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은 공포를 판 사람이었다. 샤워하는 여자를 칼로 몇 번 찔렀더니 떼돈을 벌었다. 히치콕은 공포를 팔았고 관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라는 감정을 샀다. 그렇다고 해서 히치콕이 공포로 떼돈을 번 첫 번째 " 공포의 제왕 " 은 아니다. 사실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 파생 상품은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중세 시대 면죄부 판매다. 면죄부를 사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공갈과 협박에 속아서 중세 사람들은 돈을 주고 면죄부를 샀다. 여기서 면죄부는 공포라는 감정을 돈벌이로 활용한 감정 파생 상품이다. 이처럼 원초적 감정인 두려움'을 자극시키면 시킬수록 감정 파생 상품'은 불티나게 팔린다. 이와 같이 공포를 돈벌이 사업'으로 이용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뉴스 산업도 대표적 공포 파생 상품을 이용한 돈벌이 사업이다.뉴스는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공포를 제공한다. 사무용 의자 치명적일 수 있다, 독신 여성을 노린 성 범죄 기승, 암 유발 물질 대량 배출, 남한에 북한 고정 간첩 3만 명 암약, 이명박 건강 양호 100세 희망, 우유 과다 섭취하면 오히려 영향 불균형이 올 수 있다 따위가 공포를 유발하는 뉴스다. 대중은 항상 행복을 추구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행복한 뉴스 기사'보다는 두려움을 제공하는 뉴스 기사'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뉴스는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며, 괴로워하는 대중을 원한다. 그래야 뉴스 시청률, 신문 구독률, 포털 뉴스 클릭 수'가 오를 테니까. 낚시 기사 고발 사이트인 " 충격 고로케 " 는 사람들이 충격, 경악, 공포, 으악 ! 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언론 종사자들은 고상한 척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들은 대중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공포를 파는 장사꾼에 불과하다.
뉴스가 공포를 대중에게 유포하면 불안한 대중은 그와 관련된 공포 파생 상품을 구입하게 되고 기업은 티븨 광고로 은혜에 보답한다. 호신용품, 호신술 학원, 방범 시스템, 타워팰리스, 군수 산업 등은 모두 공산품(工産品)이면서 동시에 공산품 ( 恐産品 : 공포 파생 상품 ) 인 것이다. 이처럼 장사꾼들은 대중의 두려움'을 자극시키는데 모든 것을 집중한다. 의료 건강 관련 상품'도 대표적 공포 파생 상품이다. 흰 가운을 입은 장사꾼들은 항상 질병을 과장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에이즈 공포와 사스 공포가 대표적인 경우다. 뉴스는 에이즈나 사스 따위를 중세 시대 페스트'와 동급으로 다루었지만 사스로 인해 죽은 사망자보다 감기로 인해 죽은 사망자가 더 많다는 사실은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다.
왜냐하면 그 사실이 알려지면 공포는 제거되고 시시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 후까시 " 가 제거된 뉴스는 사정 후 쪼그라든 뭣 같은, 거품 빠진 미지근한 맥주'와 다를 것 없다. 그들은 방송에 나와 사망률이 극히 낮은 사소한 질병도 곧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 .....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질병입니다 ! " 이 말에 소비자는 평소 별것 아닌 것이 무시무시한 질병이었다는 사실에 충격, 경악, 공포, 으악 ! 를 느낀 채 감기만 걸려도 병원을 찾아 약을 먹는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내뱉는 말투는 엉터리다. 모든 질병은 증상이 심하면 죽을 수 있다. 감기도 증세가 심하면 죽는다. 어떤 사람은 너무 심하게 웃다가 호흡 곤란으로 죽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 웃음은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현상입니다 ! " 라고 심각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웃다가 죽은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소한 질병을 과장해서 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래야 더 많은 의료 건강 상품을 팔 수 있으니까 ! 이런 식으로 일상을 들여다보면 공갈과 협박으로 만들어진 공포 파생 상품 종류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에 충격, 경악, 공포, 으악 ! 으로 다가온다. 의아하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교육 상품도 대표적인 공포 파생 상품이다. 교육 마피아들은 학벌 사회를 강조해서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교육 상품을 판다. " 학부모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고졸은 21세기 서자'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대학 졸업장을 따야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 이것은 교육 상담을 빙자한 공갈 협박이다. 그래서 대중은 돈을 주고 대학 졸업장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강제 구매할 수밖에 없다.
영화 << 여고괴담 >> 에서 공포의 주체는 귀신이 아니라 학교로 상징되는 교육 그 자체'다. 박기형 감독은 학교 건물을 항상 로우 앵글 아니면 부감으로 촬영하여 건물과 장소 자체가 공포의 주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학교는 이제 월하의 공동묘지이거나 창백한 정신병동이 되었다. 학교는 규율과 통제를 위해서 폭력과 억압이 동원되는 장소로 교실은 대학 입시 공장으로 묘사된다. 영화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한다. 학교에는 스승은 없고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음흉한 짐승만 있다. 늙은 여우와 미친 개가 교실에서 선생 흉내를 낸다. 신기한 일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전국 방방곡곡, 어느 학교에서나 미친 개라는 이름을 가진 쓰레기는 하나쯤 존재하니 말이다. 미친 개'는 죽지도 않고 백 년 동안 대한민국 교실을 떠도니 그야말로 귀신이다.
미셸 푸코가 < 감시와 처벌 > 에서 지적했듯이 시험 제도는 자격을 부여하고 분류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만든 감시 체계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은 1류, 2류, 3류로 등급이 매겨지고 이 낙인은 고스란히 사회 계급으로 이어진다. 학교는 과일 등급 감별기'다. 쓸만한 놈과 쓸모없는 놈을 분류한다. 기회의 평등을 내걸고 탄생한 근대 교육 제도는 역설적이게도 기회의 불평등을 낳는 새로운 21세기 세습 제도가 되었다. 1990년대 초에 쏟아진 학원 영화들은 대부분 입시 지옥에 시달리던 당대의 시대상을 담았는데, 하이틴 학원 영화인 <<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 1989년 작 >> 에서 성적 때문에 자살한 학생을 연기한 이미연이 << 여고 괴담 / 1998년 작 >> 에서는 교사가 되어 돌아온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까 이미연은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지 9년 만에 다시 학원 영화로 복귀한 셈이다.
이 기간은 9년 동안 귀신이 되어 학교를 벗어나지 못한 재이( 최강희 분 )와 겹치는 대목이다. 희망 없는 시뮬라크라, 악순환은 반복된다. 교사가 되어 다시 찾은 교실은 여전히 입시 지옥이다. 이미연은 그곳에서 자신이 겪었던 절망과 데쟈뷰한다. << 여고괴담 >> 은 << 행복은 성적 순... >> 의 속편이다. 희망 없는 절망의 반복이야말로 가장 큰 공포가 아닐까 ? 그리고 다시, 2014년 올해에도 수능이 끝나자 성적을 비관한 수험생이 자살을 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비극은 해마다 재현되었지만 책임을 지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이제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사건은 평범한 사고가 되었고 뉴스는이미 단물을 다 빼먹은 듯한 태도로 단신으로나마 소식을 전할 뿐이다. 다시 묻는다. 왜 입시 지옥'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 답은 간단하다.
정치 권력과 학원 권력이 흘레붙어 탄생한 교육 마피아'에게 입시 지옥'이라는 환경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이다. 굳이 거위의 배를 쨀 필요가 있을까 ? 학교가 피비린내 나는 살벌한 공간이 될수록 대중은 겁을 먹는다. 경쟁에서 밀리면 벼랑 끝이라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학부모는 지갑을 열고 학생은 공부의 신이 된다. 교육 마피아 입장에서 보면 공포는 즐거운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대중의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교육 상품은 더욱 거대한 영역이 되니깐 말이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은 다시 정치권 로비로 사용된다. 그것은 투자'다. 교육 사상가 이반 일리히는 << 학교 없는 사회 >> 에서 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격한 주장이기는 하나 한국 교육 현장을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교육 제도는 기회의 평등을 낳기보다는 오히려 기회의 불평등을 낳았다. 목 매달아야 할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교육 마피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