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좁다
영화에서 장소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멜로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와 같이 " 사랑 " 이 주제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 로마의 휴일 >> 은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스페인 광장을 빼놓고 이 영화를 논한다는 것은 최순실을 빼놓고 박근혜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박근혜에게 있어서 최순실은 그리운 장소'다. << 화양연화 >> 라는 영화도 보고 나면 남는 것은 비좁은 골목길이거나 비좁은 건물 복도 이미지'이다. 이 공간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충분한 넓이가 아니어서 가는 길과 오는 길의 교차점에서는 서로 어깨를 사선으로 틀어야 부딪히지 않을 수 있다. 닿을 듯 말 듯, 카메라는 이 미묘한 교차점을 느린 화면으로 잡는다. " 좁은 길, 골목, 복도 " 는 사회적 거리를 개인적 거리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이자 멜로 드라마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사랑은 곧 장소애( TOPOPHILLIA ) 이다. 멜로 영화가 만날 듯 만날 듯 하다가 어긋나는 관계 설정이 주를 이룬다면 로맨틱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는 주로 우연히 혹은 어쩌다 마주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걸작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에서 앙숙인 두 사람은 우연히, 어쩌다, 자주 마주치게 된다. 세상 참..... 좁다 _ 란 말이 나올 만하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 싸우지만 결국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점에서 로맨틱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선호하는 로케이션은 텔레토비 마을이다. 우연한 만남을 관객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텔레토비 마을은 동네가 워낙 작아서 오고가다 다들 만난다. 나는 지금껏 보라돌이, 나나, 뚜비, 뽀가 서로 약속을 정하고서 약속 장소에서 상대방을 기다린다는 상황극을 본 적이 없다. 꼬꼬마 - 들은 항상 우연히 만나거나 어쩌다 마주친다. 약속 따윈 개나 줘버려 ! 텔레토비 동산은 약속이 필요 없는 곳이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좋은 로케이션은 없다. 꼬꼬마-들이 성인이었다면 꽤 밝고 명랑한 러브 스토리를 생산했을 것이다. 이처럼 멜로가 어긋남의 서사라면 로맨틱은 오고다가 다 만나는 서사'이다.
바른 정당 소속 국회의원 14명이 창당 100일이 지나기도 전에 탈당하고 나서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는 텔레토비 마을 동산을 떠올렸다. 약속 따윈 필요 없기에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고 약속이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없는 동네가 바로 새누리와 바른정당이다. 그들은 오고가다 다 만난다. 어차피 한통속이다. 바른정당의 탈당 사태'는 한 편의 로코물이다. 서로 티격태격 싸우지만 오고다가 반드시 만나게 되는,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다시 애틋한 정이 쌓이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
- 男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 女 아이, 부끄러워요.
- 男 나의 헤모글로빈이 자꾸 사타구니 쪽으로 쏠리는구려(남자는 자신의 딱딱한 비스켓을 보여준다).
- 女 아이, 민망하여라.... 정 그러시다면 내 촉촉한 카스테라 한 번 맛보실라우 ?
딱딱한 비스켓을 보여주는 남자와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내놓는 여자. 카메라는 낙엽처럼 뒹구는 남녀를 뒤로하고 벽난로에서 불타는 장작으로 패닝한다. 정오의 티타임을 방해하지는 맙시다. 꽤 재미있게 보았다. 로코물의 결말은 뻔하다. 그리 멀지 않은 훗날, 그들은 재결합하여 조또 행복한 신혼을 보내리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심은 쉬우나 변신은 어려운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