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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ㅣ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평점 :
도시가 아닌 곳은 시골일까. 고층 건물이 빼곡하고 도로에는 차들이 쉬지 않고 달리는 곳이 도시라면,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고 옆을 보면 나무와 들판이 보이는 곳은 시골일까. 많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곳이 도시라면,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은 시골일까. 그렇다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정이 넘치고 여유로워 보이는 시골을 동경할 것이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도시를 부러워할 수도 있다.
열매는 빌려 준 돈을 갚지 않은 채 사라진 고수미를 찾으러 수미의 고향인 완주로 향한다. 열매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어쩌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낮에는 산 사람들을, 밤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수미 엄마나 외계인인지 산신령인지 알 수 없는 어저귀, 혼자만의 성에 사는 것같지만 반려견과 치열하게 살아가는 배우 정애는 열매가 알지 못한 삶의 방식을 알려준다. 열매는 완주에서 오래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열매의 지지자이다. 열매의 마음 속에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자아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화 <마스크>의 자막을 읽어주며 할아버지와 쌓은 친밀감, 유대감, 즐거움, 자신감 등은 이곳 완주에서 열매를 맺었다. 이제 열매는 좀 더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겠지.
세상 만물은 모두 좋고 나쁨을 가졌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나에게 한없이 좋은 사람도 누군가에겐 한없이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 또는 돈과 관계 되면 그 사람의 사정 따위는 저 멀리 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호구'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데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이익과 손해를 완벽히 따져가며 살 수 있을까 싶었다. 이익과 손해를 따지기보다 베풂과 감사를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열매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보며 나 역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나의 엄마는 나와 동생을 외할머니집에 자주 맡겼는데, 그럴 때면 늘 나는 외할머니에게 책을 읽어드렸다. 맨날 함매 함매 하면서 동화책부터 그리스로마신화까지 외할머니 옆에서 펼쳐들고 읽었더랬다. 물론 책 한 권을 다 읽은 건 얇은 책 몇 권 뿐이었지만 나도 외할머니도 즐거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제일 좋아했던 건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받아적어 알려드린 거였다. 아직도 난 주현미 노래나 현철 노래 가사가 기억난다. '신사동 그사람', '봉선화 연정' 등은 여전히 따라부를 수 있다.
개발 논리에 잠식된 검은 돈이 방화한 것 같은 그 산불은 어저귀의 자취를 없앴다. 어저귀는 어디 있을까. 그 장면을 보며 난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재개발 재건축 플랜카드가 한창 걸려있을 때 동네에 있던 커다란 느티나무가 뽑혀 나간 것이 떠올랐다. 내가 이사왔을 때부터 거대한 나무였고 마을의 수호신 같은 느낌을 주는 나무였는데 어느 날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백 년은 넘게 그 자리에 있던 나무였는데 이제는 도로의 일부가 되었고 나는 그 자리를 지나갈 때마다 느티나무를 생각한다.
어쩌면 어저귀는 살면서 닮고 싶고 종국에는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세상은 인간만 사는 곳이 아니니까. 사계절을 사는 우리는 삶을 계절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 계절마다 나를 뭉클하게 하는 것들을 간직하면 좋겠다. 혼돈과 상실의 고통을 지닌 여름을 지나며 열매는 가을을 맞이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