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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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을     내  요 ,     스   몰   우   먼   :



 



    당신의 능력을 보여,

줄 필요는 없어요


 

 

 

 

 

 


 



 

 

 

 

 

                                                                                                           대한민국 문학상은 스파르타 제국의 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용맹한 전사 300명보다 많은, 대략 400개가 난립된 상태라고 한다. 간단한 셈법으로 계산하자면   :   365일, 날마다 어디선가 문학상 시상식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하하, 이따위 스파르타 !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외면한 지는 이미 오래이지 않은가. 그런데 문학상은 독자의 외면과는 달리 아쓰뜨랄한 쓰빽따끌 확장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식당을 찾는 손님은 해종일 열 명 남짓이 전부인데 식당 종업원만 백 명 넘게 근무하는 레스토랑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허허, 이따위 스파게티 !                 장사도 안 되는데 한국 문단은 왜 이렇게 문학상을 남발하는 것일까 ? 문단 어르신 입장에서 보면 문학상이 난립한다는 것은 일자리 확대를 의미한다. 이명박 식으로 표현하자면 " 비즈니스 프렌들리 " 이고, 박근혜 식으로 표현하자면 " 크리에이티브 이코너미(창조경제) " 이다.

문학상이 난립한 자리에는 문단 어르신 - 들'이 편집위원이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것이다. 그들에게 문학상 신설은 곧 일자리 창출인 셈이다. 문제는 재미를 추구하는 < 대중 > 과는 달리 < 문단 > 이 재미와는 거리가 먼 순문학을 열심히 빨아준다는 데 있다. 그들은 독자에게 행간을 읽는 능력을 요구한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고객이 왕인 시대에 독자에게 자격과 품격 따위를 먼저 요구하니 한국 문학이 팔릴 리가 있나.  그렇다면 작가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캐릭터'인가 ?  책이 안 팔리다 보니 작가는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을 포기하는 대신에 문단 권력을 향해 꼬리를 친다.

작가는 편집위원이나 심사위원이 좋아할 만한 " 형이상학의 세계 " 를 던져준다. 옛다, 먹어라 ! 형이상학.                       " 형이상학의 세계 " 란 반드시 행간을 읽어내는 기술을 습득한 자만이 풀 수 있는 이상한 세계이다. 그 세계는 모호하고, 선명하지 않으며, 사물의 본질과 존재의 근본을 탐구하기에 문학에 특화된 이에게는 흥미로운 십자말풀이의 세계이다.  작가가 문단 권력에게 떡밥을 던져주는 데에는 여러 문학상을 수상해서 문창과 교수로 임용될 기회를 노리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문창과 교수가 된 작가는 다시 편집위원이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문단 권력 안으로 입성한다. 

한마디로 한국 문단은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문단 권력이 자랑스럽게 소개하던 제구력(選球眼)이 그닥 훌륭하지 않다는 데 있다1) 그들이 선전하는 핀포인트 정밀 탄착 제구력은 알고 보니 헤드샷 날리기 일쑤다. 한국 문학을 폐허로 만든 원인은 " 문학의 상업성 " 이 아니라 그들만의 짜고 치는 " 문학의 예술성 " 이다. 문학의 예술성을 위대한 가치로 숭배하는 문화 속에서 애지중지 자란 한국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사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조남주 장편소설 << 82년생 김지영 >> 은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매우 분명하고 친절하다. 조남주는 순문학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 행간을 읽는 능력 " 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당신에게 당신의 능력(행간을 읽는)을 보여주세요  _   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프로파간다 문학이면서 자료와 통계를 소설 쓰기에 적극 반영했다는 점에서 증언 문학이자 르뽀르타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 82년생 김지영 >> 은 선동과 증언 문학 사이에 놓인 작품이다. 또한 각주에서 인용한 자료와 통계는 픽션(드라마)과 논픽션(각주)을 섞어서 소격 효과(브레히트)를 낳는다.

이 소설이 무엇보다도 반가운 이유는 모호성을 예술적 가치로 숭배하는, 순문학의 허세에 함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이한 문체로 서술하는 소박한 문장은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녀는 납작한 캐릭터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문단의 욕망에 기생하지 않고 작가가 쓰고 싶은 글을 썼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보기에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김지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정신과 의사는 남성 중심의 문단 권력(자)에 대한 조롱처럼 읽힌다. 이 소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보통의 여성이 겪어야 하는 차별과 공포를 다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보통의 여성 작가가 겪어야 하는 차별과 공포2)로도 읽힌다. 김지영,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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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혜영과 한강의 문학 작품은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 특히 << 채식주의자 >> 는 문청의 습작 수준을 넘지 못한다.

2)     문단 내 성폭력 사태는 남성 중심의 문단 권력이 동료 여성 작가(나 지망생 여성)을 성적 노리개 정도로 취급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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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의서재 2017-09-03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간만에 접속. 잘 지내셨지요? 특히 각주 1번에 매우 동의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9-04 11:20   좋아요 0 | URL
잘 지내지는 못하지만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이 일상이어서 무덤덤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