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래, 나 쉬운 말 아니야
김혜수가 영화 << 타짜 >> 에서 " 나, 이대 나온 여자야 ! " 라고 말했을 때, 이 말속에 숨겨진 행간은 " 나, 쉬운 여자 아니거덩. 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 " 라는 뜻이 숨겨져 있다. 배울 만큼 배웠기에 갈 때까지 가는 여자는 아니라는 말.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처럼 남자들은 여자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잘해주거나 해맑게 웃어주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깻잎오소리입말사전 > 에 의하면 쉬운 여자와 쉬운 말은 홀아비와 과부 사이다.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쉬운 말이 아니라는 말. 쉬운 말'이라고 해서 우습게 보다가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 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쉬운 표현을 낮잡아 본다. 그래서 배운 사람일수록 쉬운 말을 어렵게 말한다. 대표적 지식인이 정성일과 신형철'이다. 이들이 쓴 글을 읽다 보면 뭔가 배운 티가 팍팍 묻어나서 느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정성일이 쓴 글은 영화 평론가 아니랄까봐 영화 평론가 티'가 나고, 신형철 또한 문학 평론가 티'가 난다. < -척을 하기 > 와 < -티를 내기 > 는 사소한 차이'는 있으나 넓은 맥락에서 보면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 - 척 > 과 < - 티 > 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부풀리는 성향이 있다. < - 답게 > 과 과도한 방향으로 빠지면 < - 티 > 가 되는 법이다. 예를 들어 교수가 < 교수답게 > 행동하지 않고 훈계질을 하면 < 교수티 > 를 내게 된다. 철학 책이나 학술 서적을 쉽게 쓰라는 주문이 아니다. 철학 책은 어렵게 기술되어야 한다. 만약에 쉽게 쓰여진 철학 책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철학 책이 아니다. 과학이 형이하학을 다룬다면 철학은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을 다루는 학문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중과 호흡해야 하는 평론집'이라면 어느 정도는 쉽게 써야 할 의무가 있다. 대중이 이해할 정도로 쓰여진 평론집은 과연 깊이가 없을까 ? 독자는 자신이 이해를 못하는 문장은 자신의 얕은 교양을 탓한다.
" 당신에게는 무아경의 자기통제와 복종을 통해 일상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리오타르적 숭고의 의지가 있는가 ? " 라는 문장 앞에서 (독자) 거지반은 무릎 탁, 치며 아, 한다. 무슨 뜻인지도 모른면서 일단 아, 라는 감탄사 하나 발사한다. 배운 만큼 배운 사람이 틀린 말을 썼겠어, 라는 노예 근성이 튀어나오는 순간'이다. 그러다 보니 배운 사람은 일단 어렵게 쓰고 본다. 손해볼 것 없기 때문이다. 알면 내 덕, 모르면 네 탓 ! 하지만 저 위의 문장을 쉽게 풀어서 쓰면 당신은 우, 하게 된다. " 이런 글은 나도 쓰겠다, 쓰벌 ! " 내가 보기에는 < 당신에게는 무아경의 자기통제와 복종을 통해 일상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가 > 라는 문장을 내 스타일로 표현하면 < 할껴, 말껴 ? > 라는 문장이다.
더 줄인다면 < 할껴 ? > 다. 할껴, 라는 두 음절 속에는 " 거... 참, 말 많네. 그러니께, 말만 나불거리지 말고 용기 내서 함께 할 생각이 있는감 ? " 이 숨겨져 있다. 이 말을 가지고 무아경의 자기통제라느니, 복종을 통해 일상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리오타르적 숭고한 의지 따위로 포장하는 것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어려운 말 쓰며 배운 티 팍팍 내는 놈은 거지반 사기꾼'이다.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쉽게 말하고, 어렵게 말해야 되는 것은 쉽게 말하도록 노력하는 게 지식인의 몫이다. 쉬운 말이라고 해서 반드시 쉬운 말은 아니다. 다음은 상대하기 쉬운 말(실력이 없는 말)이 결코 쉬운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 기사'다.
‘을(乙)들의 희망’으로 불리는 경주마 ‘차밍걸’이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생긴 이래 최다연패 신기록을 세웠다. 2005년 태어난 8세 암말 차밍걸은 26일 경기도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제6경주에 출전해 11마리 중에서 9번째로 골인했다. 이로써 2007년 데뷔, 7년간 96번 경주에 출전한 차밍걸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며 자신과 당나루(1995년 기준)가 갖고 있던 95연패 기록을 넘어섰다. 차밍걸은 다른 경주마보다 몸무게 100㎏이 덜 나가는 430㎏의 왜소한 말. 1등은 못하지만 끝까지 열심히 뛰는 ‘소시민’ 또는 성실한 ‘을’로 비유되며 서울 경마공원의 ‘화제마’로 부상했다. 차밍걸이 96연패 기록을 세운 26일, 1등 기수보다 더 조명을 받은 기수가 있다. 차밍걸의 기수 유미라(29)씨다. 2008년 6월 기수로 데뷔한 유씨는 같은 해 8월 차밍걸을 처음 타 12두 가운데 6위를 한 이래 차밍걸이 출전한 96회 경주 중 75번을 함께 달렸다.유 기수는 “오늘도 레이스 중반까지 꼴찌로 처졌다. 하지만 끝까지 열심히 달려 직선주로에서 두 마리를 제쳤다. 1등을 못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꼴찌도 안 하는 투지 있고 열심히 뛰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 신문에서 기사 발췌, 이해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