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난 봄이 좋다. 가슴이 설렌다. 마치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겨우내 묵었던 우울함들이 따뜻한 햇살 아래 모두 사라져 버렸다. 설레고 설레어 미쳐가는 것 같다.

낮에 고양이가 죽었다. 이사올 때부터 보았던 고양이 였으니 나이는 벌써 12살이 넘었을 거다. 암컷인 그녀의 이름은 점복죽. 그냥 점박이 고양이라서 점복이라고 부르려다,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 이름이 점복이여서 좀 색다르게 점복죽이라고 불렀다. 그녀가 우리집에 기거한 건 5년 전, 앞집 아주머니가 그 아이를 맡기고 이사를 가 버렸던 때였다. 귀엽고 영리한 그녀는 벌써 예쁜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거느린 엄마 고양이였다. 새까만 고양이와 갈색 고양이. 두 마리는 정말 귀여웠다. 까만 고양이는 너무 겁이 많아서 겁겁이라고 불렀고, 갈색 고양이는 너무 예뻐서 갈순이라고 불렀다. 암컷인 줄 알았던 갈순이는 알고보니 수컷이었지만.

어쨌든, 세 마리는 정말 사이가 좋았다. 겁겁이는 겁이 많아 사람이 있으면 좀처럼 먹이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 갈순이는 자기가 다 먹고는 겁겁이에게 토해줬다. 그러면 겁겁이는 숨어서 먹곤 했다. 그네들이랑 친해진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세 마리와 난 행복했다.

그러다 2년 전, 점복죽이 새끼 고양이를 낳았다. 겁겁이의 자식들인가보다. 세 마리가 새끼 고양이에게 달라붙어서 돌보는 걸 보니 새삼 가족애를 느꼈었다. 생생이라고 불린 새끼 고양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몇 달 뒤 태풍 매미가 오기 전 해탈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잘 지내다가 갑자기 시름시름 앓더니 죽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 반야가 태어났다. 유난히 기운이 좋던  그 아이는 온천지를 뛰어다니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길을 잃은 모양인지, 나타나지 않았다. 죽은 듯 했다. 점복죽은 벌써 여러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을 보내고 내내 울었다. 그러다가 작년 추석 전에 겁겁이가 죽었다. 그리고 추석날 갈순이가 죽었다. 둘은 죽기 며칠 전부터 내내 아무것도 못 먹더니 결국 죽었다. 점복죽은 죽어가는 갈순이를 지키느라 기진맥진해 있었고, 갈순이가 죽자 몇 날 며칠 제대로 먹지도 않고 내내 울기만 했다. 늘 세 마리가 같이 있었는데, 점복죽 혼자 남았다.

그리고 2주 전, 점복죽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낳았다. 너무 통통해서 이름을 통통이라고 붙였다. 쌩쌩하게 통통이를 돌보던 점복죽은 어제 밤부터 보이지 않더니 오늘 오후 우리집 담 앞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통통이 때문에 죽어가는 몸으로 집까지 온 듯 했다. 가슴이 에이는 듯 했다. 가족처럼 사랑했던 고양이였는데, 마지막 한 마리였는데...

혼자 남은 통통이가 너무 가엾다. 동물병원이 문을 열지 않아 할 수 없이 따뜻한 보리차에 설탕을 타서 먹였다. 내일은 분유를 사러 가야겠다. 사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겁겁이가 죽었을 때도, 갈순이가 죽었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아이들의 빈자리를 보면서, 내가 와도 반가이 맞아주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서 상실감을 느꼈었다. 이제는 통통이를 보면서 가슴이 아파오는 걸 느끼겠지..

봄인데.. 내가 좋아하는 행복한 봄인데.. 오늘은 너무나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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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1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05-03-2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용기주셔서 감사해요~ 힘 낼게요~ 남아있는 새끼 야옹이라도 씩씩하게 키워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