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 가장 구시대적인 불질을 그리워하며 :
캠핑과 부시크래프트의 차이
어릴 때는 한자 休( : 쉴 휴)를 볼 때마다 木 대신에 水가 붙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곤 했다. 제대로 쉴려면 산보다는 물가에서 발이라도 담그고 놀아야 하는 것 아닐까 ?
하지만 나이가 들다 보면 물보다는 나무(혹은 숲) 혹은 산의 물성이 인간이 가지고 놀기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에서 하는 놀이라고 해봐야 기껏 물질과 낚시질이 전부이지만 인간은 산에서 놀면 신선(神仙)이 될 수 있다(물에서 기똥차게 노는 달인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명예는 기껏해야 물개이거나 물귀신이다. 나는 묻고 싶다. 물개가 높냐, 신선이 높냐. 물귀신이 좋냐, 산신령이 좋냐. 응?). 나무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역시 " 불질 " 이다. < 부시 크래프트 bush craft> 는 한자 " 休 " 가 사람과 나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까닭을 설명하기에 적당한 스포츠다. 번역하자면 캠핑의 서바이벌 익스트림 스포츠 버전 ?!

쉽게 설명하자면 <<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 이 부시 크래프트'이다. 그는 한국의 베어그릴스'이다. 부시크래프트는 옛사람들을 따라하는 원시적인 소꿉놀이인 셈이다. 덤불'을 뜻하는 " 부시(bush) " 와 기술'을 뜻하는 " 크래프트(craft) " 의 합성어로,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물을 최대한 활용해 아웃도어를 즐기는 레포츠를 말한다. 부시크래프트는 캠핑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전문화된 캠핑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의식주에 필요한 것을 직접 구하고 해결한다는 점에서 캠핑이 (아이스)크림이라면 부시 크래프트는 브루스 윌리스의 하드'다.
이 놀이 과정에서 화룡점점은 뭐니뭐니해도 " 불질 " 이다. 도끼질로 땔감을 구하고 불을 지펴 쿠킹을 완성하면 당신은 레트로 서바이벌 익스트림 레포츠의 킹 ! 불을 다루는 방식이야말로 부시크래프터가 캠핑족과는 전혀 다른 종족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게 한다. 캠핑촌의 캠핑족들이 성냥이나 라이터로 불을 지핀다면 부시크래프터는 나무 막대기나 부싯돌(파이어 스틱)로 불을 만든다. 불은 어렵게 얻을수록 빛이 나는 법. 연기로 시작한 불씨가 보푸라기를 태우다가 나중에는 장작을 태우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부시크래프터가 개고생하며 불질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기 - 승 - 전 - 퐈이야 !!!
영화 << 1987 >> 은 " 부시크래프트 " 보다는 " 캠프파이어 " 에 가깝다. 어렵게 불씨로 시작해서 끝은 통나무를 불태우는, 그런 장르'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당혹스럽다. 그러니까...... 넌, 나에게 모욕감 모닥불을 줬어 ! 보는 내내 당혹스러웠다.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은 가장 구시대적인 불질이었다. 짐승의 털을 모으거나 지푸라기를 구겨서 보푸라기를 만들고, 발화점에 도달하여 연기를 피우고, 보푸라기 위에 잔가지를 덮고 바람을 불어 불씨를 살리고, 그렇게 해서 옥이야 금이야 불이야 ! 결국에는 굵은 통나무를 태우는 불꽃으로 작렬하는 불놀이 진행 코드를 기대했으나 영화는 시작부터 통나무를 태우는 불꽃으로 시작한다.
등장인물들의 발화점이 너무 낮다 보니 감정은 과잉처럼 보인다. 낮은 발화점에서 너무 쉽게 대성통곡하고, 너무 쉽게 화를 내고, 너무 쉽게 주먹부터 나간다. 한국 신파의 잘못된 전형이 바로 낮은 발화점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마치 온몸에 시너를 붓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꼴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평단의 반응이었다. 이 영화는 대중영화로써 장점이 많은 영화이기는 하나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도 단점이 많은 영화'이다. 사실, 김윤석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서 가려졌을 뿐 그가 연기한 박처장이라는 캐릭터는 정치 악당의 전형적인 클리셰 덩어리'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인물 설정'인 셈이다. 그리고 연희(김태리)와 한열(스포일러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작자 미상)이 썸 타는 청춘 멜로 판타지도 이 영화의 톤앤매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가 그럭저럭 좋은 오락영화라는 데에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는 있지만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한국 영화라는 평론가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복해서 강조하자면 나는 관람객의 평가는 수긍하지만 평론가의 평가는 수긍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올해 가장 과대 평가된 영화로 남을 것이다. 뭐......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