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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여름기담 : 매운맛 ㅣ 여름기담
백민석 외 지음 / 읻다 / 2023년 8월
평점 :
귀신이 무서울까, 인간이 무서울까. 나는 인간이 무섭다고 생각한다. 귀신은 하다못해 내가 알지 못하는, 알 수 없는 세계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기이한 일들도 나름 납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다른 존재들에게 저지르는 일들은 직접적으로 고통이 오기도 하고, 보거나 듣기만 해도 너무 참혹한 경우도 많으니까.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인 백민석 작가의 <나는 나무다>에서 화자인 나무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오백년을 버틴 나무마저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인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은 세월을 거듭하면서 자기종 뿐만 아니라 숲도, 나무도, 바다도, 산도 모두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오백년의 세월 동안 그 고통스러운 파괴를 지켜보는 나무의 마음은 절망에 가득찼다. 여전히 죽지 못한 나무는 다가 올 고통을 고스란히 견뎌야 할 것이기에. 인간은 불로불사를 꿈꾸지만, 돈이나 권력, 동반자가 없는 불로불사가 의미가 있을까.
두 번째 이야기인 한은형 작가의 <절담>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게 했다. 암매암의 유심 스님은 인플루언서이자 절밥의 대가이자 힙한 인물이다. 자신이 있는 암자의 매실을 정과로 만들어 스토리를 엮어 상품을 만들었고 유명해졌다. 그런 유명세 및 부(富)를 어떻게 거머쥘 수 있었을까. 암매암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요리조리 베끼고 이용한 것일까. 붉다 못해 피처럼 검은 홍매에서 나는 매실은 누구의 피를 머금었을까. 피보다 더 진한 욕망은 누구의 것일까. 유심 스님은 정말 성직자일까... 시대정신을 따른다는 그는 이 시대가 낳은 황금만능주의에 헌신하는 성직자일까.
세 번째 이야기는 성혜령 작가의 <마굿간에서 하룻밤>이다.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이자, 그런 외로움을 파고든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의지할 데 없는 암환자를 등쳐먹기 위해 교묘하게 기억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사실 그 기억이 온전하기는 할까. 문진의 어머니는 왜 그 마굿간이 있는 땅을 파는 것을 반대했을까. 돌아갈 곳은 누구에게 해당하는 것일까. 인간이라는 존재가 머금는 사랑은 어떻게 이리도 이기적일까, 슬퍼진다.
네 번째 이야기는 성해나 작가의 <아미고>이다. 아미고, 친구를 뜻하는 그 단어는 AI 로봇에게 붙혀진 이름이다. 스턴트 배우들 사이에 어느 날 들어 온 그 로봇은 어느 새 그 스턴트 배우들을 모두 몰아냈다. 단 한 사람, 죠만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죠는 이미 한 차례 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로 인해 자동차 엑셀을 밟기가 무서워졌고, 결국 그 씬은 아미고가 대신 찍었다. 동전 던지기 같은 미신이라도 단 한 차례의 행운을 바랐던 죠는 인간에게는 버림 받았고, 로봇에게는 구원 받았다. AI가 대체한 현실이 무서울까, 인간이 인간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현실이 무서울까.
역시 인간이 제일 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