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다는 행위

 

 


1. 프리허그는 개나 줘 : 링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연출한 영화 << 링 / 1999년 >> 을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나온다. 원혼인 사다코가 티븨 모니터를 뚫고 나오는 장면이다. 2차원(모니터)에서 3차원(남자의 집)으로 진입한다는 점에서 이 행위는 월경'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모두 " 으악새 " 가 된다. 농담 삼아 하는 말이지만 이 처절한 비명은 " 월경(越境) 후 증후 " 다. 예상 가능한 장면을 추론하자면 남자가 무서워서 뒷걸음질하다가 뒤에서 " 프리허깅 " 하는 귀신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일 것이다. 여기에 배경 음악으로 오리온 초코파이 < 정 > 시리즈 광고 음악이 흐르면 아, 금상첨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이제 뒤에서 " 프리허그 " 하는 장면은 공포 영화 장르에서 진부한 클리셰가 되었다. 16년 동안 일본 영화판에서 공포영화를 만드느라 산전수전ㅡ공중전을 치른 달인 나카다 히데오 선생'은 이 예측 가능한 설정 대신 기발한 아이디어로 정면 돌파를 한다. 사다코는 뒤에서 껴안는 달달한 포퍼먼스 대신 티븨 모니터에서 기어나온다. 시즈키 코지의 원작 소설에는 없는 설정'이다. 그는 관객이 익숙한 서사에는 관대하지만 익숙한 클리셰'에는 지루해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감독이었다. 이 장면이 관객에게 주는 충격은 감독이 생각했던 것보다 상상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비명 소리는 울림통 좋은 록큰롤 베이비'가 악을 쓰며 내지르는 샤우팅보다 길었다.

 

그렇다면 관객은 이 장면에서 왜 그토록 즐거운 공포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 " 스크린 " 은 영화와 관객 사이에 놓인 방화벽 기능을 한다. 스크린'이라는 영화 장치는 영화 속 괴물은 절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 관객이 돈을 지불하면서 공포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는 이유는 " 스크린 " 이라는 안전 장치'가 작동하기에 가능하다. 잔인무도한 살인마'가 아무리 지랄을 한다고 해도 스크린이라는 경계를 뚫고 영화관 안으로 난입할 수는 없다. " 허구 " 와 " 현실 " 사이에는 스크린이 버티고 있다. 영화 << 링 >> 은 바로 그 믿음을 배신한다. 관객은 영화 속 티븨 모니터가 영화관 스크린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영화관은 남자의 방으로, 극장 스크린은 티븨 모니터로, 관객은 남자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사다코는 이 선을 넘는다. 프리허그 따위는 개나 줘 !  선을 넘었다는 것은 안전 거리'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이라면 말이다.

 



2. 초코파이 외교 : 공동경비구역

 

중요한 것'은 선/line'을 넘지 않는 일이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 공동경비구역 >> 에서 비극이 시작되는 지점은 그림자가 경계선을 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 이보라우, 동무 ! 자네, 그림자 넘어왔시오. ” 여기서 선을 넘었다는 표현’은 타자의 땅에 발을 담갔다는 뜻이다. 사이좋을 때는 이 “ 영역 침범 ” 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지만 서로 틀어지는 순간 곤경에 빠지게 된다. 하루아침에 친구는 적이 되고, 방문은 침범이 되며, 협력은 모략‘이 된다. 밤마다 초코파이로 와이파이하며 하이파이브'하던 두 집단은 결국 적이 된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총성이 울린다. 탕, 탕, 탕 !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서 범죄자’가 된다.

 

이렇듯 타자의 땅‘에 한쪽 발만 담근다는 것은 신나는 경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모험이기도 하다. 월경’하는 순간 그 지역은 잠재적 위험 구역‘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을 긋고 넘어오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 금지 > 이다. 금지‘라는 말을 구어체로 표현하자면 “ 이보라우, 동무 ! 자네 그림자’가 주책없이 선을 넘어왔시요 ! ” 다. “ come < over > ” 다. << 공동경비구역 >> 에서 주인공들은 일부러 선명하게 바닥에 그어진 판문점 경계선‘을 넘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현실에서 선‘은 아스팔트 도로 위이 새겨진 형광 도료’처럼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선은 공기처럼 투명하다.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모르고 넘기도 한다. 자신이 선을 넘었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늦은 후회다. 이렇듯 현대인은 알게 모르게 선을 어기며, 혹은 선을 밟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때문에 직장 동료들에게 욕을 먹고, 실수를 하고, 도박에 빠지고, 마약에 중독되며, 불륜에 빠지고, 살인자‘가 되기도 한다. 선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면 피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바로 악수'라는 행동이다. 악수는 일종의 암묵적 동의 아래 이루어진 사회적 약속‘이다. 다 큰 어른들이 만날 때마다 바닥에 (분필로) 선’을 긋고는 넘어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결례’다.

 

그래서 발명한 것이 바로 악수'다. 악수란 서로의 손을 잡은 그 위치가 경계선‘이라고 공표하는 사회적 합의'다. 손과 손이 만나는 지점 아래에 선을 긋는 것이다. ( 물론 사람 눈에는 보이지는 않는다. ) 사회적 관계‘는 대부분 악수하는 관계’이다. 여기서 친밀한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혼동하면 안 된다. 악수라는 사회적 행위가 가지고 있는 숨은 속뜻‘은 악수할 때 생기는 공간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터이니 “ 그놈의 꼬리’를 바짝 세우지는 마쇼 ! ” 라는 뜻이다. 평화 선언‘이다. 그런데 이 선을 넘으면 싸움이 시작된다. 우리가 흔히 애비 에미 따지며 싸울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자기 얼굴을 상대방 얼굴에 바짝 들이미는 제스츄어'다. 어쩔 ~

 

이 행위'는 곧 자신은 평화로운 합의점보다는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비언어 몸짓'이다. < 곁 > 을 타자에게 내준다는 것은 불쾌한 경험이다. 당신 상사’가 뒤에서 바짝 다가와서 귀밑머리에 콧바람‘을 불거나, 업무를 가르쳐준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밀착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남용해서 타인의 영토를 강제로 침범하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과 친구 그리고 애인에게만 허용했던 < 곁 > 의 공간‘을 친밀하지도 않은 직장 상사’가 침범하는 것‘은 매우 불쾌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이 영역 침범’을 위험으로 간주한다. 빨간 불이 켜지면서 방어 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밀착이 반드시 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군중이 광장에 모일 때 밀착은 오히려 강한 결속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중일 때에만 가능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선‘을 넘어 타인의 땅/육체’에 강제로 침범하는 경우가 바로 < 성폭행 / 성추행 > 이다. 그것은 come'를 넘어선 come “ over ”다. ( come이 A라는 장소에 도착하는 것‘이라면, come over'는 A 라는 장소’를 지나치는 행위다. ) 그러니깐 성폭행이란 몸을 강제로 만지는 행위를 넘어서 몸을 뚫는 행위다. 페니스‘라는 날카로운 무기로 말이다. 남근은 뼈 없이, 피와 살로 만들어진 칼이다.

 

반면 노처녀/노총각‘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로맨스/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대부분 넘어야 할 선’을 넘지 않고 있는 남녀를 다룬다. 그들은 결혼 적령기‘에 이르거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타인의 영역’을 넘지 못한 사람들‘이다. << 공동경비구역 >> 이나 << 도가니 >> 같은 영화가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면, << 시라노, 연애 공작단 >> 이나 << 건축학개론 >> 같은 영화는 왜 선’을 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영화다. 왜냐하면 연애'란 결국 선을 넘었기에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살짝 넘은 사람들이기에 국가보안법 위반이며, 월경이며, 모험가들이다.

 

지속적인 기간을 두고 섹스’를 하는 짝패‘들이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바로 < 외도 > 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만나면 티격태격하는 두 남녀가 과연 섹스에 성공할 수 있을까를 유쾌하게 바라보는 영역이라면, 순정 멜로 드라마는 두 남녀’가 서로 동의 아래 이루어진 섹스‘를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를 지켜보는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객이 달달한 멜로드라마‘를 감상하면서 기대하는 것은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순애보적이며 지속적인 섹스’다. 하지만 멜로는 순애보적인 사랑 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불륜‘은 멜로 장르의 또 다른 변형’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 공동경비구역 >> 은 브라더후드를 넘어 퀴어 영화'로도 읽을 수 있다.

 

로맨스 장르가 선을 넘어서 사랑'에 성공하는 서사라면, ( 불륜을 다룬 ) 멜로 장르'는 선을 넘어 부부가 된 주인공'이 다시금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을 때 발생하게 되는 반복 - 서사'이다. 영화 공동 경비 구역'은 바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월경해서 발생하게 되는 게이들의 격정적 파멸'을 다룬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을 그으면 그 선을 넘고 싶어 한다. 어쩌면 이 월경‘에 대한 욕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억압해야 하는 이유는 금기의 선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선’이 생기고, 또 그 선을 넘으면 보다 더 무시무시한 선‘이 당신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선’은 밟히거나 지워지면 다시 생기고, 선을 뛰어넘으면 또 다른 선‘이 생긴다. 그것은 선이라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치열한 자기복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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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1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차원 선을 넘어가면 3차원이 아니라 바로 4차원 그물세계 같아요. 그러니 패닉상태. 아이들 움직임 보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재밌어 하는데 그 생동하는 선넘기들ㅎ! 어른들 선넘기는 머리계산이 보여서 실패!가 다반사. 영화나 게임같은 죽음의 위협이 없는 선넘기가 선호되는 이유가 있는 셈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1-10 20:3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맞습니다. 어른들 선 넘기는 꼼수가 뻔히 보이죠. 반면 아이들은 럭비공 같아서 정말 어디로 방향을 선회할 지 예측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가르캉뒤아`는 바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지 재미있을 것 같다능...

곰곰생각하는발 2015-01-10 20:36   좋아요 0 | URL
제가 군에 있을 때 사격 조교였는데 아갈마 님도 아시다시피 왜 탄피 회수하잖아요. 하나라도 모자라면 날이 샐 때까지 찾아야 하는....

대부분 탄피가 떨어지는 동선을 예측 가능해서 그 주위를 찾는데 가끔은 전혀 있을 수 없는 곳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게 왜 여기에 떨어져 있을까 . 아이들은 그런 존재 같습니다.

AgalmA 2015-01-10 20:45   좋아요 0 | URL
탄피 얘기 들으니 보르헤스 <비밀의 기적> 단편이 갑자기 확 지나가네요. 그런 소재는 소설로 좀 쓰세요. 여기 좌판 이야기로 소모되기엔 좀 아깝네요. 곰곰 생각하는 발님이야 늘 소재가 넘치시긴 합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