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속의 증거 (프루프)
조셀린 무어하우스 감독, 러셀 크로우 외 출연 / 기가코리아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실크보다 부드러운

 

 

 

 

사람들은 말(대화)보다 글(문장)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어서 문장'을 자유자재로 생산하는 작가'를 동경한다. 일단 믿고 본다. 하지만 김수영이나 권정생 선생 같이 언행일치하는 작가'는 흔치 않다. 술자리에서 지저분하게 노는 놈은 거래처 김사장이나 이 작가나 박 시인'이나 모두 대동소이'하다.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몸'이다. 싸나이로 태어나서 얼라로 죽지 않겠다는 다짐과 꿀리지 않겠다는 정신과 꼴리고 싶다는 정신'이 뒤섞인 주체를 나는 " 다이하드바디 " 라고 부른다. diehard :  끝까지 버티는  와   hardbody : 체격이 아주 건장한 사람      가 결합된 합성어'다.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 막 지은 따순 조어造語이니까 말이다. 박근혜 정권 초기, 정권에 빅엿'을 날린 ㅇㅊㅈ 선생이 대표적 다이하드바디'다.

시도 때도 없이 꼴리는 남근적 인간이 바로 다이하드바디'다. 하는 꼴을 보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 에라이, 시발...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냐 ? " 영화 << 실미도 >> 는 다이하드바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해서 북파 계획에서 제외된 강성진이 울면서 살아서 돌아오라고 말할 때 정재형이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힘주어 외친 " 우린, 죽지 않아 !!!!!!! " 라는 말은 " 우린 다이하드바디'다 !!!!!!!!!! " 와 일맥상통한다. 이 자리를 통해 고백하자면 그동안 < 조낸 > 과 < 시바 > 로 문장을 완성한 내 글'은 내 글'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이하드바디'인 것처럼 고백했지만 사실 나는 다이하드바디'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17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지금은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사람들은 맹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항상 내게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하고는 했다. " 이 세상에서 장님을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단다. 사람이 네 앞에서 하는 말을 믿으면 안된다. 아무리 달콤한 말이라도 말이다. " 나는 그동안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은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당신은 나를 무시할 테니까. 물론 나는 점자 읽기를 배운 적도 없고 타자를 배운 적도 없어서 읽지도 못하고 타이핑할 수도 없다. 이 지점에서 모두 공통된 질문을 던질 것이다. " 그동안 당신이 작성한 페이퍼와 포스트는 뭡니까 ?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내가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한 타이피스트'가 내가 녹음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한 것이다.

 

그녀의 본래 직업은 국회 속기사'다. 그녀와 나는 신뢰'로 뭉친 관계'였다. 나는 그녀의 입을 통해 내 글에 대한 반응을 살필 수 있었고, 이 사실을 추호도 의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ㅡ 오늘 옷을 샀어요. 실크 재질이에요.

ㅡ 내가 앞을 볼 수 없어 유감이군요. 예쁜 옷인가 보네요 ?

ㅡ 한 번...... 만져볼래요 ?

ㅡ  그래도 될까요 ?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안내하듯,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실크로드로 안내했다.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그 촉감은 내가 지금까지 만져보았던 그 어떤 옷보다 부드럽고 온기 있었다.

ㅡ 이건 옷 단추인가 보네요 ?

ㅡ 네, 단추예요. 

ㅡ 딱딱한 단추만 보다가 스테딜러 연필 지우개처럼 말랑말랑하니 독특해요. 이 옷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ㅡ 살 수 없어요. 단 하나뿐인 옷이거든요.

ㅡ 아, 그래요 ?

ㅡ 그래요.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은 실크가 아니라 내 벌거벗은 젖가슴이에요. 당신이 만지는 것은 젖가슴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에요.

나는 화들짝 놀라서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옷을 벗은 채 내 앞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 그그그러니까 그녀는 내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놀린 것이다. " 장님을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지 ! " 분노와 혐오가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고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 사랑 때문에 콩깍지가 씌였으니까.  신뢰 관계는 깨졌다. 이제 더 이상 그녀가 한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 공포의 외인구단 >> 에서 까치가 엄지에게 하듯, 그녀는 내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거짓말도 서슴치 않고 했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내 글'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을까 ? 그녀가 내게 전해준 바에 의하면,  내가 글을 올리면 덧글이 평균 100개 정도 달린다고 한다. 공감 버튼은 300개 정도이며 하루 평균 방문객 수는 10만 명을 넘는다고. 그녀는 일일이 내 팬이 남긴 덧글을 읽어주었다.

" 멋진 페루애 님 ! 당신 글을 읽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살고 있습니다. " " 너무 너무너무너무 재미있어요. 남편과 섹스하는 것보다 차라리 당신 글을 읽는 게 더 짜릿하답니다. 호호. " " 당신은 천재예요. 천재 !!!! " 주로 이런 반응들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게 혼란스럽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속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뛰어난 문장 실력을 감안하면 내 포스트에 덧글이 평균 100개 달리고 공감 버튼이 300개 정도 달릴 수도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어쩌면 약간 과장된 거짓말일 수도 있다. 나는 그녀를 해고하고 다른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 이 글을 내 녹음을 바탕으로 그 아르바이트이 작업한 첫 번째 포스트'다.

이 지점에서 이웃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평소 내 블로그는 일일 방문자 수가 10만 명에 육박하는 인기 블로그가 맞습니까 ? 여러분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싶습니다.







추신


위험한 선택( proof, 1991 ) ㅣ 주인공 마틴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믿는다.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 마틴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창밖 풍경을 들려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맹인을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지. 그는 엄마 몰래 카메라로 창밖 풍경을 찍는다. 그는 말보다 사진을 신뢰한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사진 속 풍경을 세세하게 설명해 달라고 할 생각'이다. 그래야 엄마가 거짓을 말했나 아니면 진실을 말했나를 알 수 있으니까,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세월이 흘러, 마틴은 착한 앤디'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를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신뢰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마틴을 사랑하는 가정부의 계략 때문에 앤디는 신뢰를 잃는다. 그에게 아주 오래 전에 찍은 사진을 건낸다. " 사진 설명 좀 부탁하네 ! " 앤디가 사진 한 장을 보며 읽는다. " 창밖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있어요. 오른쪽에 말이죠. 그리고 사진 왼쪽에는 빨간 우체통이 있네요. 사진이 찍힌 날은 좀 특이하네요. 햇볕이 쨍쨍 한데 비가 오고 있어요. 이런 날을 두고 호랑이 장가간다고 하죠. 시바, 호랑이는 좋겠네. 이런 대낮에 응응응도 하고...... "

이 영화는 러셀 크로우와 휴고 위빙'이 할리우드에서 뜨기 전에 만들어진 호주 영화'다. 숨겨진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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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2-0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투브에 가면 이 영화 full movie 버전이 있습니다. 감상하시길....

비로그인 2015-02-06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러셀크로의 워터 디바이너를 재밌게 봤는데 젊은 러셀 크로가 나오니 너무 반갑네요. 꼭 봐야겠습니다. 워터 디바이너는 개연성 없는 뽕끼 로멘스가 난무하지만 눈물나는 가족애가 찡했습니다...(역시 전 뽕끼스타일). 터키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터키 관광 홍보 영화로도 손색이 없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2-06 19:50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뽕끼를 마이너 뽕끼`라고 하는데 이런 뽕끼`는 가치 있는 뽕끼`입니다. 그러니까 두사부일체처럼 졸라 우기기만 하다가 느닷없이 가족애 들먹이며 눈물 짜니는 메이저 뽕끼`가 아닌, 뭔가 이창동스러운 절절한 가족애`가 마이너 뽕끼` 아닌가 싶습니다.

참... 이 영화 기회되면 꼭 보십시오. 보다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옴...

2015-02-07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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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7 14: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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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7 15: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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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7 17: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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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7 17: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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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7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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