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




"원래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잖아.."

얼마전 검찰의 공안 관계자가 저 말을 했을 땐, 전교조 얘기를 나눌 때였다. 최근 연가투쟁 등으로 전교조 지도부가 처할 위기를 언급했는데, 위기는 커녕....현 지도부에 불만이던 과거 위원장파가 득세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거다.

위기란게 때론 별거 아니구나...아니 실제로는 별거 아니구나...누군가에겐 유리한 국면이구나 했다.
하지만 현실의 비극은 그렇게 간단하게 정치적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영화 주인공 데미안의 운명을 이렇게 쉽게 해석하고 싶지 않다.

영화는 1920년대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으로부터 출발한다. 평온한 장면은 불과 몇초. 곧바로 무자비한 영국군이 등장, 아일랜드인들이 싸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삐딱한 말 한마디가 10대 소년의 목숨을 그 어미의 눈 앞에서 영국군의 화풀이감으로 내던진다.

시작부터 충격요법으로 시작된 카메라의 시선은 그 시절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눈을 떼기 어렵다. 무척 피곤한 날이라, '예술영화'에 졸지나 않을까 다소 걱정했지만, 숨가쁜 싸움을 그대로 쫓아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명 대사. "조국이라는 게,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거겠죠"
의사의 길도 포기, IRA 게릴라가 된 데미안이 '배신자'로 드러난 동네 소년을 즉결처분하면서 던지는 얘기다.  참혹한 식민지에서 배신이 어디 꼭 선택할 문제일까 싶은 상황이지만, 데미안은 소년을 쏘아죽인다. 소년의 마지막 한마디.  자신을 배신자로 만든 놈 옆에 묻지 말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소박하다고도 말 할 수 없는 마지막 소망이다.

조국이란게 과연 그럴 가치가 있었을까. 평생 악몽처럼 쫓아다닐 부채감.

하지만 영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로 싸우던 시절이 나았다. 영국 연방으로 남되 아일랜드 자치를 인정하는 정세 변화는 독립군을 분열시킨다. 데미안의 형 테디는 독립투쟁 지도자에서 하루아침에 기득권자가 된다. 지주의 편에 선 '현실주의자'. 데미안은 프롤레타리아의 편에 서서 '기회주의자'가 되어버린 형과 싸우게 된다. 누가 현실적이고 누가 이상주의자인지 중요하지 않다. 형제의 비극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조국이란게, 이념이란게 과연 그럴 가치가 있었을까. 감독의 시선은 냉정하다. 굳이 희망을 찾을 이유가 없다. 역사는 반복되고, 좌파도 우파도 스스로 무너진다. 분열이든 부패든 이들이 무너진 뒤에 다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이들이 등장함은 물론이다.


(추가로 붙임.....가을산님 댓글 보고 화들짝 놀라버렸다. 이 영화는 나를 씨니컬하게 만든게 아니라,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작품인데...내 감상은 왜 이 모양이 되버렸을까. '굳이 희망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절망과 비극이 어우러진 역사였지만, 희망을 위해 싸우던 이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섣부른 단정적 어투에 대해 스스로 변명하긴 늦었지만...어우....여전히 역사는 그들의 싸움을 통해 진보함을 믿는다. 부패든 분열이든 그 어떤 진통 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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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신문사 사회부 회식 대신 이 영화를 감상했다. 사회부가 이런 영화를 본다고 하니...전 문화부장이신 B선배는 "사회부 수준에 뭔 보리밭이냐. 괴물이나 봐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진장 보고팠던 영화고....메가박스에선 일주일만에 막을 내린 탓에 회사 옆 시네큐브에서 반드시 봐야 했고....나의 '강추'가 통과되자 후배들이 울상을 지었다. 머리아픈 영화란게다. 그리고....정말 다행스럽게도, 극장에서 나온뒤 다들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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