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 나쁜 피 그리고 생매장
개인적으로 막스 오필스의 " 3,40년대 카메라 동선(움직임) " 을 좋아한다. 막스 오퓔스 감독을 모른다면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를 떠올려도 된다. 히치콕의 40년대 카메라 동선도 뛰어나니깐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이들 고전 영화를 현대 영화'와 비교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는 것. 현대 영화의 현란한 카메라 기술을 3,40년대 고전 영화와 비교하는 것은 금물이다. 현대 촬영 장비'가 < 개미 > 였다면 3,40년대 촬영 장비는 < 코끼리 > 에 가까웠다. 카메라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시간과 명분이 필요했고, 이 명분은 미학과 철학이 동반되었다. 그렇기에 카메라 동선을 제대로 읽으면 감독이 지향하는 미학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영조가 아들을 죽인 사건도 그 시대적 맥락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조 나이 41세에 아들을 보았는데 그 이름이 선(사도세자 이름)이다. 마흔 넘어 낳은 자식이니 금지옥엽'인 " 늦둥이 " 이지만, 그 시대로 따지자면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에 낳은 자식에 속한다. 왜냐하면 조선 임금 평균 수명이 46.5세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그때 상황을 21세기 헬조선 시대 나이'로 치환하면 환갑에 아들을 본 꼴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평범한 가문의 늦둥이'가 아니라 왕의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데 있다. 조선 임금 평균 수명이 46.5세라고 했을 때 이 평균값을 적용하자면 : 단순하게 계산해서 영조는 아들 선'이 6,7세 되는 해에 죽을 운명이다. 영조 입장에서는 잠이 안 올 상황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궁궐'이란 혈육 상잔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곳'이 아니더냐. 선대를 거슬러 올라가 단종의 비극'을 보면 영조가 왜 그토록 어린 사도세자를 매섭게 질책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단종애사를 다룬 영화 << 관상 >> 은 문종(37세)이 죽고 그 자리를 어린 왕자(12세)가 계승하면서 벌어지게 되는 궁중 혈투를 다룬 사극이다. 신변'에 위험을 느낀 어린 단종은 스스로 왕위를 둘째 삼촌인 수양대군(세조, 이정재)에게 위양하고 물러난다. 왕권 위양은 짐승 같은 삼촌에게 바치는 흥정인 셈'이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잔인하게도 어린 조카인 단종을 죽인다. 단종, 12살에 왕이 된 임금은 17살에 살해된다. 이 " 단종애사 " 를 영조가 모를 리 없다. 영조는 어린 선(愃)을 보면서 단종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생각했을 것이다. 어린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 그가 선택한 것은 스파, 아아아아아아르타식 조기 교육이었다. 더군다나 영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신하들에게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첫째, 영조는 천출이었다. 어머니는 물을 길어 나르는 무수리'였다. 무수리는 궁에서 일하는 계급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으로 청소나 잔심부름이나 하는 계집 종이었다. 영조'는 로열 패밀리 소속'이기는 하나 " 하빠리 혈통 " 을 가진, 직계가 아닌 방계 혈족이었다. 둘째, 영조는 제위 기간 내내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만약에 자신이 죽고 나서 어린 선이 왕위에 오른다면 붕당 세력들은 " 직계의 정통성 " 을 내세워 아들을 폐위를 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영조는 " 나쁜 피(천출) " 에 대한 컴플렉스와 " 독살설 " 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다. 그는 " 적통 " 이 되고 싶었으나 " 짝퉁 " 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이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붕당 세력에게 흉 잡힐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조는 신하들에게 책을 잡히지 않을 완벽한 세자를 원했고,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남달랐다. 문제는 자식 교육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원했던 완전체가 아니었다. 아버지 영조는 새끼를 품에 안는 < 캥거루 > 가 아니라 벼랑 끝으로 새끼를 내모는 < 호랑이 > 가 되었고, 아들은 관이 향기로운 족속인 < 사슴 > 이 아니라 보기 흉한 < 하이에나 > 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 뒤주 >> 였다.
나무로 짠 < 뒤주 > 라는 궤짝은 시체를 담는 < 관 > 이라는 궤'와 동일하다. 즉,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다는 행위는 산 사람을 관에 가두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이 형벌이야말로 가장 잔인하면서도 무서운 형벌이 아니었을까 ? 그는 산 채로 무덤 속에 갇혀서 서서히 죽어간다. 프로이트 식으로 이 비극적 사건을 해설하자면 : 영화 << 사도세자 >> 는 반-오이디푸스 서사'에 해당된다. 아버지 영조는 라이오스이고 아들 선(愃)은 역모에 실패한 오이디푸스'다. 아들은 아버지를 칼로 찌르지 못한다. 그 대가는 뒤주라는 생매장'이다. 조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에게 말한다. " 너는 태어나서는 안 될 운명을 가졌구나. " 그는 아들에게 세상에 나오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아들 이선은 뒤주에 갇힌 지 8일째 지나 숨을 놓는다. < 뒤주 > 는 컴컴한 구멍이면서, 컴컴한 무덤이면서, 컴컴한 자궁이다. 영조가 보기에 아들 선'은 태어나면 안 될 자식'이었다. 선(愃)이라는 한자 이름은 " 너그럽다 " 라는 뜻도 있지만 " 잊다 " 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한자'다. 영조는 아들 선(愃)이 죽자 " 사도(思悼) " 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생각 사, 슬플 도'다. 너를 생각하면 슬프다는 뜻이지만 달리 해석하면 잊을 수 없다는 의미이리라. 슬프다는 마음은 잊을 수 없다는 마음이다. 아이러니하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과 잊을 수 없다는 마음. 영조는 아들의 생을 훔쳐서 팔순'이 넘는 세월 동안 천수를 누리며 장수했지만 마음 속에는 두 가지 이름이 번뇌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둥이 쳤을 것이다.
- 혼기가 꽉 찬 딸을 과년한 딸'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과년은 16세를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종실 자녀가 나이 열 살만 되면 의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