다.

 

sns상에 3행시 이벤트가 있어서 날짜랑 배우를 보니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응모했는데, 떡 하니 당첨됐다. 앗싸!!

 

어깨춤을 덩실덩실... (뭔가 아재스럽다) 추면서 기쁜 맘으로 서울로 갔다.

 

샤롯데씨어터는 멀고, 비는 오고, 배는 고프고...

 

거의 공연 시간 맞춰서 올라왔기 때문에 롯데백화점 지하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봤는데, 오홋 베테랑 칼국수가 있는거다. 이거 먹으려고 전주도 가는데 ㅎㅎㅎ

 

맛나게 먹고 공연장으로 나는 듯이.. 사실 비가 와서 뛰었지만, 여튼 도착.

 

우리나라 최초 뮤지컬 전용극장이라는데 생각보다 화려했고(롯데란 이름에 비해), 생각보다 아담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밖은 추워...ㅠㅠ

 

이벤트로 사인 포스터도 준다했는데, 받아보니 대박. 전 배우 친필 사인이 있는거다.

 

우와 우와~ 너무 좋아서 또 어깨춤을 덩실덩실....

 

 

유리의 아버지는 많은 것을 가진 귀족이었으나 불안한 현실과 못 믿을 사람 때문에 열차에 뛰어든다. 어쩌면, 유리 입장에서는 그 아버지보다 알렉산드르와 안나가 자신을 키워준 게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가치를 가르쳐 줬으니까.

 

그래서 어린 라라의 노래가 더 슬펐다. 행복하고 따뜻한 유리의 모습과 대비되어 쓸쓸하고 처량한데다, 2층으로 올라 간 엄마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 나이였으니까... 그 일이 곧 라라에게 닥칠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어느덧 세월은 흘러 유리, 라라, 토냐, 파샤는 어른이 되었다. 한 쪽은 귀족, 한 쪽은 노동자. 대저택과 광활한 땅을 소유한 귀족과 가진 거라고는 몸뚱아리 뿐인 노동자. 그 대비는 결혼식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었다. 화려한 조명, 하얀 기둥들, 식탁에 가득한 음식과 술,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 모피와 턱시도, 드레스, 카드놀이... 그리고 수많은 권력자들. 결혼하는 두 사람의 행복이 아닌 가문의 결합을 축복하는 자리. 그리고 단호하게 울려 퍼지는 총성.

 

반면에 단순한 조명, 있는 거라고는 투박한 식탁과 의자 몇 개. 식탁에 음식은 거의 없고 비어가는 술병들과 작은 선물들이 놓여 있다. 그러고도 자리가 남아 그 식탁에 걸터앉은 사람들. 결혼식이라서 새 옷들을 꺼내입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평범한 옷차림.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파샤와 웃고 있는 라라, 기웃대는 경찰들. 여기도 노동자의 해방과 신분제의 타파는 있는데 둘 사이의 사랑은 잘 보이지 않는다. 동지애의 결합이라고나 할까.

 

안타까웠다. 토냐는 유리를, 파샤는 라라를 보고 있는데 유리와 라라는 어디를 보는 걸까.

 

총을 쏜 라라는 코마로프스키를 죽이는 데는 실패했지만, 유리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것에는 성공했다. 라라가 숄을 떨어트렸을 때 유리의 눈에, 마음에 조그만 생채기를 남겼다면, 이제 그 생채기는 결코 낫지 않고 더 깊어져 그녀가 아니고서는 채울 수 없는 골을 만들었다.

 

그 강렬한 감정은 더 이상 드러낼 수 없는 사랑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은 그녀를 따라다니고, 흠칫 놀라 시선을 거두고, 심장은 조여오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바라보고... 엇갈린 방향 속에서도 불쑥 튀어나오는 그녀를 향한 마음은 사랑이었다.

 

아픈 과거를 안고 사는 라라 역시 유리에게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아름다운 시를 짓는 그를, 자신을 시 안에 영원토록 살게 한 그를, 자신이 당한 일이든 행한 일이든 잘못됐다 말하지 않고 괜찮다 말해주는 그를, 다정하게 눈 맞춰주고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는 그를,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멈춰서서 기다려주는 그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전쟁터에서 군의관과 자원한 간호보조로 만난 그들을 보며, 그들의 사랑이 넘쳐 흘러서 심장이 떨렸다. 얀코의 편지를 읽는 그들이 너무도 안타깝고 너무도 애절해서 어서 그 손을 잡아, 내일은 없을지도 몰라.. 얼마나 되뇌이었는지 모른다.

 

유리와 라라가 눈빛으로, 손끝으로, 온 몸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내지르는 비명으로 그들의 사랑을 외치는 동안, 파샤는 울고 있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한 여인의 한(恨)을 담아 혁명에 투신했는데, 사실 그 여인은 자신을 위로해주고 지지해주는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었다. 차라리 코마로프스키를 쏘지 그랬나. 라라가 그랬던 것처럼.

 

파샤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지식으로 무장한 혁명가. 그가 꿈 꾼 세상은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 그러나 현실은 그 '평등'을 실현하지 못했다. 간간이 나오는 그로메코 가문 사람들은 귀족들의 생각을 잘 나타내 주었다. 접시는 있는데 음식이 없다며 예전엔 일곱가지 코스요리를 먹었다느니, 저 산과 강이 모두 자기들 것이었다느니... 이젠 노동자들이 다 '빼앗아'갔다고,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겼다고.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누리는 동안 노동자들은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다. 귀족들을 배 불리게 하기 위해.

 

하도 빼앗겨서일까. 혁명은 광기가 되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방식대로 상대를 착취한다. 사유재산은 가질 수 없고, 빵 반 조각도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해야 한다. 체제를 찬양하는 글이 아니면 쓸 수 없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등장한 코마로프스키.

 

권력자에 붙어 있던 그가, 백색군에 가담했던 그가 이제는 적색군이자 혁명동지로 변신했다. 마치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반공을 내세우며 요직에 앉았던 것처럼.  

 

원래 파샤는 이렇게 변질된 혁명에 혐오감을 느끼며 자살하지만, 뮤지컬 속에서는 그 혁명의 선봉에 선다. 라라가 억울하게 당했던 일들이 다른 이름으로 사람들을 옭아맨다. 억울함을 소명할 길은 없고, 압제와 강압만이 남아 전쟁터를 떠돈다. 이념이란 너무나도 무섭다.

 

라라는 왜 파샤에게 가지 않았을까... <불의 검>에서 바리가 그랬지. 그녀는 남편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가지 않았을까요... 그건 아사가 산마로였으니까. 라라에게 남편은 유리였으니까.

 

유리는 시를 쓰기를 거부한다. 그의 여신은 라라니까. 가족을 위해 라라에 대한 마음을 애써 가두고 있었는데, 가족들은 그에게 시를 쓰기를 요구한다. 허탈한 마음에 찾은 도서관. 그 곳에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니?란 질문에 당황하며 시집을 숨기는 한 여인이 있다. 조용하게 유리를 그리는 마음을 노래하던 찰나... 뜻밖에 유리가 나타난다. 라라는 간절히 기도한다. 고개를 다시 돌렸을 때 그가 없으면 어쩌나...

 

이 때 좀 더 격하게 사랑이 뿜어져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볼 때도 이미 격정적이었지만, 더 격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동안 숨기고 감추고 흘러나오는 것들을 주워담기 바빴으니까, 그 억누르던 것들이 다 무색하게 터져 나오도록.

 

행복은 잠시, 유리는 적색군에 납치되어 또 다시 라라 곁을 떠난다. 의사가 필요했던 혁명군들 틈바구니에서 유리는 또 다시 혁명에 진저리를 느끼고... 사격 연습 대상이 되지 않으려 도망치지 않다가 결국 한 여인의 자살 앞에 도망을 결심한다.

 

도망쳐 돌아 온 집에는 라라가 있고, 둘은 2주간의 짧은 시간을 함께 한다. 이 때도...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면 하나 정도 넣었으면 좋았을텐데. 물건을 옮긴다던지, 청소를 한다던지 하면서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닿는 모습... 아...

 

하여간 행복한 시간을 보낼라치면 꼭 불청객들이 등장한다. 징글맞은 코마로프스키. 자신의 목에 현상금이 걸린 걸 아는 유리는 라라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그녀를 떠나보내는데...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만 부르다... 아니 차마 부르지도 못하다가 죽음을 맞이했겠지...

 

류정한 배우님과 조정은 배우님 연기가 너무 좋아서 눈물 한 가득 흘리고 나왔더랬다. 쓸쓸하고 적막한 무대는 마치 그 당시 거칠고 막막하던 러시아 같아서 가슴 아팠다. 장농 팔아서 빵을 사고, 땔감이 없어 의자라도 장작으로 써야 했던 그 때...

 

보는 내내...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파스테르나크)가 느끼는 죄책감과 우유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시인이자 의사였던 것도,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런 그가 모든 것을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못했지만 끝까지 라라를 지키려 했다는 점도 멋졌다.

 

아아... 너무 멋진 공연이었다.

 

이제 그는... 시가 되어 영원 속을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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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3-22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이벤트 당첨되셨어요. 주소랑 전번 알려주세요. 글구 받고픈 책도요 참고로 저 닥터지바고 안읽었어요 영화도 안보고...ㅠㅠ 세계명작 컴플렉스가 있다는...





꼬마요정 2018-03-22 11:59   좋아요 1 | URL
앗, 이벤트에 재응모가 되어 이렇게 당첨되다니... 너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닥터 지바고는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책이란 건 읽는 사람 마음 가는대로라... 저도 책을 가려 읽어서 말입니다^^;; 좋아하는 책만 읽고.. 뭐 그런거죠^^ 마태우스님이야 뭐 책도 많이 읽으시고, 또 쓰시니까요. 부럽습니다.
 

 

 

죽음은 또 다른 꿈 속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악몽..(사느냐 죽느냐 중에서)

 

끝이 어떻게 될 지 알면서도 움직여야만 하는 한 인간의 삶.

 

이제껏 햄릿은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자신의 비탄 속에 갇혀 주위를 둘러보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뮤지컬 속 햄릿은 달랐다.

 

누구도 없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숙부의 반지를 받았다. 아들인 자신의 의견 따윈 상관없었다.

사랑하는 오필리어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스승인 호레이쇼만이 곁을 지킬 뿐. 그러나 그 역시 그저 지켜보는 자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는 오직 자신 뿐이라 여긴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세상을 저주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름 아닌 먼저 죽어버린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자신의 슬픔을 보듬어주지 않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꼭 그 유령을 봐야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 아들의 아픔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아들의 한(恨)이 그 유령을 쫓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아버지의 망령은 복수를 요구한다.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호레이쇼에게는 자신만만하게 아버지의 유령이라고 큰소리 치고 따라왔지만, 사실 의심이 들었을테지. 처음에는 주저하는 듯하다가 점점 흥분하여 열에 들 뜬 듯한 목소리와 상기된 얼굴,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곧이어 분노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외친다, 복수를. 결연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유령과 햄릿이 만들어내는 이 야릇하고 이상한 제의(祭儀)가 이제 햄릿의 운명이 비극으로 치닫는 주춧돌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햄릿은 미치광이 노릇을 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 클로디어스. 그리고 공모자는 누구일까. 어머니인 거투르드 왕비도 이 일에 가담했을까. 폴로니어스는? 어머니가 로젠크렌츠와 길든스턴을 불렀다. 광대 같은 놈들... 그들이 노리는 건 무언가.

그리고... 오필리어는...?

 

오필리어를 만나지 못하는 순간에도 햄릿은 그녀를 믿는다. 적어도 그녀는 순수하리라.

 

물론 그녀를 만나러가기까지 햄릿은 음란(?)한 말들을 내뱉는다. 오필리어의 임신과 관련한 암시일테지. 햄릿의 편지는 아버지인 폴로니어스를 우습게 넘어뜨리고 구멍을 통해 오필리어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여전히 미친 척하며 기회를 엿보는 햄릿은 그녀에게만은 진실을 말하고자 하지만...

 

드디어 햄릿과 오필리어, 둘 만의 공간이다.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그에게 숨을 쉴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그녀. 그러나 둘만 있는 줄 알았던 그 곳에도 눈과 귀가 있었다.

 

책장에서 떨어진 책을 돌아보는 햄릿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난 1막에서 이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처음에 찾아든 놀라움에 뒤이어 재빠르게 배신감이 달려왔다. 그리고 분노. 순간 오필리어에게 어머니인 거투르드 왕비가 겹쳐진다. 아버지를 배신하고 원수인 숙부의 손을 잡은 어머니. 자신이 아닌 아버지의 손을 잡은 오필리어. 이제 오필리어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 줄 순간은 없다. 그러다 마지막은 체념... 이렇게 오필리어를 놓아버렸다. 이제 사랑을 죽였다. 복수를 방해하는 하나의 걸림돌이 사라졌다.

 

또 다시 세상을 저주하게 된 그 앞에 연극이 펼쳐진다.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그 배우들은 햄릿을 이리저리 뒤흔든다. 그리고 보여주는 극이 '리어 왕'. 자식을 배신한 아버지와 자식에게 배신당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막내 딸, 복수에 실패하고 죽어버리는 막내 딸... 햄릿의 운명이다. 이렇게 죽을 것이라면, 복수라도 완성해야지.

 

아버지의 죽음을 재연하는 연극이 왕과 왕비 앞에 펼쳐진다. 이제 복수의 명분이 세워졌다. 주저하며 미친 척하던 햄릿에게 복수를 실행해야 하는 때가 왔다. 허나, 정말 중요한 일이 남았다. 바로 어머니. 어머니는 공모자인가, 피해자인가.

 

어머니를 만나러 간 햄릿은 자신의 속마음을 쏟아내고, 어쩌면 복수를 멈출 수 있는 순간에 아버지의 유령이 다시 나타나 그를 미치게 한다. 어쩌면 아버지의 유령은 죄책감이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운명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사실, 여기서 난 햄릿이 그 커튼 뒤에 클로디어스가 있을거라 짐작하고 총을 쏜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그를 죽이겠다는 몸짓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폴로니어스가 쓰러지자 클로디어스가 아니라 놀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서 놀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극은 흘러간다. 자신의 아버지와 아이의 아버지 모두를 잃은 오필리어는 미치고, 레어티즈는 분노하고, 햄릿은 오열한다. 이를 기회로 삼아 클로디어스는 햄릿을 제거할 또 다른 계략을 세운다. 치밀하고 비열한 행위 위에 쌓은 권력은 부질없다.

 

거투르드 왕비의 속마음은 원작에서도 나오지 않아 역할 구상이 상당히 어려웠을텐데, 짧게 짧게 나오지만 그 순간 순간 속에서도 왕비의 마음이 잘 느껴져서 좋았다. 오로지 아들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움직인 그녀. 갑자기 왕이 죽고, 후계자인 햄릿이 즉위하기에는 세력이 없다. 이럴 때 손을 내민 건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 그는 햄릿을 아들처럼 여기고, 그의 즉위를 돕겠다 한다. 왕위 계승권을 넘겨줄 권한을 가진 거투르드는 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의 죽음이 자신을 아무리 힘들고 외롭고 슬프게 해도... 자신에겐 지켜야 할 아들이 있으니.

 

그러나 아들은, 한없이 이상적이고 순하던 아들은 돌변했다. 아버지를 잃어서? 사랑을 잃어서?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선왕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하는 그녀는 답답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같이 공부했던 로젠크렌츠와 길든스턴을 불렀다. 친구들을 보면 아들의 마음이 돌아설까 해서... 오필리어에게도 손을 뻗었다. 이 아이가 햄릿을 돌아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점점 클로디어스가 이상하다. 무언가 햄릿을 향한 적대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숨기는 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알 길은 없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알았다. 모든 진실을. 아들을 대신해 독배를 드는 그녀는 끝까지 우아했다.

 

원작에는 없던 '미안해 아들'에서 마음이 아팠다. 아들에게 힘이 되고자 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거기다 또 다시 아들을 혼자이게 할 수 밖에 없어 얼마나 미안하고 가슴 아팠을까.

 

보라색 혹은 자주색은 왕의 색깔. 왕비인 거투르드가 자연스럽게 보랏빛 옷을 걸칠 때, 클로디어스는 입어만 보고 걸어만 뒀다가 드디어 권력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입었으나,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2018년 첫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정말 재미있게 봤고, 많은 생각을 했다.

 

1/7 18시30분.

햄릿 - 홍광호

클로디어스 - 양준모

거투르드 - 김선영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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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뮤지컬 레베카>를 보고 왔다.

 

일단, 엄막심.. 수트 입은 모습에 숨이 탁 막혀 잠시 진공 상태에 빠졌더랬다. 잘 생긴 건 알고 있었지만, 막심이란 캐릭터가 이렇게 잘 생겼어요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인 줄은 몰랐다. 책에서 본 막심의 느낌과 비슷해서 몰입하기 좋았다. 청혼할 때 더블자켓 입었을 땐 농담 안 해... 그러더니, 다음엔 빽바지 입었을 땐 농담 안 한다고.. 나윤 호퍼가 손등에 강제 키스 하니까... 아세톤으로 지워야겠다고.. 하아.. 이 깨알 같고 능청스러운 애드립이라니. '신이여'와 '칼날송' 할 때의 그 표정, 몸짓... 완벽했다. 특히 레베카 연기... 섹시해...

 

김선영 댄버스... 온 몸으로 카리스마랑 아우라를 풍기는데, 너무 놀랐고 좋았다. 처음 이히의 장갑을 주워주는 장면부터 손동작과 내리까는 목소리, 비웃음까지 압도적이었다.

신영숙 댄버스... 확실히 동작이 크고 표정이 풍부했다. 당연히 카리스마와 아우라는 기본이고, 멋졌다.

 

그런데, 책을 떠올리며 극을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막심의 말대로라면,

 

레베카는 왜 막심을 그렇게 증오했을까?, 정말 레베카는 나쁜 년이었을까? 였다.

 

레베카는 죽고 없다. 레베카는 자신을 변호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녀만을 알 뿐이다.

 

일단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한다. 레베카는 우아하고 지적이며 아름답다고.

 

그런데 막심은 말한다. 그녀는 뻔뻔하고, 맨덜리 모두를 속였다고.

 

1. 막심의 말이 사실이라면.

레베카는 왜 막심을 그렇게까지 미워했을까?

 

손에 피를 묻히게 하고, 무서운 혐의가 가도록 만들고, 결국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명예를 실추시키기까지. 완벽했다. 막심이 그동안 쌓아올린 것들은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진실이든 거짓이든 다 무너졌다. 모두에게 비춰진 모습은 완벽한 귀족 부부의 모습. 그러나 드러난 사실은 불화로 가득했던 결혼 생활. 결국 막심은 자신의 영지에서 살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된다. 뮤지컬에서야 댄버스가 불을 질렀지만, 책에서는 누가 지른지 알지 못한다. 명예와 자존심에 금이 간 막심이 스스로 불을 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레베카는 진정으로 막심을 잘 알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레베카는 막심을 사랑했을까? 하지만 막심은 맨덜리나 가문에만 관심이 있을 뿐, 모두가 칭송하고 사랑하는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증오로 변했고,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없애버리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신은 여자로 태어나서 능력을 펼치지도 못하고,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막심은 남자로 태어나 영지도 물려받고, 야망도 실현할 수 있는데 가문을 위한 책임감에 짓눌려 힘들어 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을까. 질투도 하고. 내가 막심이었다면 많은 것을 이루었을텐데, 왜 막심은 다 가져놓고 저렇게 소심할까. 거기다 죽음마저 자기 생각과 다르자 증오심, 질투심이 폭발해서 저런 계략을 꾸민 걸지도.

 

2. 과연 막심의 말이 사실일까?

막심은 레베카가 부정하고 나쁜 여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연 사실일까? 레베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건 다름 아닌 막심이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있지도 않는 레베카의 행실을 꾸며낸 건 아닐까?

 

레베카는 모두에게 완벽했던 여자였다. 20년 정도를 그렇게 가면을 쓰고 같이 생활하던 사람들을 깜쪽같이 속일 수 있을까. 책에서는 프랭크나 가일스 등 가까운 지인들에게까지 손을 뻗쳤다고 했는데, 그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라면 오히려 남자들이 탐내지 않았을까. 그래놓고 거절 당하자, 앙심을 품고 그 여자가 유혹한거야.. 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온 걸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막심의 아내인 레베카를 여자로 마음에 품었다면, 그 죄책감이 그녀를 나쁜 년으로 몰고 가도록, 자신을 정당화한 건지도 모른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이고, 명석하고... 그런 그녀가 누구보다 고고했던 건 당연할테지. 그래서 오히려 드 윈터 가문은 그녀를 질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옆을 지키던 댄버스 부인. 그녀는 정말로 레베카와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을까?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레베카를, 댄버스 부인은 존경하고 사랑했을거다. 그리고 같이 맨덜리 저택으로 왔을 때 이런 주인을 모신다는 자부심까지 더해져서 아주 자랑스러웠을테지. 그래서 맹목적으로 그녀를 섬겼고, 어쩌면 자신이 그녀와 모든 것을 나눈다고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레베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진실을, 가장 가깝다고 믿었는데 자신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는 데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잭 파벨은 하는 행동으로 보아선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남자니까. 그녀가 그와 놀아났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레베카는 사촌이라 불쌍해서, 혹은 자기 사촌이 그렇게 사는 게 위신에 안 맞다고 생각해서 돈을 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가 죽고 나니 파벨은 저렇게 떠벌리면서 한 몫 챙기려는 걸지도.

 

 

레베카는 죽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어볼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낸 레베카를 이야기한다.

 

과연 그녀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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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찐~한 연애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가슴이 막 두근거리고 시련 가득한 사랑 때문에 눈물이 고이는, 그러다가도 팽팽한 실이 끊겨버리듯 막을 내려 가슴 한 켠이 아주 시린 그런 사랑 이야기 말이다.

 

 

이 영화가 나에겐 그런 사랑 이야기였다. 원작을 아직도 다 읽지 못해 원작 얘긴 할 수 없지만, 원작과 상관없이 이 영화 자체만으로 난 너무 좋았다. 아름답고 깨끗한 녹색들이 바람에 흩날리다가도 햇빛을 만나면 쨍하게 푸르렀다 다시 바람에 몸을 맡기는 그런 느낌.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다시 만날 순간을 희망하며 그리워하고, 떨어져 있어도 사랑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티는 삶. 

 

가해자가 화자라는 것도 신선했지만, 어린 여자의 질투심이 불러 온 참극이 가슴 아팠다. 누구라도 어린 시절, 시기나 질투 등 감정에 휩싸여 어리석은 선택을 하니까. 다만 브리오니는 자신의 선택으로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야 했으니 '모르고 지은 죄'가 끝까지 모를 수 없다는 것, 지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한 가운데에 로비와 세실이 있었다. 

 

 

얼마 전에 보고 온 이 뮤지컬 역시 나에게 그런 사랑 이야기로 남았다. 1차 세계대전, 모든 것이 엉망이었던 때. 그 속에 가득했던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수천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다는 압박감, 임무 수행을 위한 군인의 다짐, 부당한 명령으로 드러나는 반항과 체념,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 집착... 첫 등장에서 아르망이 부르던 '싸워'가 1막 끝 언저리에 '추락할 땐'으로 이어지면서 군인으로서의 신분이 강조되었다면, 2막은 그저 사랑 그 자체였다. 물론 1막에서 라두와 맞붙은 '남대남'에서 아르망과 라두가 가진 사랑, 집착이 씨앗이라기엔 너무 폭발적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그 불꽃이 2막에서 타올라 극 전체에 넘실대다 재가 되었다.

 

언제였을까. 그녀를 마음에 담게 된 것이... 그저 임무일 뿐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녀를 대할 때 말투와 눈빛이 달라졌다. 리옹에서였을까.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그녀가 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저 바라볼밖에... 저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데, 아르망은 거짓투성이인 군인을 내려놓고 한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언제나 행복은 잠시고, 순간이다. 그래서 더 달콤한 것...

 

마타하리에 집착하던 라두가 위기를 느끼고 아르망을 견제하기 위해 항공사진 촬영 임무를 맡긴다. 아르망이 자살행위라고 반항하자, 그럼 몸조심하게!라고 받아치는 라두.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감정을 숨기지 않고 발산하는 아르망. 그리고 아르망이 사지로 떠난다는 편지를 받고서야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마타하리. 세 사람의 운명은 전쟁 속에서 각각의 선택을 요구한다.

 

사랑을 깨달은 순간부터 서로는 만나지 못한다.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어보아도 허공만 스칠 뿐. 어째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건지. 아르망은 비행기가 격추되고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도 그녀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한다. (물론.. 목숨을 걸었을까만은.. 병원이 좀 허술하긴 했다.) 마타하리는 라두의 감시를 피해 여권을 위조해가며 아르망을 찾지만, 아르망의 임무가 자신임을 알게 되어 자괴감과 배신감을 안고 파리로 돌아온다. 돌아온 그녀를 기다리는 건 이중 스파이라는 누명 뿐. 그나마 그녀를 지탱하는 건 '사원의 춤'이라고 불린 정화의식과 자신의 삶이 힘들고 어려웠을지언정 부끄럽지 않다는 당당함. 사랑 때문에 무너졌으나 자신의 삶에 긍지를 가졌던 그녀.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타난 구원. 자신의 사랑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목숨으로 증명한 아르망 덕에 그녀는 모든 회한을 내려놓고 마지막 순간을 노래한다. 그가 없는 이 세상에, 고단했던 자신의 삶에 인사를. 그가 있는 곳으로, 이제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그 곳으로 갈 수 있다.

 

아르망과 마타하리가 서로를 선택했다면, 라두는 이 세상을 선택했다. 자신의 지위, 명예를 지키는 선택. 아울러 어차피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러나 아르망의 눈을 보고 라두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을테다. 라두의 감정이, 결국 사랑이 아닌 욕망과 집착이었음을 보여주는 아르망의 눈빛.

 

사람 사는 세상에 온갖 기쁨, 노여움, 사랑, 슬픔 등이 가득하다지만, 전쟁이 끼어들면 결국 비극이 되고 만다. 승리한 자는 승리한대로 대가를 치르고 패배한 자는 패배한대로 대가를 치러야 하니. 결국 모든 것은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대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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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책도 영화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뮤지컬은 괜찮았다.

배우들의 열연 때문인가...
공감하지는 못해도 그 넘쳐나는 감정들에 눈물이 났다.

프란체스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느껴졌다.
버드도, 로버트도... 있는 그대로의 프란을 사랑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폴리에서 벗어나게 해 줄 남자였던 버드와 평범하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요리도 잘하는 그녀를 프란체스카로 봐주는 로버트.

색감도 이쁘고 넘버들도 좋고.. 특히 반주 없이 부르는 부분들이 좋았다. 연출도 잘 했고... 연기도 다들 너무 좋고.

이 뮤지컬에서 제일 좋았던 역할은 의외로 마지 부부였다.
일탈보다는 평범함을 좋아하는 나는
마지 부부처럼 서로를 위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 살지 않고 프란체스카로 살았더라면
버드나 로버트를 만나지 않았을까...

이상현 버드 보고 싶었는데 더 이상 기회는 없을 듯하다.
그건 아쉽네.

덧. 애매한 이 우주... 애매하다는 말 없는 말인데.
모호한 이라고 하면 좋을텐데.
제일 중요한 문장에서 마음이 확 식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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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작품 자체는 좋은데, 출판사가 에러입니다.. ^^;;

꼬마요정 2017-05-08 13:0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출판사가 무슨 짓을 했길래..
배우님들이 참 연기며 노래며 잘 하더라구요.. 그래도 전 두 번은 못 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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