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택광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걱정 신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ㅡ 동요 오빠 생각 中

 

 

내 꿈은 항상 똑같다.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감독이 연출한 " 옴니버스(omnibus) 영화 " 같다. 꿈에 제목을 붙인다면 << 신발을 잃어버린 사내의 곤경 >> 이 되지 않을까 싶다. < 꿈의 극장 > 에서 상영되는 장르는 다양하다. 괴물이 등장하는 괴수 영화이기도 하고, 청춘 드라마가 상영되기도 하며, 액션 영화'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인 < 나 > 는 항상 신발이 없어서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지난번 꿈에는 대형 귀뚜라미 괴물이 등장했는데 신발이 없어서 꽤나 고생했다. 살기 위해서는 도망을 쳐야 하는데 맨발로 뛰다 보니 말 그대로 형로(荊路 : 가시나무 형, 길 로)였다. 돌부리에 차이고 가시밭길에 부딪혀 고생하는 이야기'였다. 맨발로 뛰다 보니 발병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발은 아프고, 귀뚜라미는 다가오고......

옴니버스(omnibus) : 문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omni- ) 함께 탈 수 있는 자동차'란 뜻이 있고, 영화나 연극의 한 형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된 짧은이야기를 늘어놓아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든 형식을 의미하기도 하며 서방을 여러 명 둔 기생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인용 )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장르가 바뀌어 청춘물'이 상영된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데이트 장소에 가야 하는데 신발이 없다. 맨발로 가는 수밖에 ! 끝 ?! 아니다. 모든 서사'는 험난한 형로'가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하시라. 데이트 장소를 향해 걸어가던 < 나 > 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다. 소나기'다. 비는 내리고, 신발이 없으니 양말은 젖고, 사람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서둘러 걷다가 개똥을 밟고, 똥이 껌처럼 떨어지지 않고, 느닷없이 지난번 괴수영화에 등장했던 귀뚜라미가 쫒아오고, 시바... 장르가 바뀌었는데 왜 느닷없이 귀뚜라미가 출몰하냐며 투덜대기에는 상황이 졸라 급박하고.......  대충 이런 식'이다. 정말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밤에 귀뚜라미처럼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결국 청춘 영화 속 < 나 > 는 돌부리와 가시밭길을 이기지 못하고 데이트 장소'에 가지 못한다. 여자는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리라.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리라.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오지 않는 님을 그리워할 것이다. 만약에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님이 똥 밟아서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 아, 아아. 됐고. 반복이 계속되면 증후가 된다. 그러니까, 내 꿈속에 등장하는 < 맨발 > 모티브'는 어떤 증후'에 속한다. 그래서 스스로 꿈을 분석했다. 잘 닦인 신발은 사회적 지위'를 뜻한다.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사회적 직위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이니, 꿈에 등장하는 맨발 모티브'는 고용 불안에 대한 현대인의 두려움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괴수 귀뚜라미'는 노동자를 개똥 취급하는 이건희나 이명박, 박근혜 따위였던 셈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내놓은 꿈의 해석'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 라는 책에서 미래에 대해 온갖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개선될 여지'는 없다. 문투文套가 사뭇 강경하다. 상위 1%에게는 장미빛 인생이지만 99%는 핏빛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바우만이 보기에 민주주의 제도는 고장났다. 민주주의가 키운 것은 자유와 평등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리고 신발'이었다, 시바 ! 신발이라는 오브제가 걱정'에 대한 은유'라고 했을 때, 자본가는 신발 크기'를 키우기 위해 모든 전략을 세운다. 섹스 어필'보다 잘 팔리는 이미지는 걱정 어필'이다. 그러니까 20세기 자본가가 잘록한 여성 허리를 디자인한 콜라병으로 상품을 팔았다면 21세기 자본가는 섹스'보다는 걱정( 공포, 불안 따위)에서 파생되는 상품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혹은 줄곧 간파하고 있었다.

이제는 콜라병보다는 신발이 대세'가 됐다. 걱정 상품은 분야가 어마어마하다. 교육은 그 정점'이다. 교육 자본가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끊임없이 걱정 이미지'를 유포시킨다. 영어는 혀가 말랑말랑할 때 조기 교육을 시켜야 늦지 않고, 공교육에 의지하면 또래 경쟁에서 필패하게 된다고 말한다. 덧붙이는 말. " 형구 엄마, 비싸다고 생각하지 말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요 ! "  결국 형구 엄마는 걱정 상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은 천만 원 등록금의 주범인 대학 재벌'이다. 건강이나 치안 분야도 대표적인 걱정 상품'이다. 이들 상품들은 대중이 걱정을 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상품이다. 이처럼 자본가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끊임없이 유포한다.

언론이 사교육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사교육 열풍의 주범으로 학원 산업을 비판하는데 잘못된 설정이다. 학원은 사교육의 주범(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사는 사람이 있으니 파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틈새 시장'이다. 니체가 언급했듯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면 안된다. 그렇기에 학원을 없앤다고 공교육이 바로 설 리 없다. 주범은 사학 재단 그리고 교육 공무원이다.


자본가가 미디어라는 커다란 핸드마이크'에 대고 " 자, 왔어요. 왔어요. 씽씽한 걱정이 왔어요 ! " 라며 약을 팔 때마다 대중은 꿈속에서 귀뚜라미를 피해 맨발로 도망치는 꿈을 꾸게 된다. 아마도 껌보다 강력한 똥을 밟으리라. 자본가는 기업 이미지 광고 따위에도 항상 행복하세요, 라고 떠들지만 뒤집어보면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중이 행복하면 자본가'는 망한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쟁 의식이 골프채와 루이비통과 벤츠를 사게 되는 원동력'이다. 해마다 나라별 행복지수를 발표할 때마다 가난한 나라'가 행복지수 상위권에 걸리는 원인은 골프채와 벤츠 그리고 아파트 없이도 행복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은 대한민국이나 미국처럼 거대한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는다. 걱정을 더는 행위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신발 없이 맨발로 다닐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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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03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은 아프고, 귀뚜라미는 다가오고....˝ 여기서 얼마나 웃었는지ㅋㅋ
귀뚜라미, 귀뚜라미 하니 백가흠-귀뚜라미가 온다 책생각이 나네요. 신발이고, 가방이고 뭐든 다 잃어버리게 되는 우리들에 대한 소설들이...
지그문트 바우만도 맨날 읽자 하면서 미루고 있었는데, 불끈 하게 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03 14:15   좋아요 0 | URL
저와 유머 코드가 비슷하네요. 사실 꿈속에서는에일리언이었는데 재미를 강조하다보니 귀뚜라미로 바꿨습니다. 귀뚜라미 괴물 웃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