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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악마를 보았다 (1disc) - 인터내셔널 버전 / 아웃케이스 없음
김지운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블루키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장경철과 한송이
네이버 검색창에 " 악마를 보았다 " 를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 간호사 > 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본 관객의 뇌리에 사면발니처럼 강렬하게 달라붙는 장면은 이병헌도 아니고 최민식도 아닌,
백의의 천사(간호사)가 장경철(최민식)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살려주세요 _ 라는 대사 외에는 이렇다 할 대사도 없던 그녀가 씬스틸러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당신에게 의뭉스러운 질문 한 개를 던져보자면 : 이 장면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것도 아니요, 명장면도 아닌데 관객은 왜 이 장면을 기억하고서는 애써 소환하려는 것일까 ? 감독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지옥도를 보여주고 싶다는 작품 의도를 내세웠지만, 정작 이 영화는 불알후드(brotherhood)의 강간 판타지를 충족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서 관객은 " 지옥도 " 를 보는 것이 아니라 황홀한 " 판타지 " 를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경철에게 강간당하는 간호사의 나이를 스무 두 살'로 설정한 것을 보면 감독이 숨겨둔 꿍꿍이를 읽을 수 있다. 화장실 벽낙서 서사'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성대상화가 스무살 무렵의 여자요, 직업군이 여교사와 간호사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감독이 이 장면에서 연출하려고 했던 것은 " (악마)본성 " 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 (남성) 본색 " 을 자극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저잣거리 입말로 무식하게 말해서 감독이 노린 것은 " 남성 관객을 꼴리게 만드는 것 " 이다. 에로 영화계의 거장, 틴토 불알스 감독'도 울고 갈 만한 에로틱한 장면 연출인 셈이다. 장경철이 간호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 몇 살이야 ?
- 스물 둘이요.
- 어우 ! 좋을 때네, 남자친구는 ?
- 네에 ? 없어요.
- 귀엽게 생긴 게(?) 많겠다.
- 네에 ?
- 사실은 어제 좀 재미를 볼 일이 있었는데 어떤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망쳐 버렸어.
스물 둘이라...... 더군다나 간호사 이름이, 한송이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애매모호한 작명이다. 수현의 약혼녀 세현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그 어느 누구도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간호사'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감독이 이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여자를 관상용 꽃에 비유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잰더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각본가와 감독이 만들어낸 최악의 참사이다.
감독은 포르노 영화에서 흔하게 소비되는 장면(포르노 영화에서 간호사 복장은 망사 스타킹과 함께 가장 중요한 오브제다)을 연출해서 관객의 헤모글로빈이 남근으로 쏠리도록 유도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았던 열혈남아는 어느새 열혈남근으로 변한다. 아아. 내가 이 영화를 두고 스너프 필름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장경철의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 장경철은 " 어떤 개또라이 새끼(이병헌) " 때문에 망쳐 버렸다고 궁시렁거리지만, 사실은 그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간호사를 강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국정원 비밀요원 수현은 " 쾌락의 포주 " 인 셈이다.
감독은 수현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폭력과 강간 서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는 악마와 싸우다가 스스로 악마가 된 존재가 아니라 악마에게 희생당할 여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악질 포주'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타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