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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처럼 보기 - 왜 국가는 계획에 실패하는가
제임스 C. 스콧 지음, 전상인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12월
평점 :
길모퉁이 없는 도시 : 전봇대와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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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같은 동남아 국가에서는 전봇대 기둥이 사각형'인 경우가 있다. 둥근 전봇대 기둥만 보았던 한국 관광객 입장에서 보면 신기한 풍경일 터. 그 모습이 신기해서 관광 버스 여행 가이드에게 물어보면 뱀이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는 바람에 종종 정전 사고를 일으켜 전봇대 기둥을 사격형으로 만들었다는 재미있는 답변이 돌아온다. 태국 하면 뱀 많기로 소문난 동네가 아니었던가. 한국 관광객은 나뭇가지에 돌돌 말린 뱀을 본 기억을 떠올리며 무릎 탁 치고 아, 한다. 아, 하며 무릎 탁, 치는 건 좀 이상하잖아. " 희한하네에에에에 ~ " 하지만 전봇대가 사각형인 이유는 사각형 전봇대보다 원기둥 전봇대가 제조 단가'가 더 비싸고 정교한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술력이 낙후한 동남아에서는 설치 비용 절감 차원에서 사각형 전봇대가 거리에 박혔다고 해야 맞는 설명이 될 것 같다.
전봇대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기술력이 필요한 건축물이다(전봇대 속은 텅 비어 있다).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전봇대가 둥근 이유는 바람의 저항을 적게 받기 위해서'다. 비행기가 버스처럼 네모난 맵시'를 자랑했다면 날개는 있으나 멀리 날지 못하는 공작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리라. 비행기는 오로지 날아야 한다는 욕망 때문에 모든 겉치레'를 제거해 버린 순수한 형태로 남았다. 그렇다고 해서 관광 가이드의 말이 아예 말도 안 되는 엉터리'라고는 할 수 없다. 뱀이 사각형 기둥보다는 원형 기둥을 오르기 쉽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뱀이 기둥을 돌돌 감쌀 때에는 원형 전봇대 원통과 뱀 몸통 사이의 틈'이 없지만 사각형 전봇대는 구조상 밀착이 어려워 틈이 많이 벌어진다. 당연히 사각형 기둥보다는 원형 기둥을 감쌀 때 안정적이다.
하지만 뱀이 둥근 기둥을 이용해서 전봇대를 쉽게 오르기 위해서는 몸 길이가 매우 길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쇠막대에 칭칭 감긴 코일coil처럼 말이다. 과연 전봇대를 쇠막대처럼 칭칭 감을 만한 길이를 가진 뱀이 있을까 ? 있다, 심형래 감독이 연출한 영화 << 디워 >> 에 나오는 이무기'라면 동남아 관광 가이드'가 한 말은 정답일 수 있다. 영화 << 디워 >> 포스터'를 보면 빌딩을 오르는 이무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때 포스터에 등장하는 빌딩은 원형에 가까운 형태'다. 심형래도 나름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영화를 만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적어도 << 디워 >> 만듦새는 " 키 2미터에 몸무게는 30kg인 건장한 녀석 " 이라고 쓰는 초등학생의 펜픽' 정도는 아니라는 소리'다.
" 장래 희망이 베스트셀러 작가인 초등학교 5학년 정다래 학생 ! 키 2미터에 몸무게가 30kg인 남자는 건장한 사내가 아니라 성냥개비 물 빠따'랍니다. " 뱀은 배 부분 전반에 걸친 역방향 비늘결을 이용하여 측선 물결운동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직선 주행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뱀을 도형으로 표현하자면 < 곡선 > 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전봇대가 둥근 이유는 바람의 저항을 적게 받기 위해서다. 나무가 둥근 이유'가 광합성을 골고루 받기 위한 식물의 전략이라고는 하지만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적화된 디자인'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나무는 보다 많은 광합성을 얻기 위해서 최대한 높이 자라는데 높이 자랄수록 맞바람을 세게 받으니 바람의 저항을 계산하지 않으면 키 큰 나무는 바벨탑 신세가 될 공산이 크다.
산 정상에 가까운 나무일수록 키가 낮거나 곱추의 허리처럼 자세를 최대한 낮추는 이유는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산 정상에서 대나무처럼 꽂꽂하게 버티다가는 뿌리째 뽑히기 딱이다. 강과 하천이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원인도 유속에 따른 퇴적과 유실을 막기 위해서'다. 강과 하천은 유속이 빠르다 싶으면 휘어져서 속도를 줄인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속도 제어 장치'인 셈이다. 이처럼 곡선은 수직의 속도와 가로의 저항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저항'을 상쇄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시멘트 원기둥 전봇대'가 모방하려는 것은 바로 나무'다. 실제로 시멘트 원기둥 전봇대 전에 사용되었던 전봇대는 우뚝 솟은 나무 전봇대'였다. 직선이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디자인이라면 곡선은 자연친화적 형태'라 할 수 있다.
<< 국가처럼 보기 Seeing Like a State >> 를 저술한 제임스 스콧'은 레비스트로스의 문학적 표현을 빌려 원시와 문명을 < 날것과 요리한 것 > 으로 분류한다. 스콧에 의하면 곡선은 정복되지 않은 처녀지(비가독성)이고 직선은 " 읽기 쉬워진 삼림(단순화) " 에 해당된다. 직선은 인간에 의해 관리되고 정리된 디자인이다. 만약에 1500년경 도시 지적도'가 있다면 어떤 모양새였을까 ? 아마도 2살짜리 갓난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의미를 알 수 없는 실 뭉텅이 모양일 것이다. 도시 계획 이전이니 골목길은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고 논이나 밭도 뒤죽박죽일 것이다. 그렇다면 계몽주의자들이 신대륙에서 건설한 시카고 도시는 어떤 모양일까. 1893년 시카고 시내 지적도를 보면 네모반듯한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 있다. 신도시는 대부분 이런 형태로 건설된다. " 모더니티 " 는 <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는 작업 > 과 연관이 있다. 모더니티'는 곡선을 직선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발생된 " 속도 " 를 얻는다.
현대인은 곡선을 직선에 비해 느리고 불편하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 빠르다 " 는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임스 스콧은 권력자가 도시를 곡선에서 직선으로 바꾸고자 하는 이유로 대중 통제 전략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바둑판 모양으로 구성된 도시는 폭동이 일어날 경우 신속하게 진압군'을 투입하여 제압하기 좋은 구조'다. 반면 구불구불한 마을'은 미로 같아서 폭동 진압군이 애를 먹는다. 당연히 폭동을 일으킨 마을 주민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지리에 밝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민 혁명군들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힌 곳에서 최후의 항전을 치루고는 했다. 히틀러가 장기 프로젝트로 거대 도시 건설 계획을 설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 아우토반 " 을 건설한 인물이 바로 히틀러'가 아니었던가.
<< 국가처럼 보기 >> 는 옮긴이'가 지적한 대로 "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지리학, 인류학, 언어학, 철학, 농학, 임학, 조경학, 생태학, 도시계획학 등 한문의 거의 전 분야를 가로지르고 있(옮긴이의 글 중 ) " 어서 내용이 풍부하다. 무엇보다도 문학적 표현력이 뛰어나서 읽는 맛이 있다. 롤랑 바르트가 쓴 << 아케이드 프로젝트 >> 라고나 할까 ? 도시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속도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대 포장 해서 확대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골목은 사라졌다(오세훈이 저지른 피맛골 정책을 보라). 처녀지는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었다. 저자가 국가 개입으로 건설된 " 브라질리아 " 라는 행정 도시'를 유령 도시( 군중 없는 도시 ) 라고 언급한 후 지적한 부분이 바로 " 길모퉁이의 부재 " 였다. 도시 건설자'는 길모퉁이'를 도시 건설 계획'에 있어서 불필요한 요소'로 파악해 제거했으나 바로 그 길모퉁이가 없는 도시 때문에 브라질리아는 생명력을 상실한 삭막한 신도시'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골목이 사라지다 보니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대로'로 나오게 된다. 대로는 무법천지'다. 차들은.... 아, 띠띠빵빵 빠르게 달린다. 그때 깨닫게 된다. 골목이 간직한 구불구불한 곡선'이 차의 진입과 속도를 늦춰서 아이를 위험에서 구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골목 가게'도 사라졌다. 피맛골에 모여 있던 맛집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피맛골에 있던 맛집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 종로 2가 14층 " 신삥 " 빌딩 5층에 있는 빈대떡 가게를 찾지는 않는다. 그때 다시 깨닫게 된다. 어쩌면 빈대떡 맛 때문에 피맛골을 찾았던 게 아니라 골목 운치가 좋아서 그 가게를 찾았다는 사실 말이다. 만약에 어떤 마을이 마음에 쏙 든다면 당신의 호의는 팔 할이 구불구불한 길모퉁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곡선은 계몽되어야 될 존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