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5부작 세트 - 전5권 리플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어수선 41호

 


비쌀수록 근사하다


 

 

이것들 모두는 오늘날 육체가 구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ㅡ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中

 

 

 


 

오래 전에 시계 하나 장만하려고 인터넷 쇼핑을 한 적이 있었다. 스무살 때 근사한 스와치 시계'를 가져본 기억이 나서 스와치 시계'를 사려고 인터넷 쇼핑을 했다. 예상은 10만 원대'였으나 비쌀수록 시계'가 근사한 거라. 내 생활 수준을 고려해서 마음을 정한 시계는 30만 원짜리 시계였다. 아, 멋진 시계였다. 마지막으로 주소 정보 입력을 하고 결재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망설여졌다. 같은 값이라면 더 좋은 시계'를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브랜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같은 가격 대비 비교 평가를 한 결과 모 제품의 시계가 더 근사했다. 그래서 그 시계 카달로그를 죽 훑다가 그만 마음에 쏙 드는 시계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설상가상 가격은 더 저렴한 것이 아닌가 !  120.000원'이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숫자 0'이 하나 더 붙어서 백이십만 원'이나 되었다. 내 형편에 백 만원이 넘는 시계를 산다는 것은 사치'였다. 가지고 싶다는 욕망과 가질 수 없는 형편에 대한 실망이 교차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마음을 비우고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스와치 시계'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사이 스와치 시계는 도무지 못 볼 정도로 후진 시계가 되어 있었다. 백만 원이 넘는 시계를 보다가  30만 원짜리 플라스틱 스와치 시계를 보니 마치 인형뽑기 기계 속 장난감 상품처럼 꾀죄죄하게 보였다. 일단 시계 구입 계획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다시 시계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백만 원대 시계'를 구경하다가 점점 명품 시계 쪽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마음에 쏙 드는 시계를 보게 되었다. 가격대가 700만 원'을 호가했다.


악어 가죽으로 된 시계줄'은 감동이었다.  시계 장인이 정성스레 한땀 한땀 수놓은 박음질 또한 예술이었다. 숫자 12 아래 다이아몬드 하나가 박힌 제품이었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 아, 아름답구나 ! "  며칠 전에 눈여겨본 백만 원'짜리 시계를 다시 보니 그것 또한 뽑기인형 기계 속 시계처럼 보였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7000만 원대 명품 시계를 보았다. 100% 테엽 장치 수공예 시계였다. 숫자 대신 12개의 다이아몬드가 반짝거렸다. 시곗줄'은 금속 재질이었는데 그 품위가 남달랐다. 정말 아름다웠다. 한 달 전에 본 시계가 생각났다. 700만 원짜리 시계'를 보고 더 이상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시계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내 판단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무슨 악어 가죽 시곗줄이냐.

 

그런데 이러한 선언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파텍 필립에서 나온 30억 짜리 시계를 본 것이다. 시곗줄이 모두 다이아몬드로 박혀 있는 명품 시계였다. 시계 장인'이 일 년에 걸쳐 만든다고 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눈부셔서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시계를 프랑스 배우에 빗대서 말하자면 일주일 전에 본 7000만 원짜리 시계가 친근한 제라르 드빠르디유'라면, 파텍 필립 시계는 눈부신 알랑 드롱'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 장바구니에 담겨져 있던 최초의 스와치 시계'를 클릭해 보았다. 30억짜리 파텍 필립 시계를 보다가 30만 원짜리 시계'를 보니......   결국 나는 시계를 장만하겠다는 결심을 포기하게 되었다. 시계 구경을 통해 얻은 결론은 시계는 비쌀수록 근사하다는 점이었다. 이 말은 곧 비싼 시계일수록 결핍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라캉을 흉내 내자면 파텍 필립 시계는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다다를 수 없는 욕망 오브제인 소문자 a 이다.


그것이 바로 자본 욕망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는 소비자의 결핍'에 의해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자본가는 소비자를 王이라며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자본가는 당신을 경멸하고 조롱해서 당신이 " 쩨쩨한 결핍 덩어리 " 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상품 가치가 탁월한 육체를 가진 전지현이 자세를 낮춰 형편없는 춤 솜씨와 노래 실력으로 당신에게 " 잘생겼다, 잘생겼다, 잘생겼다. " 라고 속삭이지만  광고 수용자는 전지현의 위로에서 결핍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 위로 > 라기보다는 < 조롱 > 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전지현이라는 육체는 물신 숭배의 황홀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신이나 나나 똑같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 누가 있을까 ? 그녀는 항상 당신보다 타,타타탁월하다. 이처럼 자본가는 소비자에게 " 잘생겼다 ! " 라고 말하지만 숨은 속뜻은 " 못생겼다 ! " 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결핍이 발생한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는 과정이다.


르네 클레망 감독이 만든 1960년 작품 << 태양은 가득히 >> 에서도 명품 시계가 등장한다. 백만장자 상속자인 필립 그린리프는 아버지가 선물한 아름다운 명품 시계를 내걸고 톰 리플리( 알랭 드롱 ) 와 장난 삼아 카드 내기를 한다. 그는 톰이 이 시계를 탐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시계가 살해 동기의 전부는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이 상황에서 톰은 필립을 칼로 찔러 죽인다. 가난한 톰에게 필립(의) 시계는 욕망 오브제 소문자 a 이다. 하층민인 톰에게 필립(의) 시계는 가질 수 없는 시계에 속한다. 내가 30억짜리 파텍 필립 시계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톰 리플리도  필립(의) 시계를 가질 수는 없다. 기껏해야 30만 원짜리 스와치 시계를 찰 수 있을 뿐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간단하다. 강제로 빼앗는 것. 톰 리플리는 필립 그린리프를 살해한 후 백장만자 흉내를 낸다. 


그가 찬 시계, 그가 손가락에 낀 반지, 그가 신은 신발.  그리고 톰 리플리는 필립 그린리프'라는 이름의 육체를 입는다.  그는 신체 강탈자'이다. 하층 계급에 속하는 톰 리플리에게 상류 계급에 속하는 백만장자 상속자 필립 그린리프라는 육체는 구원의 대상이었다. 이 말은 곧 물신 物神 으로 육체를 취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은 퍼트리사 하이스미스의 " 리플리 연작 시리즈 " 에서 비롯된 사회 심리학 용어'다. 초라한 현실을 부정하고 화려한 허구를 꿈꾸다가 결국에는 현실과 허구를 혼동하게 되는 병리 현상을 뜻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결핍)을 인정하고 욕망을 철회하게 되는데 리플리는 필립을 제거한 후 필립을 차지한다. 그 스스로 필립이 되는 것이다.


원작 소설은 영화와는 달리 톰 리플리를 양성애자로 묘사한다. 그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시계나 반지'라기보다는 필립의 육체였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리플리 연작 소설을 통해 자본주의의 정신병리학적 속성을 낱낱이 파헤친다. 톰 리플리는 자본주의적 인간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다. 흔히 사람들은 꿈은 클수록 좋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위험한 말이다. 꿈은 작을수록 좋다. 꿈이란 본질적으로 현실 도피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꿈이란 결국 결핍에 가까운 욕망일 뿐이다. 꿈을 크게 갖는다는 것은 결핍의 부피를 크게 키운다는 말. 누구나 다 파텍 필립 시계를 원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 파텍 필립 시계를 소유할 수는 없다. 가질 수 없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다. 시계는 비쌀수록 근사하다. 욕망도 비쌀수록 강렬하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강령이다.


자본주의는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당신에게 이메일로 시계 카탈로그를 전송한다.  " 고객님, 명품 시계 카탈로그'를 보내드립니다. 남성 패션의 완성은 시계입니다. 오늘 단 하루 ! 이 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 어떻게 할 것인가 ? 선택은 언제나 당신 몫이다.


 

 

 

 

 


 

 

 

 

ㅡ 어수선 통신 시리즈는 네이버 블로그 http://myperu.blog.me/220184679841 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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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11-1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 책은 나오자마자 50%네요.
와~ 살 떨려! 이걸 사야되나 말아야 하나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과 내일 단 이틀!
마지막 날이 와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곰발님 때문에...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4-11-19 14:05   좋아요 0 | URL
안 사셔도 됩니다. 1편만 읽어도 됩니다. 굳이 5권짜리 묶음을 살 필요는 없어요.

stella.K 2014-11-19 14:2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뭐...^^

곰곰생각하는발 2014-11-19 14:56   좋아요 0 | URL
1권이 가장 좋고 나머지는 다 비슷비슷합니다.

리플리가 종잣돈으로 어떻게 부를 획득하느냐가 주요 내용임 ( 전 4권가지 있습니다마... )

1권만 읽어도 됨..
오히려 1권에 감동받았다고 나머지 너무 기대하다가는 아이고 의미없다...ㅎㅎ
구매하면야 좋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벤야맨 아케이드 함 구매하시는 건 어떠신지요.
요거 아주 걸작입니다. ( 읽ㄱ고 있는 중입니다만... )

stella.K 2014-11-19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야맨 아케이드 ?
검색해 봤는데 안 나오던데요? 어떤 책인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1-19 15:41   좋아요 0 | URL
아케이드 프로젝트, 벤야민 회심의 걸작인데.. 아, 요거 개인적으로 참좋더라고요. 백과 사전처럼 야금야금 읽으면 좋을 겝니다.

stella.K 2014-11-19 15:58   좋아요 0 | URL
ㅎㅎ방금 검색하고 왔구만요.
근데 곰발님 저는 그런 책 못 읽습니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철학이라면 제가 좀 경끼를 하는 편이라...쿨럭~
글치 않아도, 삽하나님 덕분에 아주 마일드한 철학책 한 권을
읽고 있는데 교양이 부족하여 좌절하는 중이어요.
곰발님은 역시 대단하군요.
그러니까 그만한 문장이 나오는 거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11-19 16:01   좋아요 0 | URL
그럼 제가 읽고 요약 정리해서 글을 올리죠. 이거 다 읽으려면 몇 달 걸립니다.
페이지 수만 2000페이지가 넘으니....

아마, 이 책은 제가 평생 읽은 걸작 10 안에 들 것 같습니다...ㅎㅎㅎㅎㅎ

stella.K 2014-11-1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아~! 이런 영광이...!ㅎ
그게 낫겠어요. 기대할게요.
근데 걸작 10위 안에 든다니 전 좀 안타깝네요.
글치 않아도 사람들 이 책에 대한 반응이 뜨겁던데...ㅠ


곰곰생각하는발 2014-11-19 16:36   좋아요 0 | URL
벤야민은 인류를위해 희생을 하신 겁니다. 벤야민 글은 별로없어요.
그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을 뽑아놓은 것에 짧은 코멘트를 붙인 형식인데
정말 그가 아니면 이런 방대한 작업을 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읽는 내내 벤야민에게 고맙다는 생각밖에는 안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