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푸드다이어트와 먹방
본의 아니게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단을 9개월 동안 유지했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1일1식을 하다 보니 한 끼가 소중한 거라. 옛말에 (밥)풀떼기로 허기를 채우면 히마리가 없어서 돌아서자마자 배가 고프고, 고기로 배를 채우면 하루 종일 든든하다는 소리를 신뢰했던 나는 하루에 단 한번 찾아오는 한 끼에 " 올인 "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끼에 2500칼로리를 투하하는, 말 그대로 상다리 부러지는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삼겹살도 굽고, 닭 다리도 뜯고, 스테이크도 썰었다. 고기에 곁들이는 술은 음료수였다. 크아, 달다 달아. 밥통에 밥이 있어야 구색을 맞추는 살람살이이지만 내 몸속에 있는 밥통(위장)에 쌀 대신 고기로 채우다 보니 밥 한술 한술 멀리하게 되었고, 급기야 고지방 저탄수화물 비스무리한 식단이 완성된 것이다. 일종의 원푸드다이어트 식단이라고나 할까 ? 하지만 몰빵은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바싹 익힌 고기에서 피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고기가 새카맣게 탈 정도로 익혀도 피비린내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고기의 물컹물컹한, 소리 없는 식감이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 이후, 나는 씹을 때 입안에서 소리가 나는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주로 딱딱한 채소를 익히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무, 당근, 배추 따위. 씹을 때 입안에서 아삭거리는 소리가 들리니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되는구나 _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음식에서 풍미와 식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사운드라는 점이었다. 사실, 인간이 느끼는 < 맛 > 은 식재료 본연의 맛이 아니라 엉뚱한 요소-들의 결합에서 파생된다. 맛을 좌우하는 것은 " 소리 " 와 " 냄새 " 이다.
유명한 실험이 있다. 실험 대상자에게 눈과 코를 막은 채 사과 맛에 대해 품평해 달라는 숙제를 낸 후 사과 대신 양파를 주면 사람들은 자신이 먹은 것이 사과가 아니라 양파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어떤 이는 자신이 먹은 사과의 품종까지 설명한다. 눈과 코가 막히자 사람들은 양파를 씹을 때 나는 소리를 사과라고 착각한 것이다. 이처럼 소리가 맛을 좌우한다. 만약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사과에서 칠판 긁는 소리가 난다면 그 사람은 사과에 대한 불편한 기억을 간직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박을 고기라고 속이면 사람들은 수박을 고기라고 착각한다. 맛은 환영(幻影)이다.
내가 먹방을 보기 시작한 때는 음식에서 피비린내 때문에 고생할 때와 겹쳐진다. 평소, 먹방을 푸드포르노라고 경멸했던 내가 먹방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먹방을 보면 졸음이 쏟아졌다. 불면증으로 고생한 나에게 침대에 누워 보는 먹방은 졸피뎀이었다. 저 소리, 저 소리, 저 소리. 아, 아아아. 저 아삭한 소리 ! 도대체 내 불면증과 먹방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 먹방에 사용되는 마이크는 ASMR 기능을 갖춰서 미세한 소리도 감지할 수 있다. 종종 그들은 자신의 방송이 ASMR이라는 광고도 한다. 그렇다면 ASMR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 소리 증폭 마이크의 약자일까 ?
나는 아무 생각 없이 ASMR를 검색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줄임말로 우리나라 말로는 자율감각쾌감반응'이다. 일종의 백색소음인 셈이다. 그런데 ASMR이 불면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먹방에 중독된 원인은 섭식장애와 수면 욕망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 쓸쓸한 마음이 10월에 부는 낮은 가을바람처럼 내 밑바닥을 긁었다. 내 영혼은 온통 허깨비에만 반응하는 헛것이로구나. 지금은 먹방을 보지 않는다. 꾸역꾸역 10인분 분량의 음식'을 삼키는 비제이를 볼 때마다 장난삼아 살인을 저지르는 들개가 연상된다. 먹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먹은 것은 누군가의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