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밀 아 자 르 와 이 화 열 :
만순이가 결혼했다고 ?!
만순이가 결혼했다는구나. 어머니는 입담이 좋으셔서 이야기에 시동이 걸리면 끝이 없다. 만순이 ?! 나는 만순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판소리라는 장르는 소리꾼 1인의 모노-극'만으로는 끝날 수 없는 장르여서 북채를 든 고수처럼 추임새를 넣곤 한다. 그것이 자식 된 도리이니까. 맙소사, 그 코찔찔이 만순이가 결혼했다고요 ?!
소리꾼은 고수의 추임새에 힘이 얻어 코찔찔이 만순이가 결혼해서 애가 다섯이라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신파 아니, 산파의 고통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적재적소에 강력한 추임새를 넣는다. 맙소사, 애가 다섯이라고 ?! 재차 하는 말하자면 나는 만순이가 누군지 모른다. 사돈의 8촌쯤 되려나 ?! 이 과도한 추임새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속내를 감추기 위한 전략이다. 듣는 척하지만 사실은 딴 생각을 하고 있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 중이다. 나는 어머니가 판소리를 열창하는 와중에 이명박의 사자방과 박근혜의 거울방을 생각하며 몸서리친다.
지난 9년 동안 권력을 등에 업고 방방 뛰었던 오라비와 누이. 오만방자한 것들 ! 어머니가 만순이 약전을 완창으로 마무리할 즈음에 또다시 영혼 없는 추임새를 넣는다. " 우리 만순이 알콩달콩 잘사네. 그런데, 요즘 만순이 뭐해요 ? 결혼은 했나 모르겠네. " 나는 항상 건성건성 듣고 건성건성 말하는 버릇이 있다. 나쁜 버릇인데 당최 고쳐지질 않는다. " 님에게만 특별히 알려드리는 것인데 사실 페루애란 닉네임은 로맹 가리의 <<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 따온 것이랍니다. 특별히 알려드리는 겁니다. 허허허. "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사연을 백 번도 넘게 든는 바람에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인데
님에게만 특별히 알려드리는 정보 운운하니 미치게 된다. 건성건성 듣고 건성건성 말하는 버릇과 3초 기억력이 만나게 될 때 발생하게 되는 참사이다. 이 글을 쓰고 나서도 며칠이 지나면 나는 당신에게만 특별히 알려드리는 고급 정보(라 쓰고 천기라 할 만한 정보)를 누설할 것이다. 친절한 이웃이여, 예의상... 처음 듣는 정보인양 넘어가시라 _ 당부하는 바이다. 어머, 처음 듣는 얘기로군요 !!!!! 됐고 !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는 이명동인이다. << 하늘의 뿌리 >> 라는 소설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 자기 앞의 생 >> 이라는 소설을 써서 다시 한번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문제는 공쿠르상은 한 번 수상한 작가에게는 두 번 다시 수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논란이 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똥에 쌈 싸 드셔 ! 나는 이화열의 에세이집 << 배를 놓치다, 기차에서 내리다 >> 를 읽는 내내 << 자기 앞의 생1) >> 이 떠올랐다. << 자기 앞의 생 >> 이 문체의 과잉과 왜곡에서 탈피하여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는데 성공했듯이 << 배를 놓치다, 기차에서 내리다 >> 는 한국 에세이'가 가지고 있던 징징거리는 신파와 스스로를 뽐내고 싶어하는, 겸손인 척하는 교양의 과잉에서 벗어나 있다.
이화열은 스스로 모모가 되어서 앙리지누 거리에 사는 로자 아줌마와 롤라 아줌마, 하밀 할아버지와 카츠 선생님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젖은 빨래는 봄보다는 여름 볕에 더 빨리 마르지만 마른 빨래는 여름보다는 봄에 마른 빨래가 구김살이 없어서 예쁘다. 봄 볕에 순하게 마른 빨래는 바람의 영향이다. 이 책도 그렇다. 내가 이 책에 매료된 이유이다. 만순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로맹가리를 거쳐 이화열로 끝내려 하니 글의 톤앤매너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 만순전 >> 의 못다한 이야기로 매조지하려 한다. 그 옛날, 코찔찔이 만순이는 장성하여 결혼을 하는디, 훗날 프랑스로 이민을 가 잘살았다더라, 얼쑤 !
1) " 미래를 밝히는 불 " 을 다룬 소설보다는 " 발등에 떨어진 불 " 을 다룬 소설을 좋아한다. 대만 감독 차이밍량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내놓는다. “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상업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영화입니다. " 이보다 명쾌한 정의는 없다. 그 기준을 적용하자면 미래를 밝히는 불 따위를 다루는 소설은 통속소설이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다룬 소설은 순수문학이다. << 자기 앞의 생 >> 은 제목이 말하듯이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다룬다. 여기서 " (자기) 앞 " 은 " (자기) 발등 " 이고 " 생 " 은 " 불 " 이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백년 뒤의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이'는 팔 할이 꼴통이다. 홍준표는 백 년 뒤에 종북좌파가 장악할 대한민국을 걱정하고 문재인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걱정한다. 홍준표는 통속이고 문재인은 순수다.
덧대기 ㅣ 만순이 이야기하다가 문득 만식이 아저씨 생각이 났다. http://myperu.blog.me/20091879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