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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첫 번째 순서, 입동 ㅣ ★★★★
두 번째 순서, 노찬성과 에반 ㅣ ★★
세 번째 순서, 건너편 ㅣ ★★★ 1/2
네 번째 순서, 침묵의 미래 ㅣ ★★
오 번째 순서, 풍경의 쓸모 ㅣ ★★★1/2
육 번째 순서, 가리는 손 ㅣ ★★
칠 번째 순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ㅣ ★★★★★
소설집 << 바깥은 여름 >> ㅣ ★★★ 1/3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어느 글에서 영화 별점 체크(or 20자평)에 대해 막돼먹은 짓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 적이 있다. 영화를 상품 취급하지 마세요, 시바 _ 라는 뉘앙스로 쓴 글이었는데, 나는 영화를 상품 취급하면 안되는 이유는 대체 뭐요 ? _ 라고 되묻고 싶을 만큼 반감이 들었다.
그 짓이 하도 같잖아서 그 이후, 모든 작품(영화,문학)에 별점 체크'를 하고 있다. 물론, 영화를 전적으로 상품 취급하는 자세도 촌스럽지만 무작정 영화를 예술로 취급하는 자세도 촌스럽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 같은 이유로 한국 문학이 위기에 빠진 것은 문학을 상품으로 접근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성일은 열정적이지만 꽤나 멍청한 믿음으로 영화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지만 영화보다는 스마트폰이 혁명의 무기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재스민 혁명을 보라!). 칼보다 강한 것은 펜이고 펜보다 강한 것은 스마트폰이다. 이제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은 영화나 소설따위가 아니라 cctv, SNS, 클릭수, 좋아요, 유투브 따위'다. on에서 도원결의한 의지가 off로 연결되는 순간에 그 힘은 벼린 칼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
철저하게 상업적 용도와 계획으로 만들어진 도구들이 사회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하고 고진은 현대 문학1)의 종언을 선언한 마당에 정성일과 한국 문단만 뜨거운 순혈을 숭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순수하게도 !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별을 헤는 맘으로 패경옥을 불러본다. 경옥아 ! 세 번째 소설집 << 비행운 >>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네 번째 소설집 << 바깥은 여름 >> 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 < 입동 : 자세한 리뷰는 여기 > 은 " 아토포스 " 로서의 " 토포필리아 " 를 다룬다. 아내가 집착하는 주거 공간에 대한 애착은 주거불안정층이 겪는 곁방살이 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소애는 대부분 그 공간에 함께 했던 사랑하는 이'가 부재할 때, 그래서 그 상실을 자각할 때 발생한다는 점에서 증후적이다.
김애란은 현대인의 주거 불안정성에 따른 불안을 능수능란한 솜씨로 풀어나간다. 긴장감을 유지하게 위해 전사와 후사를 뒤섞는 솜씨와 선명한 상징성이 돋보였다. 반면, 두 번째 순서에 놓인 단편 < 노찬성과 에반 > 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만큼 실망스럽다. 주인을 위해서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집을 나가는 늙고 병든 개'에 대한 이야기는 닳고 닳은 서사인데 단편 < 노찬성과 에반 > 은 닳고 닳은 서사를 닳고 닳은 방식으로 서술하다 보니 지루했다. 그리고 트럭이 전복되어 차와 함께 불에 타 죽은 아버지를 늙고 병든 개에게 투사하는 방식이 단선적이어서 촌스럽다.
무엇보다도 김애란은 " 소년 " 을 다루는데 서툴다. 그것은 전작인 장편소설 << 두근두근 내 인생 >> 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애란은 자신과 나이가 엇비슷한 캐릭터를 다룰 때는 날카로운데 소년이나 노인을 다룰 때는 대책없이 순진하고 생각없이 긍정하는 우를 범한다. 다시 말해서 김애란은 소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꽤나 이해하는 척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을 다룰 때마다 고민스럽다고 고백한 김훈은 차라리 솔직한 편이다. 이러한 경향은 여섯 번째 단편 < 가리는 손 > 에서도 반복된다. 김애란은 소년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 문학 특유의 " 포데기 신파-극 " 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가 다뤘던 소년들은 모두 납작한 캐릭터여서 생명력이 없다. 어른을 위해 소비되는 피터팬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세 번째 순서에 놓인 단편 < 건너편 > 도 나쁘지는 않다. < 입동 > 이 주거불안정층을 다뤘다면 < 건너편 > 은 고용불안정을 다뤘다. 도화와 이수는 노량진 고시원에서 만나 연인이 된 사이이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도화와는 반대로 이수는 공무원 시험에 거듭 낙방하면서 균열이 발생한다. 한때 서로 같은 길을 걸었던 연인은 어느새 건너편의 이수를 바라본다. 도화는 수사도, 과장도, 왜곡도 없는 문장으로 이수에게 이별을 통보하지만 짧은 휴지기 같은 쉼표에는 물기를 먹은 감정이 뚝뚝 묻어나 있다.
작가는 이 흔들림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 침묵의 미래 > 는 김애란 단편 중에서도 매우 이질적인데 현학적 우화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평소 김애란답지 않을 뿐더러 생경스럽다기보다는 생뚱맞은 작품인데, 이 작품에 대해 이상문학상이 수여되었다는 점도 생뚱맞다. 끝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단편은 남편을 잃고 스마트폰에서 실행되는 응용프로그램인 siri와 대화를 나누는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였다.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려다 죽은 남편 이야기는 명백하게 세월호 의인과 겹친다는 점에서 김애란은 세월호 그 후, 남겨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소설은 물에 빠져 죽은 아이 누이가 쓴 편지를 받은 여자의 다짐으로 끝난다. 혼자 남은 아이(죽은 아이의 누이)야말로 밥은 먹었을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여자가 몸이 마비되어 병상에 누워 있는, 일가친척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그 아이'를 방문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어딘가 서로 기대지 않으면 안 되니까. 김애란이라는 브랜드에 덧대어 말하자면 전체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학에 빠지지 않고 함께 당대를 고민하는 힘은 돋보이나 자칫 잘못하면 포데기 신파 가족극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함께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