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풍   과      거   목   :



 

 


 


인간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 인간은 정치적 동물( ion politikon) " 로 인간과 정치는 셈셈이다. 그가 저잣거리 입말에 능숙한 달변가였다면 정치와 인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 같은 관계'라는 구수한 표현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 정치적 - " 이라는 표현과   " 인간적 - "   이라는 표현은 서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관계다. " 정치적 인간 " 이라는 표현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를 지시하는 것이어서 난로 속 땔감처럼 훈훈한 " 인간적이다 " 라는 표현과는 서로 사맛디 아니하다. 그런데 " 정치적인데 인간적이어서 감동적1) " 인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노무현이다. 그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존폴리티콘'이다. 상대 진영에서 노무현 장인의 비전향 빨치산 이력을 거론하며 색깔론을 꺼내들었을 때 노무현이 이제와서 사랑하는 제 아내를 버리라는

말씀입니까 _ 라고 되묻는 장면은 정치학을 윤리학으로 되받아치는,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프레임 전환'이었다. 노무현은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총 대신 꽃을 들었다. 가족 서사에 뿌리를 둔 스토리텔러에 익숙한 유권자에게 가난했을 때 쌀겨에 술지게미 먹던 아내를 버릴 수는 없다고 말하는 모습은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는 한 정치가의 인간적 고뇌를 통해서 " 존폴리티콘한 로맨티스트 " 를 발견하게 된다. 다큐 영화 << 노무현입니다 >> 는 2% 지지율로 시작해서 66% 로 끝나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관객은 이 유쾌한 승리'가 해피엔딩이 아니라 결국에는 해피 엔드로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서글프다. 영화가 끝나면 인간이어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정치인이지만 인간적이었던 한 인물의 아름다운 몰락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노무현, 그는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꽃을 들었던 로맨티스트였고, 자신을 배신한 적을 위해 그의 밥그릇을 걱정했던 휴머니스트였으며, 정치를 조건 없는 환대의 장으로 이끌려고 했던 정치철학자'였다. 노무현 입니다, 저 잘 모르시지요 ?                             그의 둥근 뒷모습을 보다가 울컥했다. 그는 태풍이자 거목이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 태풍 " 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재앙에 가깝지만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태풍이 일으킨 교란은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경험 많은 어부는 태풍이 불어야 풍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태풍이 바다 속을 뒤집어주면 바닥에 깔렸던 영양분이 위로 올라와 물고기 먹이가 풍부해져서 수면 아래로 몰려든다고 한다. 어부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어획량도 늘어나는 것이다. 숲도 마찬가지다. 태풍으로 인하여 거목이 쓰러지면 쓰러진 자리 위로 텅 빈 하늘 아래 햇살이 쏟아지니 다양한 식물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 어린 나무에게 솟아오를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한 숲에 사는 생명체 중 30%가 죽은 나무에 의존한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은 " 박근혜의 결핍 " 으로 채워진 정부가 아니라 " 노무현의 부재 " 가 만들어 놓은 정부'라 할 수 있다. 햇살 쏟아지는, 오늘의 찬란한 봄은 노무현의 부재 때문이다. 그가 비운 자리에 햇살 내리어 꽃이 피고,  나무가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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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적인데 인간적인, 그래서 감동적인 ( 한겨레,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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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7-05-27 2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이런 멋진 글을..
싸랑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8 04:27   좋아요 1 | URL
클래비스 님의 성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아.

3시 2017-05-27 23: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
꽁짜로 읽는다는 게 ...
많이 죄송합니다. 싸랑하는 페루애님!!!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8 04:26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3시 님의 따스한 댓글 하나면 보상은 충분합니다..

clavis 2017-05-28 10:53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때 받았던 상처들이 치유됩니다..글쓰기의 힘이여...!!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8 17:21   좋아요 1 | URL
생유. 클래비스 님 가시는 길에 영광있으라..

2017-05-30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3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