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이여, 강남행 급행열차를 타라 :
강남 부동산 활극

- 영화 수색자, 마지막 장면 : 서부 영화 장르는 대부분 영웅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장르를 선호하는 관객은 공포 영화 장르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대로 공포 영화 장르 팬은 코미디 영화를 멀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코미디 영화와 공포 영화는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 장르처럼 보이지만 꼼꼼하게 뜯어보면 두 장르는 꽤나 닮은 구석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두 장르는 다른 장르에 비해 남녀 성차(性差)에 따른 긴장을 중심에 둔다.
(대체적으로) 코미디 영화의 하위 카테고리에 속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두 남녀가 알콩달콩 토닥거리며 싸우는 장르이지만 공포 영화는 두 남녀가 죽기살기로 싸우는 장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달달한 < 티격 > 이냐 살벌한 < 타격 > 이냐가 다를 뿐이다. 전자가 < 썰전 > 이라면 후자는 < 혈전 > 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공포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 안 풍경을 보다 보면 공포와 웃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관객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곤 하지만 이내 웃게 된다. 이 점만 봐도 코미디와 공포 영화는 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 장르는 무엇일까 ?
" 코미디 VS 공포 " 보다 더 이질적인 장르 대립은 " 웨스턴(서부 영화) VS 갱스터(악당 영화) " 조합이다. 웨스턴 장르가 자연(마을)을 파괴하려는 악당에 맞서 자연(마을)을 수호하려는 영웅의 대립이라면, 갱스터 장르는 웨스턴 장르의 기본 구조인 < 인간 VS 자연 > 에서 벗어나 < 인간 VS 도시 > 의 대결을 다룬다. " 웨스턴 " 이 자연친화적인 마을을 수호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면 " 갱스터 " 는 인공적 도시의 타락한 질서에 방점이 찍힌다. 그러므로 마을은 자연친화적인 반면에 도시는 자연을 인공적으로 개발한 인위적 로컬리티'라는 점에서 두 장르는 서로 이질적이다1).
광화문 극장에서 단관 개봉으로 천백 만 관객을 돌파한, 전무후무한 흥행 영화 << 박근혜 게이트 >> 가 갱스터 장르에 속하는 이유는 악당이 등장하는 주요 무대가 강남이라는 도시의 로컬리티에 한정되어 있다는 데 있다. 고로 박근혜 게이트는 강남 게이트이기도 하다. 갱스터를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조폭 영화인데 한국형 조폭 영화 장르가 대부분 강남 이권 사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마을을 해체하고 강남 도시 우선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 강남 부동산 개발 활극 > 인 셈이다. 갱스터'다. 그들은 합법을 가장한 무법자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웨스턴 영화이기도 하다.
웨스턴 영화는 마을 공동체의 이상적 가치를 강조하는데 광화문에 모인 촛불 시민은 마을을 침탈해서 해체하려는 강남파 조폭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싸우고 있는 중이다. 셰인이나 존 웨인 혹은 브루스 웨인 같은 1인 영웅은 존재하지 않지만 집단 지성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영화이기에 그 결말을 알 수는 없으나 저항은 어떤 식으로든 상흔을 남기는 법이다. 그것이 " 상처뿐인 영광 " 이든 " 영광스러운 상처 " 이든 말이다. 갱스터 장르에서 도시 갱스터는 최고 권력자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권력을 얻는다면 웨스턴 장르는 영웅의 조건 없은 선의를 보여주는 영화'다.
웨스턴 영화는 조건 없이 다가와서 미련 없이 떠나는 쓸쓸한 영웅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나는 이 영화가 갱스터 장르가 아니라 웨스턴 장르'로 끝이 나기를 간절히 원한다 ■
덧대기 ㅣ 다음은 박근혜의 뒤를 봐주던 자의 뒷모습이다. 박근혜의 뒤를 봐주고 권력을 얻었던 갱스터의 뒤는 누가 봐주는 것일까 ?





1) 영화 << 슈퍼맨 >> 은 SF가 아니라 웨스턴 장르'이다. 슈퍼맨은 지구라는 악의 도시를 개선하려는 영웅이 아니라 지구촌(村 : 마을 촌)이라는 마을'을 수호하려는 보안관 영웅이다. 박근혜 식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구는 우주와 비교하면 작은 마을에 불과하니깐 말이다. 클락 켄트(크리스토프 리브)는 보안관 존 웨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