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편  을     예  찬  하  며   :


 


 



냉장고와 화폐




 


 


                                                                                                          선풍기와 에이컨 둘 다 성능이 비슷한 가전제품이라고 말하면 누구나 동의한다. 그런데 내가 냉장고와 화폐도 그 성능이 비슷합니다 _ 라고 말하면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폐의 효용을 곰곰이 따지고 보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화폐가 없던 옛날을 생각해 보자.  어부가 그해에 많은 생선을 잡았다고 해서 일년 내내 먹을거리 걱정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걱정 없이 잡은 물고기를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기간은 고작 며칠이 전부이다. 물고기는 살이 물러서 쉬이 썩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생선을 잡았다고 해도 그것을 식량으로 소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생선 보관을 늘리기 위해 고안한 것이이 염장(鹽藏) 저장 방식'이다.  염장은 보관 기간을 최대한 늘려주기 때문에 " 저장(저축, 축적) " 이라는 최초의 경제적 개념을 탄생시켰다.

냉장고(냉동고)는 먹을거리를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을 최대한 늘린다는 점에서 차가운 염장 저장 기계'이다. 최근 실험에서 일반 가정집 냉장고에 가득 찬 음식을 다 소비하는데 드는 기간은 평균 3개월이라는 통계값이 나온 적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냉장고에 3개월치 식량을 보관, 저장, 축적, 저축하며 오늘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두고 고한다. 화폐도 마찬가지다. 화폐를 가진 사람은 굳이 생선을 잡을 필요도 없고 잡은 생선이 썩을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으며 그것을 보관할 음식 창고도 필요없다. 필요할 때 그때그때 화폐와 생선을 교환하면 되니깐 말이다. 화폐를 쌓아둔다는 것은 썩을 걱정 없는 생선을 쌓아둔다는 것과 동일하다.

문제는 다가울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너무 많이 쌓아둔다는 데 있다. 평생 먹어도 다 못 먹을 음식을 냉장고 속에 꾸역꾸역 보관하면서도 신선한 생선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냉장고는 유통 기간이 지나지 않은 싱싱한 생선으로 다시 채워진다. " 얼어 죽을 동태 " 보다는 " 죽은 척하는 생태 " 가 더 맛있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얼어 죽을 동태들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을까 ?  아마도 오랫동안 냉동고에서 방치되었다고 결국에는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질 것이다. 마치 군둥내가 나기 시작하면 버려지는 늦봄의 김장 김치처럼. 이런 식으로 버려지는 음식(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생산된 식량과 유통 기간이 지난 식품)이 전체 식량 생산의 40%에 육박한다고 한다1).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죄악에 가까운 소비 습관인 셈이다.  냉장고야말로 자본주의 욕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냉장고는 진화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요리 레시피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냉장고가 생산되고 있다.  그 광고를 볼 때마자 징그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저런 삶이 편리(편안)한 것인가 ? 편리(편안)해서 행복한가 ?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불편한 것을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인간은 불편한 도구를  즐기는 존재이다. 우선 자판 배열 구조 자체가 불편하도록 만들어졌다. 자판기 제조업자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 ?

천만에, 그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 자판 배열을 고수한다. 그리고 기타도 악기를 연주하기에는 불편한 구조이다. 그뿐이 아니다. 여행만 해도 그렇다. 여행의 본질은 불편함에 대한 예찬'이다. 산속에서 캠핑을 해본 사람은 그 불편함이 주는 짜릿한 오르가슴을 알고 있다.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나 문학, 영화 따위도 대부분은 불편한 설정으로 관객의 흥미를 유도한다. 인간은 타인의 불행에서 행복을 느끼는,  좐인하안 ~ 족속이다. 사람들은 편안한 관계가 좋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을 조금은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상냥한 표정과 친절한 말투로 우리 편하게 지내자 _ 라고 말하면 나는 시니컬한 표정을 짓고는 이렇게 말한다. 조까세요. 난 조금은 불편하게 좋아요. 꼰대들은 항상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편하게 있어 _ 라거나, 내가 한 살 위이니까 말 편하게 할게 _ 라거나,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이니 편하게 일해 _ 라거나, 내 딸같이 편하게 생각해서 너의 젓가슴을 터지도록 만졌어 _ 라고 말한다. 가족 같은 분위기는 대부분 회사가 족같을 때 그것을 감추기 위한 전략이다. 그 말속에 숨은 행간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굳이 이 말속에 숨겨진 꼰대의 하대 정신을 들먹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불편함을 찬양한다.










​                                  


1) 대형 곡물 유통 기업들은 곡물이 과잉 생산되면 엄청난 양을 바다에 버린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12-12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맛있는 김치를 오래 먹으려면 최소 김치 냉장고 한 대로 부족해요. 김치 냉장고가 일반 냉장고의 냉동실 기능까지 하니 요리 재료 보관에 고민하는 주부라면 안 살 수가 없어요. 먹을 게 많은 것도 단점이 있어요. 먹을 것이 많아지면 보관 장소가 부족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2 21:24   좋아요 0 | URL
하긴 제 집도 냉장고가 대형으로 3개였습니다... 일반 대형 양문냉장고 2개에 김채 초대형 한 개....
개인적으로는 이해불가능.. 김장의 80%는 먹지 못해서 나중에는 버리고...
비싼 생태는 떨이로 한 상자당 싼 가격에 사서 무조건 냉동실로... 결국 1년 후에 동태 몇 마리 먹다가
냉동실 냄새난다고 버리고...
전 이런 것을 너무 많이 봐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법으로 냉장고 용량을 줄일 겁니다..

2017-12-12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2 21:32   좋아요 0 | URL
8대라는 것 자체가 신기할 뿐만 아니라 더 막장은 열쇠를 채웠다고 하잖아요. 누가 훔쳐 먹는다고... ㅎㅎㅎㅎㅎ
냉장고 한대에 3개월치 식량이 들어 있다면 8대면 2년치 식량이 있다는 것인데....
이게 진짜 얼마나 끔찍한 식량 호더 기질입니까... ㅎㅎㅎㅎㅎ


편하게 있어 ! _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이지만
막상 그 사람이 거리낌없이 편하게 있으면 불쾌해합니다.

예를 들어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 나 나이 많다고 유세 떠는 놈 아닐세.. 허허..

라고 말하는데 그 자리에서 담배를 피면 어떻게 될까요. 속으로 괴심한 놈미라 생각할 겁니다..ㅎㅎ

ㅎㅎㅎ

똑같은 예로 시어머니가 갓 결혼한 며느리에게
친정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 나 까탈스러운 시어머니 아니란다..

이 말에 갑자기 며누리 쇼파에 누워서 어머니 물 좀 갔다 주세요.. 라고 말한다면...
불같이 화낼 겁니다..

2017-12-12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2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