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메르스의 메이트인가
수전 손택의 탁월한 저서 << 타인의 고통 >> 은 “ 에이즈 ” 에 대한 대중 폭력을 비판한다. 미국 대중 기독교 우파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독교 우파는 에이즈'를 윤리적 타락의 결과로 선전했고, 주요 표적은 동성애자였다. 동성애자는 어느 순간 불가촉천민으로 낙인 찍혔고, 고립되었으며, 찍히면 죽을 수도 있는 과녁이 되었다. 그들은 < 敵 : 원수 적 > 이자 < 的 : 과녁 적 > 이었다. 이 광기 바이러스는 고스란히 태평양을 건너셔, 현해탄을 건너셔, 동해바다를 넘어셔, 사이다 병속에 숨어셔, 인천 앞바다를 거쳐셔, 대한민국에 상륙했다. 뿜빠라 뿜빠 뿜빠빠. 당시, 나는 동성애자이면서 에이즈 보균 판정을 받은 사람과 알음알음 알고 지냈는데 그 사람은 세찬 바람이 전하는 풍문과는 달리 일상생활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연락이 끊겨서 소식을 알 수는 없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 졸라 ” 건강한 모습으로 정상인처럼 활동한 것을 보면 에이즈는 호들갑을 떨만큼 무서운 제2의 페스트‘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D.O.A : 도착 즉시 사망을 뜻하는 의학 용어 는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질병에는 “ 치사율 ” 이 발생한다. 그 흔한 감기‘에도 죽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기록에 의하면 웃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웃느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나 ?! 이 치사율이 소수점 이하로 떨어져서 인식을 못할 뿐이다. 사실 < 사스 > 나 < 메르스 > 도 매년 유행하는 계절성 독감( 코로나 바이러스 )이다.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가 16명으로 늘어났다는 사실 앞에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우우, 하지 마시라. 내 말은 경계를 하고 조심을 하면 될 일이지 사회 전체가 공황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국가는 공포를 은폐하려는 속성이 있고, 언론은 공포를 확산하려는 속성이 있다. 특히 한국 언론'은 1을 100으로 과장해서 치환하려는 버릇이 있다. 왜냐하면 << 공포 조성 >> 만큼 채널을 고정시키는 데 유리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독이 있는 뱀이나 지네를 보게 되면 순간 눈을 떼지 못한 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시선을 딴 데로 분산시킬 경우 갑작스러운 공격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종편 뉴스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공포를 조성하고 판매한다. 언론은 하이에나의 습속을 가진 족속이다. 2009년, 유행성 독감인 신종 플루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260명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매년 계절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평균 2,369명이다.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 때려잡자, 메르스 환자 !!!! ” 다. 메르스 환자는 감기 한번 걸렸다고 불가촉천민이 되어 공공의 적‘이 되었다. 하지만 표적이 틀렸다. 메르스 환자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활시위 팽팽하게 당겨서 겨냥해야 될 과녁은 메르스 환자가 아니라 국가와 삼성이다. 국가는 무능했고 삼성은 거만했다.
국내 1위가 아닌, 세계 1위를 목표로 삼겠다던 삼성이 메리스의 메이트(mate)였다는 사실은 영화 << 식스 센스 >> 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었다는 서사에 버금가는 반전이었다. 세스코 본사에 바퀴와 쥐가 가장 많이 번식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 이런 것을 두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모양이다. 삼성은 기자 회견을 통해서 뚫린 입으로 삼성(의 방역 시스템)이 뚫린 것이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며 반격을 가했지만, 이 말은 반은 정답이고 반은 오답이었다. 삼성도 뚫리고 국가도 뚫린 것 ! 이 사실 앞에서 너도 울고, 나도 울고, 국민 모두 울었다. 삼성 입장에서는 메리스라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작전 본부를 포격한 꼴이니 911 사태 때 비행기가 미 국방부 옥타곤을 포격한 것이나 같은 아, 수라장'이었을 것이다. 모두 중동발 패트리어트 미사일이었다.
세계 1위를 꿈꾸는 엘리트 집단으로서는 자존심에 칼집이 난 상태다. 삼성은 오징어가 되어서 벌집 모양으로 끓는 물에 감겨 오그라들었다. 이 정도면 명예에 먹물을 뒤집어쓴 꼴이다. 메르스 사태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공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아니라 거대 기업이 국가 권력과 맞짱을 뜨는 태도와 일개 기업 눈치나 보는 국가'다. ( 삼성의 ) 메르스를 향한 신경질적인 태도는 삼성이라는 권력이 이미 국가 권력을 얕잡아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말만큼 슬픈 말도 없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삼성 때문에 먹고사는 노동자가 몇 명인 줄 아느냐고 묻기 전에 먼저 대한민국 때문에 살아가는 노동자가 몇 명이나 되는 줄 아느냐고 물어야 한다. 삼성이 망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설령, 삼성이 망한다고 해서 국가가 망하면 대한민국은 차라리 망하는 게 낫다. 국가가 한 개의 기업에 의해 흥망이 좌지우지될 처지라면 말이다. 일당 독재 사회'만큼 무서운 것은 일개 기업이 국가를 자지우지하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는 삼성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