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픽션
조예은 외 지음 / 고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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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은 1940~1950년대 미국에서 크게 히트했던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의 값싼 문고판을 부르는 용어였다고 한다. 이 소설들은 주로 대도시 뒷골목 범죄세계를 무대로 하여 왜곡된 인간관계를 고발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또한 쿠엔티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은 1970, 80년대 미국 대도시의 ‘그라인드 하우스’라 불리던 극장에서 2, 3편씩 동시에 상영하던 야하고 폭력적인 싸구려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모방하고 재현한 영화다.(출처 :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 신강호, 커뮤니케이션북스) 


그렇다면 이 다섯 가지 이야기들이 주제부터 이야기 서술 방식까지 자유로우면서도 실험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예은 작가가 '펄프픽션'이라는 말을 듣고 패스트푸드를 떠올렸다든지, 류연웅 작가가 피를 뽑아 투자하는 시대를 상상한다든지, 홍지운 작가가 자신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 무엇일까 생각한다든지, 이경희 작가가 이서영 작가의 <노병들>을 떠올리며 싸움의 허무함을 느낀다든지, 최영희 작가가 '고시랑고시랑' 말을 걸어 줄 로봇을 꿈꾼다든지 하는 일들이 참신하다고 느끼면서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소위 '속되다(저속, 키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햄버거를 먹지 마세요'는 사실 누구나 짐작 가능한 이야기이다. 불행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입시 기숙학원을 선택한 루루와 제이는 그 기숙학원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된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그 '햄버거'가 이유라니. <스위니토드>도 그렇고 만두집 괴담 같은 것도 그렇고 그 '재료'를 쓰는 건 장사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다. 이 명문 기숙학원이 그 '재료'를 쓰는 건 명문대 합격생을 배출하기 위해서다. 결국 진짜 목적은 모두 '돈'이지만. 단순하지만 그들이 비밀을 알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나 그 곳을 탈출하는 방식은 웃기기까지 하다. 명문대에 갈 수 있다면 알 수 없는 재료로 만든 햄버거를 매일 먹으면서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광기나 명문대 합격생을 계속 늘려 평판을 유지해서 돈을 많이 벌려는 원장의 광기나 자신의 투자 실패를 제이의 탓으로 돌리는 김사장의 광기는 폭발하는 믹서 기계만큼이나 우스꽝스럽다. 이건 마치 개구리가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개구리를 먹으면 정력에 좋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이야기 '떡볶이 세계화 본부' 역시 웃기다. 맵지리인 나는 1단계를 넘어가는 매운맛은 혀에 불이 나서 못 먹는데, 영국의 뱀파이어인 스네이크 씨는 어떠할까. 사망분식의 떡볶이는 진짜 혀에 불이 날 정도로 매웠고, 스네이크 씨는 불을 뿜는 뱀fire가 되었고, 매혈이 불법인 영국에서 한국으로 건너 와 뱀fire의 무지막지한 힘으로 건설 노동자가 되었고, 그의 능력은 한국의 건설 노동자들이 피를 뽑아 줄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스네이크 씨는 피를 대가로 환대받는 노예가 되지만, 마이너한 존재였던 그가 환영받는다는 그 자체에 감격하며 만족해하는 모습이 좀 짠하기도 했다. 제일 짠한 건 그의 혀와 위였지만. 그의 능력을 알게 된 영국과 영국 내 뱀파이어들과 사망분식의 레시피를 원하는 사람들과 한국의 상황은 참 골치 아프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불과 아버지와 예수님의 재림(?)으로 해결이 되는걸까. 스네이크씨 우리집 좀 리모델링을 해주면 내 피 좀 뽑아줄텐데...

세 번째 이야기는 '정직한 살인자'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일 부러웠다고나 할까.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아는 외계인이라니. 시체를 던졌더니 외계인이 금시체, 은시체를 보여주며 니가 던진 게 무어냐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장동 도끼 김형관이 그래도 조폭이고 덩치가 좀 있다고 한다면 키는 170cm는 넘고 대충 80키로 정도라고 한다면 말이다. 금시체의 시세는 얼마일까. 지금 시세로 60 ~ 70억 정도 되지 않나. 우와 부럽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는 독자가 얼마나 속되고 속된지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아내가 없어지는 게 제일 슬플 것 같다는 작가님께 미안하다.

네 번째 이야기는 '서울 지하철도 수호자들' 이다. 풍수지리와 주역에 통달한 듯한 민원인 명현과 출근하자마자 아니 어젯밤 잠들자마자 퇴근하고 싶어하는 신입 한나의 기묘한 동행은 처음에는 어이없다가 점점 진지해지는 모양이다. 철도로 '땅밟기'를 해서 한양에 모여있는 여섯 용의 기운을 누른다는 등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경의선과 중앙선을 연결하여 이상한 마계 같은 것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슬펐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잊혀져 가는 풍속들이 안타까웠다. 개발 논리에 계속 땅을 조각내고 첨탑들을 세우면 천재지변에 취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빌딩풍에 걷기도 힘든 경우가 많고, 배수가 되지 않아 침수가 일어나는 건 특이한 일이 아니게 됐다. 한 때는 같은 뜻으로 싸우던 이들이 분노와 좌절 때문에 다른 길을 가는 것 역시 특이한 일이 아닌 것처럼.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최우선이 아닌 돈이 최우선이 된 세상에서 인간성을 지키고 자연을 지키는 길은 무엇일까.

다섯 번째 이야기는 '시민 R'이다. 청소로봇으로 개발된 알옛은 <스타워즈>의 R2D2를 모델로 했으며 무성적이고 무조건적으로 귀엽다. 알옛은 개발자이자 재벌가 출신인 강희원의 로봇인데, 그의 서재 청소도 한다. 즉, 책정리를 한다는 말이다. 있는 책을 다 읽고 분류도 하며 버릴 책 보관할 책을 구분해서 정리한다. 여기서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나도 갖고 싶어!!!!!" 그렇다. 이 이야기 역시 나의 속되고 속된 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펄프픽션인가. 알옛이 로봇이었다가 어떻게 '시민 R'로 성장하는지, 타자가 처한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정의로운 존재인 시민이 되기까지 알옛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거듭했는지보다 나 편하게 청소해주는 로봇,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를 벌하는 로봇으로의 알옛에게 더 관심을 가졌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는 건 낄낄거리면서 웃다가도 잠시 슬퍼하다가 다시 애절하다가도 계속 비루해지는 내 마음을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금시체에 제일 혹했던 나 역시 돈이 최고였던 걸까, 잠시 반성해본다. 모두의 능력이 돈으로 환산되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선의는 선의 그대로, 옳은 일은 옳은 일 그대로, 사랑은 사랑 그대로, 정의는 정의 그대로 그렇게 주고 받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설사 꿈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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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8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29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9-08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당선 축하드려요.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꼬마요정 2022-09-09 21:1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추석 연휴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9-08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9-09 21:1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추석 명절 행복하고 풍성하게 보내세요^^

이하라 2022-09-08 1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즐겁고 행복한 추석연휴 되세요.^^

꼬마요정 2022-09-09 21:1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추석 연휴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새파랑 2022-09-08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당선 축하합니다. 기쁜 추석 즐거운 추석 스트레스 없는 추석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꼬마요정 2022-09-09 21:1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새파랑님도 즐거운 추석 스트레스 없는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 2022-09-08 1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9-09 21:14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추석 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9-10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오늘은 추석 입니다.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꼬마요정 2022-09-10 20:06   좋아요 2 | URL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thkang1001 2022-09-10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꼬마요정 2022-09-10 20:0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