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외할머니께서 오셨다. 엄마, 아빠, 삼촌 두 분, 숙모 두 분, 이모, 이모부.. 엄마 외가쪽 형제분들이 모두 오랜만에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나셨기 때문에, 집에서 노는 것처럼 보이는 내게 할머니를 모셔야만 하는 책임이 떨어진 거다.
오랜만에 할머니께서 오신다니, 기뻤다. 할머니는 어릴 때 나와 내 동생을 거의 키우다시피 하신 분이다. 죽어라 밥 안 먹는 나를 보고 숟가락으로 쎄리삔다시며 혼 내시기도 하고, 자판기로 한 푼 두 푼 모으신 돈으로 나에게 예쁜 브로치를 사주기도 하셨다. 엄마가 막내라서 늘그막에 오물오물 생긴 손녀딸 둘이 오죽이나 예뻤을까. 특히 나는 사촌언니, 오빠들이 모두 초등학교 들어간 후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있는 인형 취급을 받았다. 매일같이 우루루 몰려와서 나를 보며 매우 신기해 했다고, 어쩜 저리 못생겼을까..놀리기도 했다고. 그 때 늘 내 곁에서 보살펴 주신 분이 외할머니셨다. 그런 할머니는 내가 자라면서, 우리집에 친할머니께서 오시게 되면서 점점 만날 기회가 사라져갔다. 명절 때나 가끔 볼 수 있었던 할머니. 너무 좋은 할머니~~
수요일 오후에나 도착하신다는 부모님 말씀을 뒤로 하고, 나는 할머니랑 뭘 먹을까 궁리를 했다. 약간의 치매기운도 있어서 많이 드시기도 하지만, 먹거리를 좋아하셔서 나는 떡도 구워놓고, 곰국도 데워놓고, 이것 저것 준비했다. 신식 할머니셔서 피자도 좋아하시니 피자도 사고.. 그럭저럭 이틀이 지나갔다. 그리고 월요일!
내가 잠든 사이에 베란다를 다 뒤져서 한 켠에 내버려진 마늘을 한 자루 찾아오신 할머니. 나는 그 양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 날 하루 일과가 뻔해서 기겁을 했다. 이거 다 까고, 꼭지 따고, 찧은 다음, 뭉텅이를 나누어 냉동실에 보관. 까는데만 4시간이 걸렸다. 허리 아파 죽을 뻔 했다.
오전부터 그 일에 매달려 겨우 마친 게 오후 6시쯤...
다.시.는 마늘이 보고 싶지 않다..
평생을 이렇게 일만 하셨을 할머니.. 가슴이 아팠다. 같이 마늘을 까면서도, 누워 쉬시면서도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당신의 젊은 시절. 22살 때 일본에 건너가 50명 분의 밥을 짓기도 했다는, 절반쯤은 자랑처럼 절반쯤은 회한이 가득 담긴 어조가 내 가슴을 막막하게 했다. 엄마도 이렇게 평생 일만 하셨겠지.. 나도 그럴까..
갑자기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 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원래 결혼에 뜻이 없긴 했지만, 그 일은 나를 더더욱 결혼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아직은 결혼을 생각할 나이는 아닌 듯 해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못견디게 결혼이 하고 싶어진다고 해도..지금은 결혼이 싫다.
할머니 얘기부터 결혼 이야기까지.. 뭔가 어수선하고 이상하기만 하다. 그래도.. 우울한 내 기분이 반영된 글 같아 또 우울해진다.
결론은 마늘이 싫어..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