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괴담 안전가옥 FIC-PICK 8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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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상용근로자든 일용근로자든 사업소득자든 어떤 이름이든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기도 하며 일정 경력을 쌓은 뒤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도 한다. 영업직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기술직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공무원이 되는 사람도 있고 자영업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일까. 여기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괴담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괴담으로만 볼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많았다.


첫번 째 이야기인 <오버타임 크리스마스>는 범유진 작가의 이야기이다. 수빈은 면접을 보러 간 회사에 큰 창문이 있고 팀장이 야근 절대 금지라고 해서 입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첫 출근날 보니 창문은 늘 잠겨있고, 야근은 뭐가 나온다고 하지 말라고 하며, 회사 싱크대에 가득한 설거지 때문에 여자를 뽑았다는 말을 들었다. 심지어 자신의 자리라고 준 책상 위에는 죽은 것 같은 선인장까지 있었고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 메신저가 있었다. 심지어 수빈을 제외한 회사 직원 7명은 모두 남자인데, 인플루언서 아리의 남자친구인 회사 대표의 지인들이었다. 그들은 오후 3시에 비싼 케이크를 간식으로 즐기면서 계약직인 수빈에게는 비싼 간식을 줄 수 없다고 따돌린다. 게다가 수빈이 기획안을 제출해서 일을 따 내려하자 치사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훼방을 놓고 팀장이란 놈은 싫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 귀 못알아먹고 더듬기나하는 그 놈에겐 케이크도 가당찮다. 반죽이나 되어버려라. 공모자들 모두 다!! 가해자는 자신이 가해자임을 모르고, 피해자는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을 피해자들이 위안을 얻으면 좋겠다.


두번 째 이야기는 최유안 작가의 <명주고택>이다. 고택은 옛스럽지만 고상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이 드는데, 이번 괴담의 무대가 된다. 이 이야기는 오피스에서 일어나는 괴담은 아니지만 직장인이라면, 그 직장이 일반 회사든 학교든 관공서든 상관없이 겪을만한 압박감과 '집착'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든 납기 내에 일을 마무리해야 하고, 정해진 기간 내에 기획안을 제출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프레젠테이션을 해야만 하는 그 압박과 집착 말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압박 속에서 영혼마저 묶여버린 것은 아닐까. 죽어서도 해내야만 하는 일은 없을텐데 말이다. 일을 잘 하든, 관계가 좋든, 편견을 가지고 있든, 인맥에만 치중해서 일을 하든 상관없이 살아남지 못할 것인가. 고택으로 불어드는 스산한 바람이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세번 째 이야기는 김진영 작가의 <행복을 드립니다>이다. 코로나 기간 뿐 아니라 IMF 이후 늘어난 계약직은 늘 불안에 시달린다.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진짜 집이 없다는 불안은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추운 겨울, 어린 나이에 진짜 집이 갖고 싶었던 아이들은 옷장 안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그 소망과 한이 가구에 새겨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편화된 세상에서 나만이라도 살아남고자 하는 마음이 문제일까. 하지만 개인에게 얼마나 큰 짐을 지워야만 하는걸까. 그래서 개인은 또 다른 개인에게 그 짐을 떠넘기는 것일까. 더 이상 성장 동력이 없는 세상에서 회사라는 실체 없는 실체가 개인을 소모품으로 이용하고, 그 속에서 개인은 또 다른 약자를 찾아가는 것 같다. 윤미의 입장에서 그 개진상 고객보다는 경준 팀장이 더 미웠겠지. 아니면 더 만만하든지.


네번 째 이야기는 김혜영 작가의 <오피스 파파>이다.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을 비하하는 민정이 안타까웠다.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민정은 폭력과 폭언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작은 광고 회사에 취직하였지만, 상사로 만난 강성필 팀장은 늘 민정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모욕을 줬다. 그러던 차 민정은 어느 쓰레기통 회사로 외근을 갔다가 쓰레기를 '소실'시켜주는 쓰레기통을 체험하게 된다. 주인이 쓰레기라고 인식하는 것을 '소실'시켜주는 쓰레기통이라니. 만지면 금이 되는 마이더스의 손만큼이나 무서운 것이지만, 민정은 몰랐고 대가는 참혹했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타인에게 인정받는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그 성취감을 기반으로 좀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을텐데 불행히도 민정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겨우 손에 넣은 평화는 봄이 오기 직전의 빙판 같기만 했다. 조급함과 불안함은 나쁜 선택의 지름길일까나.


다섯 번째 이야기는 전혜진 작가의 <컨베이어 리바이어던>이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같았다. 계속 문제 되는 물류센터 직원들의 과로(사), 식품회사에서 일어난 절단 사고, 제조 회사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망 사고 등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걸까. 어쩌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교묘해지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이란 구렁텅이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빚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곳에 매몰되어 흔적조차 없어질수도 있다. 누군가는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회상할 일이 누군가에게는 생계 그 자체일 수 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한 번의 실패가 생애 전체의 실패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에 붙들린 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사연일 것이고, 눈물일 것이다. 여전히 개개인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또 개개인들의 힘이 모이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좋겠다. 더 이상 이런 현실 같은 괴담이 퍼지지 않도록,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실체가 묻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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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1-23 0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괴담이라고 하지만 현실을 말하기도 하네요 거기에 괴담이라는 말을 넣은 것뿐이군요 한사람만 따돌리다니, 그런 일이 그때 한번이 아니었군요 때론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다는 걸 모르기도 하죠 늘 제대로 생각하려고 해야겠죠 누구나 가해자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꼬마요정 2024-01-31 10:11   좋아요 1 | URL
정말 괴담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들이었어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 딱 맞는 것 같아요. 제대로 생각하면서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은빛 2024-01-24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현실을 담은 소설집인 것 같네요. 이런 글을 읽고 책을 안 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ㅎㅎ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꼬마요정 2024-01-31 10:12   좋아요 0 | URL
정말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현실이에요. 귀신같이 약자를 알아보고 착취하는… 안타깝지만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