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것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불행한가를 두고 어머니와 썰전을 펼친 적이 있다. 어려운 선택은 아닐 것이다. 십중팔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한 표를 던질 테니까. 나 또한 十中八九派(십중팔구파)에 소속된 사람이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는 주장을 펼쳤으나 十中一二派에 소속된 어머니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고 강조했다. 

​"    으째쓰까, 으째 앞 못 보는 사람이 더 불쌍하다고 함부로 씨부리냐잉. 니맹키로 한 치 앞만 보면 그런 말 헐 수 있제. 근데 그게 아니여.  이눔아, 말 못하는 거시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거시여.  할 말 못하고 사는 거시 을매나 서러운 거신 줄 아냐.  세상 살다 보면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살아야 허는디,   눈 멀면 안 볼 거 안 보니 을매나 편하냐. 그냐, 안 그냐.  니맹키로 이명박이 꼴도 보기 싫어하는 놈은 차라리 앞 보는 것이 낫당께(참고로 어머니는 충청도 분으로 서울 말씨를 사용하지만 글맛을 위해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한다. 전라도 사투리야말로 입말의 장관이요 국무총리감이다)     "

40년 동안 거리에서 교회 전도 생활을 하셨던 어머니는 사람 마음을 휘어잡는 교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 니맹키로 명박이 싫어하는 놈은 차라리 앞 못보는 게 맴이 편한겨 ~ " 라고 지적하자 나는 설득당했다. 그래, 이명박이나 박근혜 상판대기 보느니 차라리 안 보는 게 낫지. 그 길로 십중팔구파를 떠나 십중일이파로 소속을 옮겼다. 그때부터 말 많은 사람보다 말수 적은 사람을, 말소리 큰 사람보다는 말소리 작은 사람을, 포효하는 사자보다는 밟으면 꿈틀거리는 지렁이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지하게 되었다. 그렇다, 집에서 지렁이를 키우게 된 계기도 그들의 소리 없는 삶에 대한 지지였다. 

처음에는 징그러워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를 쳤으나 기른 정이 있다 보니 내 새끼 같더라. 소리 없는 것이 이렇게 순하구나. 그래서 나는 해물탕집에서 펄펄 끓는 육수에 산 낙지를 넣는 장면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살이 익어가는 고통 앞에서 침이 고이는 식객을 보면 화가 난다. 이건 아니쟈냐, 이건 아니쟈냐, 이건 아니잖아. 수산 시장에서 활어를 잡아 그 자리에서 바로 살아 있는 물고기를 바로 해체하는 모습도 볼 수가 없다. 살은 잘려 나가고 내장도 떨어져 나가는데 꼬리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 말 없는 저 짐승을 보고 있으면 우럭도 아니면서 울컥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물고기는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짐승으로 알고 있지만 물고기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실험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니까 당신 팔이 잘라나갈 때 느끼는 고통과 물고기의 몸통이 잘려나갈 때 느끼는 고통은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자세한 내용은 조너선 벨컴의 << 물고기는 알고 있다 >> 를 읽어보시라. 엄지 척! 이 책, 매우 탁월한 자연 과학서이다). 만약에 소리 없는 것들이 소리를 얻어 소리를 지를 수 있다면 지금처럼 펄펄 끓는 해물탕 육수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낙지를 보며 침이 고일 수 있을까 ? 

문어가 나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이란 이상한 장르여서 인간과 문어 사이에 대화가 가능했다. 나는 문어에게 말했다. " 이것아, 다음 생에는 인간보다 더 씨뻘건 피를 가진 짐승으로 태어나라잉. 그래서 해물탕 냄비 속에서 죽을 때에는 검은 먹물 대신 시뻘건 피를 토하고 죽어라잉. 그래야 인간은 비로소 너의 고통을 이해하고 죄책감을 느낄 것이여. 타인의 고통 앞에서 침이 고이는 식욕을 부끄러워할 거시여 "  문어는 흐느적거리는 다리를 끌고 나에게 다가와 포옹을 했다. 히마리 없어서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문어를 보자 히마리 없는 하빠리 주정뱅이의 소프트바디가 생각났다.

 

끈적끈적하고 촉촉한 다리의 촉감이 내 살갗에 와 닿자, 아 !  나는 우럭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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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12-2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지만, 바뀐 프로필 사진도 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2-27 09:07   좋아요 0 | URL
프필에 관심을 가지신 분은 라로 님이 최초이십니다.. ^^

라로 2017-12-28 12:28   좋아요 0 | URL
진짜요?? 안 믿겨요~~~.ㅎㅎㅎ
저는 언제 기획 있으면 얘기해야지 했는데 제 칭찬이,,,좀 허접하죠???ㅎㅎㅎㅎ
하지만 언제나 곰발 님 프로필 개성있고 독창적이라 좋아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2-28 12:46   좋아요 0 | URL
동생이 쇼핑몰 하다가 장가 갔는데 장비를 두고 갔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심심할 때마다 사진을 찍곤 하는데 어디 써먹을 데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프로필을 자주 바꿉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