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위로가 고문이 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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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늘(레코드판), 뾰족구두 하이힐, 단검, 만년필 촉의 공통점은 끝이 뾰족하다는 데 있다. 뾰족구두가 사람 몸에 생채기를 낼 수는 없지만 나머지는 치명적 무기가 될 수 있다.

이 단어들의 뿌리를 찾다 보면 stylus가 母語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생김새와 쓰임새가 제각각이어서 서로 남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한배에서 낳은 형제자매인 경우다. stylus이라는 낱말은 철필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끝이 뾰족한 쇠붓이다. 옛날에는 끝이 뾰족한 필기도구로 잉크를 찍어 글이나 그림을 그렸으니깐 말이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낱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style이다. 저잣거리 입말로 " 오, 스타일 쥑이네 ~ " 라는 표현은 스타일이라는 녀석이 생래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성질머리를 정확하게 간파한 말이다. (치명적 매력의) 스타일은 " kill " 과 관련이 있다(dressed to kill, kill heel)

필름 느와르 장르 영화에서 " 치명적인 여자 " 라는 뜻을 가진 팜 파탈(femme fatale)은 항상 스틸레토힐(끝이 날카로운 하이힐)을 신고 등장한다. 영화 << 원초적 본능 >> 의 그 유명한 장면에서 치명적이었던 것은 팜 파탈'인 샤론 스톤의 무릎과 무릎 사이가 아니라 뾰족구두'이다.  만약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 사람은 팜 파탈이 아니다(나는 수많은 느와르 영화를 섭렵했지만 단 한번도 팜 파탈이 단화를 신고 등장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탐정은, 그리고 관객이었던 당신은 보자마자 스타일이 죽이는 여성에게 유혹당한다.  우리는 그 유혹이 치명적인 위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빠지게 된다.

이 욕망은 에로스라기보다는 타나토스적 본능에 가깝다.  느와르 영화에서 스틸레토힐을 신은 여자는 스틸레토(단검)를 숨긴 악녀다.  이처럼 스타일은 날카로운 형질을 내포하고 있다. " 스타일이 좋다 " 는 것은 결국 " 날카롭다 " 는 뜻이다. 맛으로 표현하자면 사골 곰탕 맛이라기보다는 칼칼한 생태탕 맛에 가깝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문장은 문체에 의해 완성된다. 문체가 style이라는 점에서 좋은 문장의 기본은 날카로움이다. 내 기준에 있어서 좋은 문장은 " 모필(毛筆) " 로 쓴  문장보다는 " 철필(鐵筆) " 로 새긴 문장이다. 붓으로 그려진, 생채기 없는 문장은 돼지비계를 기름장에 묻혀 마요네즈에 찍어 먹을 때 느끼게 되는 맛'과 비슷하다.

이기주, 김난도, 혜민의 책을 읽을 때마다 헛구역질이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컹 !  식감이 형편없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책들을 읽으면 입덧으로 고생하게 된다.  그들의 공통점은 스타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 위로 " 가 섹스, 공포와 함께 매우 잘 팔리는 상품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 독자를 위로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들은 위로가 잘 팔리기 때문에 당신을 위로할 뿐이다. 만약에 위로가 상품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독설을 쏟아낼 것이 분명하다.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고문실에서 고문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계기는 고문 가해자의 무시무시한 말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말'이라고 한다. 피 묻은 손으로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가해자의 친절이 공포스럽다는 것이다. 내일이 없는 사형수에게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위로를 하는 행위는 고문이다.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이 달콤한 위로가 가지고 있는 본질은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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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을 왜곡하는 낙관주의는 약자가 처한 문제를 외면하고 방관합니다. 그런 낙관주의자들은 그럴싸한 말만 내세울 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23 09:09   좋아요 0 | URL
낙관주의보다는 차라리 비관주의가 낫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