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딘과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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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딘'은 영원한 " 젊음의 초상 " 이다. 시대마다 선호하는 얼굴이 있기에 20세기 얼굴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전제는 틀리다. 하지만 제임스 딘'은 불멸이다.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면 제임스 딘은 눈이 약간 사시斜視'처럼 보인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좌우가 비대칭이라는 느낌도 든다. 미인( 혹은 미남 )의 기준은 좌우 대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임스 딘은 예외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제임스 딘은 매력있다. 멀리 볼 것 없다. << 모나 리자 >> 그림이 신비로운 이유는 그림 속에 그려진 리사 부인의 얼굴이 엇박자 비대칭이기 때문에 그렇다. 불완전한 존재가 만들어내는 그 불완전성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완벽한 대칭은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독특한 개성과 예술적 아우라를 만들 수는 없다.
비너스는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독특한 개성이 있거나 아우라가 있는 존재는 아니다. 결핍이 매력을 만든다. 어쩌면 비너스야말로 매우 평범한 미인'이다. 엘리어 카잔 감독이 연출한 << 에덴의 동쪽 >> 에서 제임스 딘'은 결핍덩어리 캐릭터'로 나온다. 제임스 딘은 타자들의 지지와 환호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결핍은 오로지 아버지가 " 사랑한다, 아들아 ! " 라고 말할 때에 치유될 수 있는 " 인정 욕구 " 에 해당된다. 그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한국판 홍길동'이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아들과 화해한다.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서사'이면서 흔한 줄거리 흐름'이다. 엘리어 카잔이 터키에서 태어났다는 점 ( 부모는 그리스 사람이다. ) 을 감안하면 이 영화에 흐르는 동양적 가족주의'를 이해할 수 있다.
sbs 오디션 프로그램 << 케이팝스타 >> 를 보다 보면 자꾸 << 에덴의 동쪽 >> 에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는 제임스 딘'이 떠오른다. 이 프로그램을 시즌마다 챙겨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참가자들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심사위원 눈치만 살피는 상황에 실망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무대 위 대기자들은 무대 중앙에서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보다 노래를 듣고 반응하는 심사위원 얼굴을 살피느라 계속 곁눈질을 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무대 위에 서 있는 대기자들이 동료 참가자의 노래는 듣지 않고 심사위원의 심사'만 살피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귀는 열려 있으나 정작 눈으로 심사위원 심사를 꼼꼼하게 확인한다.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심사위원의 과도한 오버 액션 때문이다.
특히 박진영은 얼굴 표정에서 호불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감정 표현을 스스로는 " 아메리칸 스똬일 " 이라고 주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촌스러운 " 뽕끼 " 처럼 보인다. 적어도 심사위원이라면 적당한 포커페이스'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호들갑을 떠는 박진영표 얼굴 표정'이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박진영이 공기 반 소리 반과 함께 자주 하는 소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박진영이 특정 참가자에게 환희에 차서 두 팔 벌리며 호들갑을 떨 때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참가자에게 응원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아무 반응 없이 심각하게 바라보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참가자는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져서 노래를 더욱 못 부를 수가 있다. 박진영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기쁨은 노래가 끝나서 나서 해도 된다. 노래 부르는 중간에 휘파람 불며 만세 날리는 자세는 심사위원이 갖춰야 할 공평한 심사'가 아니다. 그의 몸짓은 이미 심사평이 나오기 전에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점수를 확인하기 전에 이미 점수가 공개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노래 부르고 있는 참가자나 참가자 뒤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자가 심사위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참가자에게 있어서 심사위원은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神 같은 존재'다. 그들이 농담으로 하는 말조차도 참가자들은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이다. 심사위원이 내뱉는 말은 정언명령 定言命令이나 다름없다. << 케이팝스타 >> 는 시즌이 시작되고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를 잃는 이유는 지나친 " 개입 " 에 있다.
정석대로라면 생방송 본선 진출 대회가 예선 대회보다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흥미가 반감된다. 특히 탑10이 결정된 이후로는 더 이상 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그 지점까지 오르게 되면 참가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색깔(개성)은 탈색되고 심사위원이 요구한 때때옷을 입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은 입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처음 보았을 때의 아마츄어가 아니다. 그들은 심사위원이 요구하는 대로 살을 빼고, 발성을 배우고, 화장을 칠하고 무대 위에 오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아마추어도 아니고 프로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가 된다. 케이팝스타가 불쾌해지는 대목이다. 알록달록한 때때옷을 입히고 좋아라 하는 어른을 볼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랄까 ?
제임스 딘이 매력있는 이유는 불완전한 결핍 때문이다. 만약에 이 결핍이 채워진다면 제임스 딘은 그저 그렇고 그런, 잘생긴, 흔한 배우'로 남았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케이팝스타 참가자들에 가장 매력적인 때는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이다. 심사위원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망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