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한 애티튜드, 두 번째 : 거울

그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을 그린 화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워낙에 유명한 그림이니 말이다(나는 화가의 이름 공개'를 잠시 미루겠다). 다른 화가가 그런 예수 그림과는 달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순한 농부의 얼굴이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다. 제목은 << 황색 예수 >> 다. 저 얼굴에는 그 어떠한 분노도, 거대한 고뇌도, 숭고한 서사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지쳤을 뿐이다. 편안히 잠든 얼굴이어서 좋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면 문득 슬픔이 찾아온다. 그래서 성호를 긋고 내 죄를 고백하기에 이른다. " 주여,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란 놈은 법 없이도 살 놈이어서 지은 죄가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으니, 이 또한 나태와 자만의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이 죄 없음에 대한 죄'를 고백하나이다. "
요즘은 먹방이 대세이다 보니 유행따라 이 그림에 대한 감상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 소고기 무국 >> 같은 느낌이 난다. 이 그림을 배경으로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있다. 이 그림 속 화가'가 << 황색 예수 >> 를 그렸다.

이 그림 제목은 << 황색 예수가 있는 자화상(1889) >> 이다. 그림 속 화가는, 폴 고갱이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서 자화상을 그렸다. 그러므로 << 황색 예수 >> 를 그린 화가 또한 고갱이다. 화가 스스로도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두 그림 속 예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좌우가 바뀌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고개가 기울어진 방향이 서로 다른 것이다. 고갱은 왜 그림을 좌우가 바뀐 상태로 그렸을까 ? 답은 화가가 거울에 비친 상을 보고 그렸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자기 얼굴을 그릴 때는 대부분 거울을 보고 그리게 되니 전이된 상(象)이 그대로 화폭에 담긴 것이다. 시인 이상이 지적했듯이 " 거울 속의 나 " 는 "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 " 다.
악수란 오른손과 오른손 혹은 왼손과 왼손이 맺는 동맹이니 < 나 > 와 < 거울 속의 나 > 는 서로 동맹을 맺을 수도, 그렇다고 타협을 할 수도 없는 존재'다. 이처럼 오른손잡이는 거울 속에서 왼손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거울은 " 왜곡과 전이(轉移) " 가 발생하는 장소'다. << 황색 예수가 있는 자화상 >> 에서 보이는 고갱의 두툼한 귀는 오른쪽 귀가 아니라 왼쪽 귀'다. 천진난만한 어조로 말하자면 거울은 동화 속에 나오는 청개구리'다. 거울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하나 있다. << 백설공주 >> 다. 일단, 왜곡과 전이의 장소인 거울이 진실'만을 말한다는 설정은 모순이다. 오히려 거울은 거짓 대꾸를 하는 사물'에 가깝다. 여왕이 < 말하는 거울 > 에게 " 거울아, 거울아 !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 " 라고 물었을 때
말하는 거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백설공주'라고 대답한 것은 반대로 대답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거울이란 왜곡과 전이가 발생하는 장소이기에 그렇다. 거짓말하는 거울의 지적은 어쩌면 여왕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거울은 청개구리이니깐 말이다. 청개구리 같은 거울의 지랄같은 성질머리는 상(象)을 오락가락하게 만든다. 거울을 보는 주체가 동일인이라 해도 어느 때는 잘생긴 얼굴처럼 보이다가도 또 어느 때는 초라한 얼굴로 변하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거울은 심술궂게도 당신이 가장 닮기 싫어하는 인물을 보여주기도 한다. 카프카는 거울을 통해서 아버지와 닮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처럼 거울은 < 주체의 얼굴 > 을 < 타자의 얼굴 > 로 바꾸고는 혼자서 속으로 낄낄거린다.
시인 이상은 " 거울 속의 나 " 가 " 나와는 반대 " 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는 거울에 비친 상(象)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를 거부한다. 꽤 닮았다( " 거울속의나는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또꽤닮았소 " ) 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동일하다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거울은 믿을 것이 못되는 요물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백설 공주 이야기로 돌아와서 " 거울이 말을 한다 " 는 설정 자체부터가 여왕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여왕이 들은 것은 거울의 말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 환청으로 들린 것이다. 거울에 비친 상(象)은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 투영(投映)된 결과'다. 그러니까 거울은 사진기'가 아니라 엑스레이 촬영기'에 가깝다.
거울은 < 겉 > 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 속 > 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당신이 거울을 통해 보는 것은 거죽이 아니라 뼈와 내장들'이다. 화가가 그린 자화상은 항상 왜곡과 전이'가 투영된 상이다. 화가는 거죽을 그리지 않고 뼈와 내장을 그린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두 장의 고흐 자화상이 있다. 이 두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동일인이지만 그림 속 화가는 서로 다른 사람이다.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그린다. 고흐는 마음을 그리기 위해 마음에 흔들리는 얼굴(들)을 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