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친 상 간 과 부 친 살 해 :
아빠를 부탁해
불교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이쪽 방면에서 꽤 박식하다는 이에게 읽을거리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그가 내민 책이 << 벽암록 >> 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이 책 한 권 속에 불교 철학의 모오든 삼라만상이 담겨 있습니다, 할렐루야 !
하지만 나는 읽다가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 읽긴 읽었으나 안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책을 추천한 이를 원망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은 마치 구구단도 못 외우는 이에게 위상수학 책을 내민 꼴이라고나 할까. 듣기로는 돈오를 경험하게 되는 선문답 모음집이라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독설과 요설이 난무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만 생각난다. 이 책에서 운문문언 선사는 " 만약에 석가모니가 내 앞에서 다시 한 번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오만을 부린다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겠다. " 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가 하면 그 유명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라(살불살조살부살모(殺佛殺祖殺父殺母))의 출처도 이 책이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니..... 부처님을 왜 죽여. 듣기로는 속세에서 선승이라 칭송이 자자하던데 아니올씨다,네. 요승이네, 요승. 요물들이야. 살불살조살부살모의 깊은 뜻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계기는 이명박근혜 정권을 경험하면서 시작되었다. 달리 생각하면 : 씨발놈들, 참... 고마우신 분들이었다. 이명박 정권을 대표하는 문화 상징은 신경숙 문학이었다.
소설 << 엄마를 부탁해 >> 는 날짐승도 아니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런가 하면 박근혜 정권을 대표하는 문화 상징의 키워드는 << 아빠를 부탁해 >> 였다. 박정희 신화가 폭력적인 아빠에 대한 마조흐적 향수였다면 < 7번 방의 선물 > 은 모자란 아빠에 대한 향수였고, 오락 프로그램 < 아빠 어디 가 > 와 < 아빠를 부탁해 > 는 " 아빠 " 라는 낡은 이미지를 유쾌하고 즐거운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이명박근혜 정권을 관통하는 문화 상징은 상징적 아버지(어머니)에 대한 긍정성'이었다. 의문이 들었다. 왜, 이명박근혜 같은 극우 정권은 하필 아버지와 어머니를 호출했을까 ?
돌이켜보면 진보 정권 10년을 관통하는 것(혹은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항했던 운동권 문화)을 이성복과 최승자 시인의 시를 빌려서 설명하자면 " 아버지...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1) " 와 " 오, 개새끼 못 잊어 2)" 였다. 장정일을 필두로 새롭게 대두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핵심은 아버지 개새끼'가 아니었을까. 이 사실을 감안하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는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야 된다는 요설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스승과 우상으로서의 아버지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문화 예술 전반의 숙명적 비극인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아버지를 숭배하고 죄를 은폐하게 되면 그 문화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고은, 이윤택, 조민기,조재현의 추태가 말해주는 것은 부친 살해에 실패하게 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고인 물이 썩듯이 인간은 아버지가 되는 순간, 어머니가 되는 순간, 부처가 되는 순간, 조사가 되는 순간 반드시 부패한다. 공교롭게도 오락프로그램 << 아버지를 부탁해 >> 에 출연했던 두 아버지(조민기,조재현)가 어린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점은 아버지의 본성이 근친상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근친상간3)에 대항하기 위해 부친살해가 필요한 것이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 아버지 개새끼 > 를 말할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인 반면에 < 이십대 개새끼 > 를 주장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하여,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 개라도 말 못해 !
가족의 이익을 위해 부정부패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가족주의로, 이탈리아 마피아의 가족주의가 그 전형적인 사례다. ‘비도덕(amoral)’은 ‘부도덕(immoral)’과 달리 도덕에 반한다기보다는 도덕 관념이 없거나 약한 것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살펴볼 때에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일수록 부정부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런 현상도 비도덕적 가족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가톨릭 국가들이 프로테스탄트 국가보다 부패가 더 심한 것도 가톨릭 국가들이 더 가족 중심적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같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가족에 대한 의무를 더 강조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앙아시아 국가들보다 부패의 정도가 한결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차원에서 부정부패는 혐오스러운 것이지만,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람의 가족에겐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된다. 사회적으로 부정부패 척결의 목소리가 아무리 크게 외쳐져도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것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람의 지극한 가족 사랑 때문일 수 있다.
-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 , 선샤인 논술사전(인물과사상사)
1) 그해 가을, 이성복
2) Y를 위하여, 최승자
3) http://myperu.blog.me/220280372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