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ㅣ 서툰 사람들

 

 

 

 

 

 

 

 

보그병신체'라는 쎈 말이 유령처럼 떠돌던 때가 있었다(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 과거완료형'은 정확한 진단은 아닌 것 같다). 패션 잡지 << 보그 >> 에서 주로 사용하는 문체에서 유래했다. 영어 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고 그 옆에 조사'만 붙인 꼴로 반은 한글이고 반은 외래어'로 구성된 독특한 문장을 말한다. 대가리와 몸통은 앵글로색슨 하드 바디인데 엉덩이에는 몽고반점이 있는 반인반수라고 할까 ? 한글이 소리 문자'라고는 하지만 " 무심한 듯 시크하게 " 웃고 넘기기엔 모양새가 좋지 않다. 특정 소수가 보그병신체를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있어 보이려고 하는 " 과시욕 " 때문이다. 사실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 상류 계급은 천한 것들이 사용하는 언문과 구별 짓기 위해 그들만의 언어'가 발달했다. 지금이야 미국이 한국의 " 빅 브라더 " 이니 영어를 숭배했지만,

중국이 한국의 " 따거 " 였을 때는 한자가 상류 계급에서 통용되는 언어'였다. 물고기 이름'을 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생김새가 이상한 물고기는 대부분 한글 이름이 주어지고 잘빠진 물고기 이름에는 한자어'가 사용되었다.  숭어, 민어, 전어와 같이 " ㅡ 魚 " 로 끝나는 물고기는 대부분 몸매가 유선형이고 비닐이 있는 반면,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는 " ㅡ 魚 " 라는 감투를 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아귀, 가오리, 갈치 따위가 좋은 예'이다. 그것들은 길거나 짧거나 납작하거나 뭉툭하거나 뾰족하거나 크거나 비늘이 없다. 옛 조상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보그 병신체 이전에 한자 병신체'도 있었다. 솔직히 숭어, 민어, 전어'처럼 밋밋한 어감'보다는 아귀, 가오리, 쏨뱅이 같은 단어가 주는 어감이 입체적이고 개성 있어서 듣는 순간 확 와 닿는다.

비록 그 물고기를 본 적 없다고 해도 어감이 주는 낌새를 보면 대충 모양새가 그려지지 않은가 ? 보그 병신체'로 시작된 패션 과시욕은 분야를 넓혀서 온갖 " ~ 병신체 " 로 확산되었다. 그렇다면 " ○○○ 병신체 " 가 시작된 지점이 왜 하필 " 패션 " 분야 쪽에서 발생했을까 ? 옛부터 하류층과 상류층을 구별하는 손쉬운 방법은 " 패션 " 이었다. 양반 계급은 양반이 입는 옷을 입어야 하고 상놈 계급은 상놈이 입는 옷을 입어야 한다. 굳이 " 내가 양반이오 ! " 라고 외치지 않아도 옷 모양새'로 계급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만 있던 풍속이 아니라 전세계 공통이다. 고원 지대에 살고 있는 페루 사람들은 치요'라는 모자를 통해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모자 생김새와 색깔을 통해 계급은 물론이고 직업과 결혼 유무까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옷차림은 신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기호'였다. 근대화를 거쳐 현대 사회에서 신분 제도'가 사라졌다고 해도 " 패션 " 이 가지고 있는 구별짓기ㅡ욕망'을 흔적 없이 지울 수는 없다. 인간은 패션'을 통해서 끊임없이 계급적 차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유행이요, 명품이다. 그러다 보니 < 보그 > 와 < 병신체 > 가 만나는 것은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 강남 남자가 강남 여자를 만났으니 이상할 것 없다. < 인문병신체 > 도 < 보그병신체 > 와 다를 것 없다. 보그병신체'가 옷으로 상대와 구별짓기'를 시도한다면, 인문병신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나열을 통해 상대와 구별짓기를 시도한다. 지금은 폐간되었지만 한때 전설로 떠돌았던 키노 문체는 인문학적 과잉'이 도달하는 그럴싸한 경지를 보여준다.

" 영화란 미적으로 분절화된 텍스트를 감독 특유의 들뢰즈적 미장센의 미학과 정치학적 사유를 통해 담은... "  뭔 소리인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대충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런데 이런 문투는 어렵지 않게 구사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 영화란 동적 유기체로 통일화한 텍스트를 감독 특유의 마르크스적 사유를 통한 변증법적 논증을 통해 담은.... "  10초 만에 작성한 문장이다. 타자 실력이 뛰어났다면 3초 만에 작성했을 것이다. 이러한 보그병신체와 인문병신체'는 다수와 소통하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소수만을 위한 소통 방식으로 자신을 대중과 분리하려는 과시욕'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요즘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 푸드병신체 > 다. 이제는 잡지에서 " 쿠킹 클래스 가든 아카데미에서 스터디한 슈거 크래프트 머핀을 만들어 보자 ! " 따위 문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달걀 과자를 만들자, 라는 소리다. 개그콘서트 코너 중 하나인 << 서툰 사람들 >> 이라는 코너는 푸드병신체가 만들어 놓은 의사 소통 단절을 다룬다.

손님이 " 탄두리 치킨 " 을 주문했는데 음식점 종업원이 " 단 둘이 치킨 " 으로 잘못 알아듣거나 " 어니얼링 " 달라고 주문했는데 " 어느 언니 찾으시냐고 " 되묻는 식'이다. << 서툰 사람들 >> 은 매 코너'를 한글로 소리나는 대로 적은 서양 요리 이름 가지고 언어 유희 개그'를 펼친다. 이명박 대통령 각하 님의 부인이시고 여사이시며 한때 0부인이었던 김윤옥 씨'가 한식세계화를 천명한 후 " 푸드 문화 " 는 문화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지역 농산물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 로컬 푸드 " 라고 하거나 요리사'란 이름 대신 쉐프'라는 이름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아 푸드병신체'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이제는 고급 음식점에서 " 쉐프 " 에게 " 요리사 " 라고 했다가는 따귀를 맞을지도 모른다.

<< 서툰 사람들 >> 은 큰 웃음을 주지는 않지만 일상 생활 속에 스며든 허영과 과시 문화'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영리한 코너'다. 보그병신체, 인문병신체, 푸드병신체'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 과시욕 " 이다. 이러한 문투를 사용하는 사람은 계급어'를 통해 상대와 구별 짓기'를 시도한다. 말귀를 알아들으면 동료애를 느끼고 말귀를 못 알아듣고 반문하면 서툰 사람'이 된다. 복장 문화'가 계급을 나타내는 쪽으로 진화했듯이 음식 문화'도 계급을 드러낸다. "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교육 수준과 출신 계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  일일 노동자'는 짜장면에 대해 말할 수는 있지만 푸아그라(foie gras)에 대해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테이블 매너'가 상류 계급 사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음식과 계급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푸드병신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으나 짜장면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푸아그라에 대해 말하는 자세는 비난받아야 한다. 그것은 기아 상태에 빠진 아프리카 난민에게 비만은 몸에 좋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니 말이다. " 푸아그라 " 하니 느닷없이 야시엘 푸이그'가 생각난다. 봄이다, 야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토요일 주말 야구 중계 보면서 짜장면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푸아그라 요리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 야구 보면서 짜장면 먹는 풍경으로 끝내는 것을 보면 나는 하층민이다, 시바 ■  

 









 

  1. 부르디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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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3-1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 병신체 ; 1) 3개 정도의 외국어는 해야 한다. 2) 악기 3개 정도는 다뤄야 한다. 3) 스포츠 종목도 3개 정도는 해야 한다. 4) 유클리드 <원론>, 사서삼경, 플라톤의 <국가> ... 등을 읽었다. 5) 상대성 이론, 불확성성의 원리, 불완전성의 정리, 엔트로피 등의 내용을 안다. 6) 1년 독서가 50권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마립간 완전 병신체 ; 4)의 책들 중 원서로 읽은 것이 있어야 한다. 6) 1년 독서가 100권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중 시집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7) 각 책들은 3번씩 독서를 했다. * 1)~6)를 가난함에도 할 수 있다.

(1)의 전제 조건에 모국어를 잘할 것. 한국인은 한국어에)

저는 bourgeois를 꿈꿀 것입니다.^^

마립간 2015-03-11 10:57   좋아요 0 | URL
의복병신체, 음식병신체, 주택병신체, 자동차병신체, 해외경험병신체 ... 이것들은 돈이 너무 크게 작용하잖아요. 하수들.

곰곰생각하는발 2015-03-11 11:15   좋아요 0 | URL
마립간 님, ㅋㅋㅋㅋㅋㅋ 숫자 3에 강박이 있으시군요 ? ㅋㅋㅋㅋㅋ
저는 1개 국어라도 잘하자-주의자`여서 항상 외국어에 약합니다.
누가 저보고 쁘디부르주아`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게 더럽게 기분 나쁘더라고요.
그런데 하층민이 되고나서 괜히 화냈다 싶습니다. 이젠 저도 쁘띠부르주아가 희망입니다.

마립간 2015-03-11 11:38   좋아요 0 | URL
마립간 병신체는 인문학 병신체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는데, 3가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3개씩이 겉치장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죠. 병신체의 강조점이 내용 없는 겉치장에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한 개든 여러 개든, 제대로 한다면 `병신체`의 꼬리표를 떼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상류층이나 하층민이냐는 저의 관심 밖입니다. * 조건이 붙어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2015-03-11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