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조건

 

 

 

 

 

 

 

 

 

 

                                                                                                   사전 선거를 치르던 날, 작은 사고가 있었다. 어느 여성이 한눈 팔고 길을 걷다가 달리는 오토바이와 부딪힐 뻔했다. 내가 그녀의 팔목을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사고가 났을 것이 분명하다. 다행히도 작은 상채기를 제외하고는 멀쩡했지만, 접속 사고인 만큼 사후 처리를 위해 피해 여성은 내 연락처를 물었다.

어제 그 여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례금이라도 준다는 것일까 ? 약속 장소에 나가 보니 그녀 옆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노인이 있었다. 흰 수염이 멋진 노인이었다. 그가 말했다. 나, 계룡산 봉자골 산신령이오 ! 자네가 내 딸을 구했다고 ? 오, 오오. 축복이로다. 소원을 말해보게나. 뭐든 들어주겠소. 안철수가 4차 산업 혁명을 입술이 부르트도록 외치는 마당에 산신령이라.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와 베컴의 턱선, 브래드 피트의 양미간, 말론 브란드의 눈빛, 탐 크루즈의 짙은 눈썹을 닮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 산신령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알았노라. 오늘 밤 집에 가서 푹 자거라. 새날이 오면 어제와는 다른 네 모습을 보리라. 그날 밤은 달콤한 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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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은 " 드라마 천국 " 이다. 시간대와 관계 없이 티븨 채널을 돌리면 어디서나 다양한 드라마를 볼 수 있다. 한국인이 유독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문자문화(literacy)보다는 구술문화(orality)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문자로 구성된 책보다는 입말의 장관으로 이루어진 영상에 반응하는 사회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식자력(識字力)은 높지만 문해력(文解力)은 낮은 편이어서 독서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채 영상 문화가 우위를 점한 상태'이다. 좁은 의미로 " 스토리텔링 " 을 음성이나 행위를 통해 소비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인을 지배하는 서사는 스토리텔링'이다.

상품성이 뛰어난 스토리텔링의 조건은 드라마 << 다모 >> 에서 탤런트 이서진이 한 말에 압축되어 있다. " 아프냐 ? 나도 아프다. " 즉, 드라마 속 주인공의 아픔에 시청자가 공감할 때 시청률은 오른다. 반대로 성품성이 떨어지는 스토리텔링은 조용필이 부른 노래 가사에 담겨 있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러니까 주인공과 시청자가 따로 노는 서사'가 상품성이 떨어지는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은 비단 드라마나 영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살아온 날-들도 하나의 스토리텔링'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는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캐릭터다. 육영수와 박정희의 피살,

독재 정권의 몰락 그리고 청와대에 재입성하기까지 그녀가 살아온 날-들(스토리텔링)은 흥행성을 갖춘 서사'였다. 유권자가 독재자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 같은 " 최루성 신파 휴먼 드라마 " 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두 팜므파탈의 " 삥땅 프로젝트 필름 느와르 장르 " 였으니 환불 소동이 일어날 수밖에. 이처럼 스토리텔링은 뛰어나나 각각의 요소가 이질적으로 조합하다 보면 이상한 영화가 탄생한다. 각각의 요소를 적재적소에 나열하는 것이 연출의 힘이다. 문재인도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인물이었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브로맨스도 훌륭했고 그가 살아온 날들도 훌륭했다. 스토리텔링이 뛰어나다 보니 굳이 자극적인 연출이 필요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문재인이 웃으면 관객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서로 공감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성공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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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들여다본 나는 비명을 질렀다. 배컴의 목소리와 탐 크루즈의 키, 모건 프리먼의 왕코, 말론 브란드의 머리숱. 시바......  지금 나는 거울을 통해 최상의 요소로 최악의 조합을 이룬 스토리텔링을 보고 있다. 나는 낮게 소리쳤다.  내 이놈의 영감탱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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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5-11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울이 잘못된건지도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2 10:42   좋아요 0 | URL
거울이 잘못되었나 화장실 거울도 보았으나.. -_-

3시 2017-05-1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선균을 맹글어 달라고 했으면 성공했을것을.아까비~
큰 키에 목소리 멋지고 잘 생기고.
영감탱이가 바다건너 이방인을 어찌알겠소!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2 10: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전 개인적으로 이선균 목소리에 그닥 흥미를 가지지 않는 1인이라서요..
목소리 하면 좀 굵직해야죠. 모건 프리먼 목소리가 짱입닛닷..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