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신체
한때 김연아는 " 국민 여동생 " 이라고 불렸다. 국민 여동생이 있으니 유승호라는 국민 남동생도 있었다. 그리고 국민 배우와 국민 가수도 있었다. 여기서 << 국민 >> 이라는 월계관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대표성'을 갖는다. 이 호칭은 2080, 전 세대를 아우르는 지지'를 얻어야 가능하다. << 국민 >> 이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넓게는 < 민중, 인민, 백성 > , 좁게는 < 시민, 주민 > 과 맥락이 닿아 있다. 그런데 이들 단어는 조금씩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다. 방점을 찍는 부위가 다 다르다는 말이다. < 국민 > 은 國의 民이라는 뜻이다. 국가에 방점을 찍는다. 신체(民)의 주인은 국가'다.
반면 민중은 民의 衆(무리 중)으로 무리에 방점을 찍고, 인민은 人(사람 인), 시민은 市(저자 시), 주민은 住(거주할 주)에 방점을 찍는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큰 차이'이다. < 국민 > 은 國이 제왕적 태도로 民을 통치하고자 하는 중앙 집권적 형태를, < 시민 > 은 國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지방 자치적 성격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 국민 >> 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속내는 國이 民을 통치하려는 것이고, << 시민 >> 은 市가 國의 전체주의적 통치에 대항하여 民 스스로 자치적 방식으로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려는 욕망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 국민 " 이라는 말 속에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된다는 기본 자세가 엿보인다.
국가 앞에서 국민은 합죽이가 됩시다, 합 !!! 국민은 나라 살림이 어려우면 집에 있던 금붙이'를 국가에게 헌납해야 한다. " 국민 된 도리 " 인 것이다. 그래서 보수는 국민 연대로 모이고 진보는 시민 연대로 모이는 것이다. 입만 열었다 하면 국민이라는 말을 쉴 새 없이 내뱉는 사람은 보수'다. 한국인의 고약한 말버릇 가운데 하나는 " 나라 망신 " 이라는 말이다. 해외 원정 성매매 사건이나 한국인 여행객의 에티켓 논쟁이 벌어지면 영락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나라 망신이다. 황우석 사태나 조승희 총기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댓글을 점령했던 말은 나라 망신'이라는 표현이었다. 심지어는 야구 선수 박병호가 비교적 싼 몸값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도 등장했던 말풍선이었다. 명색이 대한민국 대표 스포츠 선수인데 쪽팔리게 몸값이 그게 뭐냐는 타박이다.
재미있는 반응이다. 나라 망신'이라는 말버릇이 관통하고 있는 것은 신체와 영토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체는 영토(국가)의 종속이라는 노예 근성'이다. 그것은 지랄 같은 유교적 혈연주의와 조직 문화가 만든 췌장암 말기 암 세포'다. 모 연예인의 은밀한 셀카'가 미국 언론에 짧게 언급된 적이 있다. 국내 언론사가 이 언급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때 기자가 사용한 말이 " 나라 망신 " 이라는 표현이었다. 재미교포 여성 연예인의 셀카가 나라 망신이라면, 미국은 나라 망신'을 1,000,000,000,000,000,000번은 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우리는 할리우드 스타의 섹스 동영상이 떠돈다고 해서 미국을 형편없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에 거주했던 프랑스인 여성이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죽여서 냉동실에 보관했던 엽기적 사건을 보면서 프랑스를 미개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개인과 국가를 별개로 보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 잣대가 대한민국을 향할 때는 여지없이 이중 잣대로 변모한다. 만약에, 한국 여성이 프랑스에서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면 국내 반응은 어떻게 될까 ? 대한민국은 개인-신체와 국가-영토로 별개로 보지 않는다. 국가는 국민에게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신체는 영토의 사유 재산이다. 이처럼 << 국민 >> 이라는 낱말은 << 근로자http://blog.naver.com/unheimlich1/220465634383 >> 라는 단어만큼 기득권의 욕망이 반영된 표현이다. 라캉이 프로이트를 통해 언어와 욕망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면, 푸코는 권력과 신체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이 미래를 조종한다. 조지 오웰이 소설 << 1984 >> 에서 한 말이다. 같은 이유로 언어를 조종하는 사람이 미래를 조종한다. 언어의 쓰임새를 보면 기득권의 권력 욕망이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