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웃겨 ? 

https://youtu.be/Djr9gAScBsU 

                                        

 

 

 

                                                               개그 콘서트의 최고 히트 상품은 << 고음불가 >> 와 << 마빡이 >> 가 아닌가 싶다. 이 자리에서 고음불가는 논외로 하고,  < 마빡이 > 같은 경우는 첫 공연 때부터 웃음 핵폭탄이 터졌다.  대박이 터진 것이다.  사실 이 코너는 콩트(상황극)가 아니다, 내용은 없다, 당연히 아무 의미도 없다. 그냥 마빡이, 얼빡이, 대빡이, 갈빡이가 나와서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할 뿐이다. 나 또한 이 코너를 보며 낄낄거렸다. " 아,  마빡이 너무 웃겨 !  아햏햏햏햏햏햏.... "

생각 없이  웃다가 갑자기 내가 왜 웃는지 궁굼해졌다. 잠깐, 내가 왜 웃지 ?  서사가 없으니, 내용도 없고, 의미도 없는데 " 낄낄 " 거린다는 게 이상했다. 웃음'이란 책에 밑줄 긋는 행위'와 비슷하다. < 밑줄 > 이란 독자가 저자에게 보내는 공감이며 그 공감에 대한 지지 의사'이듯이, < 웃음 > 또한 공감이자 그 공감에 대해 상대방'에게 보내는 지지'이다. 그러니까 내가 마빡이를 보며 낄낄거리는 데에는 마빡이와 내가 합일(合一)하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나와 마빡이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는 것이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들.  나는 < 마빡이와 폭소 > 라는 주제로 원고지 30매 분량의 글을 썼지만, 문제는 쓰다 보니 < 마빡이 비평 > 이 아니라 < 피츠카랄도 비평 > 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주제를 파악하지 못해서 중언부언하다 보니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갔다는 농담이다(헤어조크 감독의 걸작 << 피츠카랄도, 1982 >> 라는 영화는 실제로 배를 산으로 옮기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그런데 나와 같은 시도를 한 사람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 마빡이 정종철이 무대에 올라서 이렇게 말했다. " 골목대장 마빡이를 뭘로 보고.... "  이 부분에서 파 ~ .  " 게시판에 마빡이 재미있다고 분석하고 난리가 났더만. 우리 개그를 왜 분석을 하냐 ? " 이 부분에서는 빵 ~ .  이어서 " 우리 개그는 말이여. 아무 의미가 없어. " 라고 내뱉는 부분에서는 팥 !!!   그래, 아무 의미도 없는 개그를 왜 분석을 하냐. 세월이 흐른 후, 미련이 남은 나는 다시 < 마빡이 _ 분석 > 을 시도했으나 그때도 보기 좋게 피츠카랄도 비평문이 되고 말았다.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접었다.

그리고..........      1년 후 ㅡ

 

우연히 알라딘 서점에서 이택광의 문화비평집 <<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2011 >> 라는 책 목차를 훑다가 < 마빡이, 근대적 노동에 대한 조롱 > 이란 제목을 발견해서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내가 실패한 분석을 이택광은 어떤 방식으로 풀었을까 ?  읽고 나서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그는 " 이 신화(후기 자본주의)가 설파하는 것은 무한 경쟁이지만 실제로는 불평등한 경쟁에 대한 용인이다. 마빡이는 불평등한 경쟁의 구조를 드러낸다. 마지막 훈계를 하는 출연자(갈빡이:정준형)와 처음 이미치기를 시작한 출연자(마빡이:정종철) 사이에 가로놓인 차이 _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263쪽 "  때문에 웃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 마빡이 정종철은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지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가 제일 먼저 무대에 올라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피로는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와 비례하는 법 !  제일 생생한 쪽은 항상 갈빡이 박준형'이다. 그는 마빡이가 힘들어 쓰러지기 일보직전에서야 끝에 가서 반짝 등장한다. 갈갈이 패밀리 리더인 그는 마빡이 마음도 몰라주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 친애하는, 친애하는.. 친애애애하는... 능곡.. 능곡.....능곡......... 능곡고고고고고........ 어린이.. 어린이......어린이이이이이..........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  "       니미, 교장 선생님의 아침 조례 시간이 길어질수록 능곡 초등학교 어린이는 통곡할 판이다. 시청자가 << 마빡이 >> 개그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이유는 노동 불평등이 야기한 "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 " 에 있다.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페이소스가 아니었던가 !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유형이 갈빡이 박준형이다. 

 

IMF 사태 이후, 일한(노동에 투자한 시간) 만큼 번다는 신화는 깨졌다. 동종업계 노동자'라고 해도 노동 시간'과 월급봉투의 두께'는 비례하지 않는다. 마빡이 정종철은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버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마빡이는 숙련 노동자에 대한 은유'다. 쉴 새 없이 이마를 치며 헐떡이는 마빡이는 쉴 새 없이 나사를 조이는 << 모던 타임즈 >> 의 공장 노동자 찰리 채플린을 닮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현대 노동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빡이는  반복된 무의미한 노동에 지칠 대로 지친 노동자로 웃음이고 나발이고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그는 제일 먼저 나와서 끝까지 남는다는 점에서 근면 + 성실 + 정직한,  꾀 부리지 않는 노동자'다. 하지만 관객이란 잔인해서 < 노력 > 만 가지고는 안 된다.

< 회 > 가 거듭될수록 마빡이의 노동 강도는 < 노력 > 에서 < 노오력 > 으로, < 노오력 > 은 다시 < 노오오오오력 > 으로 강화된다. 관객은 마빡이의 노오오오오오력'에 낄낄거리고 웃지만 그 웃음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왜냐하면 마빡이가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관객은 어느새 자본가가 되어서 <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 > 하는 마빡이의 기진맥진을 보며 물개 박수'를 친다. 마빡이 정종철이 잔뜩 찌뿌린 표정으로 이게 웃겨, 라고 되물을 때 관객은 팥,  하며 웃는다. 이 웃음은 죄책감이 동반되지 않는다. 개그니까 !  만약에 < 마빡이 > 가 " 무대 " 가 아니라 노동 " 현장 " 이라면 늙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과노동에 지쳐서 잔뜩 찌뿌린 얼굴로 당신에게 이게 웃겨, 라고 되물었을 때 웃을 수 있을까 ?

나, 혹은 마빡이 그리고 당신은 정치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나는 정치가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 나와 정치 > 는 유관'하다. 우리가 힘든 노동에 지쳐 잔뜩 찌뿌린 얼굴로 이게 웃겨, 라고 말했을 때 팥, 하며 사람은 나쁜 정치인이다. 그가 크게 웃는 이유는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내가 서 있는 무대는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데 있다.  그는 제3자가 되어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 "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 " 하는 숙련 노동자가 펼치는 슬랩스틱을 보며 낄낄거릴 뿐이다. 반면 그 상황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좋은 정치인이다.  좋은 정치인과 나쁜 정치인은 당신이 뽑는다. 정치가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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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9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0-30 06: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물론 개그를 짤 때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겠으나 문화 비평이란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아 현실을 진단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yamoo 2015-10-30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그 콘서트와 같은 프로를 극도로 싫어하는지라 이택광의 분석이 별로라 느껴집니다. 저하고 웃음 코드가 맞지 않아 이런 분석이 제게 별로 와 닿지 않네요.

그치만 곰발 님의 글은 읽는 맛이 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마다 웃음 코드가 다른 것에 매우 흥미가 있습니다. 제가 웃긴 거는 사람들이 웃기지 않다고 하고, 남들이 웃기다고 하는 건 제가 볼 땐 하나도 안 웃기거든요~ 베르그송의 <웃음>을 봐도 시원한 답을 들을 수가 없더이다..

곰발님께서 좀 긁어 주시구랴..

곰곰생각하는발 2015-10-30 06:43   좋아요 0 | URL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극도로 싫어하시다니 !
갑자기 야무 님 웃음 코드가 궁금해집니다. 제 글이 읽는 맛이 난다니 고맙습니다. ( 꾸벅 ~ )

문득 든 생각인데 사이코패스는 잘 안 웃을 거 같고, 웃는다 해도 남들이 전혀 안 웃긴 거에 웃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이란 어느 정도 공감이잖아요.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이 다르니 안 웃고, 안 웃긴 거에 웃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모텔에서 남자 토막 살해한 후 잡힌 여서 있잖아요. 그 여자는 정말 조사 과정에서 별거 아는 거에 웃고 그러더군요. 소오름....

앗 쓰고 보니 야무 님이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웃음 코드라는 게 왜 취향의 문제잖아요. 어느 정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