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 탄생
필립 아리에스 지음, 문지영 옮김 / 새물결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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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없다


 



ㅡ 피터 브뢰헬, 아이들의 놀이 1559







" 어른(이 된다는 것) " 을 주제로 글을 하나 써야 하는데 아무리 쥐어짜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리저리 글감 자료를 찾다가 매우 흥미로운 그림 하나를 발견했다. 피터 브뢰헬의 풍속화 << 아이들의 놀이 >> 에는 아이들이 200명이 출연한다. 그들은 각자 혹은 끼리끼리 모여서 75가지의 놀이를 재현한다. 팽이 돌리기, 굴렁쇠 굴리기, 말뚝박기, 기마놀이, 돌치기 놀이 등 말 그대로 " 놀이 백화점 " 인 셈이다. 내가 이 그림에서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그림 속 아이가 어른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돋보기가 없다면 그림을 확대해서 세세하게 살펴보면 아이가 어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른이 아이를 흉내 내며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합하면, 이 그림은 아이와 어른 구별없이 놀이를 즐기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 17세기 이전에만 해도 아이는 7세 정도가 되면 어른 취급을 했다. 그들은 어른의 공동체에 속해서 술도 마시고, 노름도 하고, 섹스도 즐겼다. 동양도 마찬가지였다. << 임꺽정 >> 의 저자 홍명희는 나이 13세에 결혼해서 서른에 손자를 보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라고 ?! 아니다, 그는 20세기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아이와 어른을 구별하는 것은 필립 아리에스의 주장대로 근대 이후가 만든 프레임이다. 그는 << 아동의 탄생 >> 에서 아동이라는 계층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근대 이후 인간을 억압하고 통제할 목적으로 발명된 신제품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른이라는 계층도 헛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유년 시절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지위이기 때문이다. 올챙이 시절 없이는 개구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유년이 헛것이라면 성년도 헛것이다. 그러므로 어른이라는 계급은 판타지다. 한마디로 어른은 없다. 진실은 단순하다. 어떤 진실에 대해 20자 이내로 설명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철학의 영역에서 다퉈야 할 문제이지만 20자 이내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진실에 가깝다. 간단 명료하게 말하겠다. "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 " 나이 가지고 유세 떨지 말자.




본문과는 상관없는 발문 ㅣ ㉠ 대부업 광고 문구 중에 " 여자니까 쉽게 " 라는 표현이 있다. 여성을 특별 우대하겠다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 여자는 멍청해서 복잡한 것은 못해 " 라는 뉘앙스로도 읽을 수 있다. 여성 우대보다는 여성 홀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현세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보기에는 근대 이전에는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고 어른 취급하는 태도가 아동 학대(방치)처럼 보이지만 아이를 억압하고 학대하는 쪽은 현대인이다. 아이를 위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억압의 결과이다. 그것을 외면한 채 아이와 어른을 구별하는 것은 차별이다. ㉡ 길(밖)에서 자유롭게 놀던 아이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아이와 어른을 구별한 후 아이들을 길에서 내쫓는 것이었다. 그래서 억압자는 학교를 세운 후 그곳에 아이들을 감금한다(학교가 교육 시설이 아니라 억압하기 위한 제도라는 사실은 푸코의 << 감시와 처벌 >> 에서 자세히 다루지만, 이미 그 이전에 필립 아리에스가 << 아동의 탄생 >> 에서 자세히 다루었던 주제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소개한 두 책은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 어른에게 복종할 것 " 이다.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는 평등은 어른에게 까불면 맞는다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규율을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어른의 공동체에서 배제된다. 그들에게 주어졌던 자유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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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19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화를 보는 성인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른’을 권위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술 마시고, 섹스하고, 노름하고, 유흥주점에 가는 것을 ‘어른’이 누릴 수 있는 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놀이에 푹 빠지면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행복까지 파괴해요. 절제할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책 읽고 만화 보고, 피규어 모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9 21:02   좋아요 1 | URL
저는 만화라는 장르가 문자로 텍스트를 꾸미는 문학보다 한 단계 위라고 생각합니다. ^^
꼭 보면 책 안 읽는 사람이 만화책 무시하고는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