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를 보며 의자를 떠올리다 :
영화 흥부 : 다 자빠뜨려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경우에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
-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 16조
러시아어를 한국말로 발음할 때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 라이터 > 는 " 좌지깔까 " 로 발음되고, < 내일 또 만나 > 는 " 다 자빠뜨려 " 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 헤이, 친구 ! 좌지깔까(어이, 친구 ! 불 좀.... ) " 이라거나, " 헤이, 친구 ! 우리집에서 다 자빠뜨려(어이, 친구 ! 우리 집에서 내일 또 만나....) " 라고 말했다가는 성폭력 설화에 휩쓸리기 딱이다, 물론 이 모오든 구설수가 오해에서 비롯된 사실이라는 것이 곧 밝혀지겠지만......
영화 << 흥부 >> 을 연출한 조근현 감독은 뮤직비디오 주연 배우 오디션 과정에서 여성 응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깨끗한 척 조연으로 남느냐, 다 자빠뜨리고 주연하느냐, 어떤 게 더 나을 것 같아 ? 조연은 아무도 기억 안 해 ! " 설 대목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설렜던 감독은 " 다 자빠뜨려 " 라는 이 한마디에 모든 게 무너진 인간이다(물론 이 설렘은 감독의 착각으로 밝혀졌다. 시사회 이후 작품성에 대해 흉흉한 소문이 돌던 영화였다). 그는 타인을 " 자빠뜨리 " 려다가 스스로 " 나자빠진 " 경우라고나 할까. << 흥부 >> 가 설 대목을 겨냥한 영화이다 보니 한국 영화 평균 순 제작비 50억이라고 했을 때 여기에 덧대어 마케팅 비용 대략 20억 정도를 포함한다면,
어림짐작만으로 계산해도 이 영화에 70억 이상의 투자비가 투자되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조근현의 말 한마디에 70억이 투자된 영화가 나자빠진 경우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조근현은 말 한마디에 70억을 날린 꼴'이다. 조근현의 구설 중에서 내가 눈여겨본 대사는 조연은 아무도 기억 안 해 _ 라는 말이었다. (여성) 주연을 감독 따위나 자빠뜨려야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믿는 감독의 저능한 인식도 문제이지만 조연은 아무나 해도 된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전자가 감독의 발기된 여성관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잘못된 직업관을 보여준다.
박력 있는 주연보다 매력 있는 조연이 영화를 살리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 살인의 추억 >> 이 위대한 걸작으로 남는 이유는 김뢰하, 송재호, 변희봉, 류태호, 박노식의 기라성 뺨치는 매력적인 조연 덕이다. 밀가루 요리에서 박력분과 중력분은 그 쓰임새가 다를 뿐이지 중력분이 박력분의 시다바리는 아니다. 영화에서의 주연과 조연 역할도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을 가진 감독이 만든 영화라면 안 봐도 비디오다. 똥을 굳이 먹어봐야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하여,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나 본 것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으로 별점과 함께 20자 평을 남기자면 : 흥부 찍다 흥분한 감독의 일갈. " 다, 자빠뜨려 ! "
결론 : 좌지까까와 다자빠뜨라'라는 러시아어를 발음할 때는 항상 문맥을 따져가며 사용할 것. 조근현 감독에게 있어서 < 자빠뜨리려는 욕망 > 과 < 세우려고 하는 욕망 > 은 비슷한말이지만, 반대로 자빠뜨리려는 욕망과 자빠지지 않으려는(세우려고 하는) 욕망이 상반된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 자빠뜨려 > 의 반대말은 " 좌지까까 " 가 아니라 < 의자 > 다. 영화 << 방가방가 >> 에 등장하는 의자 공장 최반장의 말을 빌리자면 의자는 " 자빠지지 않으려는 불굴의 의지 " 가 내재되어야 한다. 아무리 디자인이 훌륭하다 한들 쉽게 나자빠지는 의자는 의자가 아니라 의지박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