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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 - [초특가판]
진가신 감독, 여명 외 출연 / 리스비젼 엔터테인먼트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어수선 34호
가장 가까이에서 본 당신
月亮代表我的心 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오
- 영화 ' 첨밀밀 ' 삽입곡 中
http://youtu.be/Db1LEQiy6qs : 영화 전편 감상은 이곳에서
전에 다니던 직장은 SK 텔레콤'이었다.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3년 계약직이었으니까. 나는 이곳에서 우주 항공 업무를 담당했다. 무인 위성은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기 때문에 SK 텔레콤은 유인 위성을 달나라에 띄웠고, 나는 유인 인공 위성에서 잡다한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우주 항공 기술은 곧 " gram " 과의 싸움이었다. 무게는 곧 돈이었다. 그렇기에 우주 항공 기술은 인공 위성 무게를 최대한 줄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나 또한 인공 위성 탑승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해서 몸무게를 15kg 감량해야 했다. 무게가 곧 돈이다 보니 유인 위성에 탑승할 승무원은 단 한 명'이 전부였다. 우주 업무는 곧 고독을 의미했다. 캄캄한 우주 공간 속에 홀로 3년을 보내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GPS(위성 항법 장치)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당신에게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GPS라는 단어는 모두 익숙할 것이다.
일상적인 업무를 진행하던 중 본사로부터 특별 지시가 내려졌다. 특정 인물을 집중 감시하고 자료를 모아 통보하라는 명령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개인 정보를 국가정보원으로 보내기 위한 지령인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 모든 일은 불법이었다. 내가 감시해야 될 대상은 한국에 입국한 중국 여성이었다. 아마도 그녀를 간첩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개인의 사생활 감시가 가능한 이유는 기술이 위험할 정도로 발전했다는 데 있다. 위성사진은 약 1m의 작은 물체도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방에 앉아서 남의 집 동태를 살필 수 있다. 처음에는 본사에서 내린 지령에 따라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일상은 평범했다. 그녀가 웃으면 나도 웃고, 그녀가 울면 나도 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평범함은 격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녀를 감시하다가 그만.......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사소한 습관, 둥근 어깨, 부드러운 손짓, 바람에 흔들리는 귀밑머리. 윤리적 딜레마와 함께 사랑이 찾아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 오랜 고민 끝에 회사 내에서 가장 믿을 만한 동료에게 내 메시지를 그녀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동료는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내가 보낸 메시지를 그녀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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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 이 메일은 달나라에서 전송된 메시지'입니다. 장난 편지가 아니란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저는 SK텔레콤 인공 위성에 탑승한 우주인입니다. 컴퓨터가 놓은 방 창문에서 보면 11시 방향에 떠 있는 별빛이 바로 내가 일하는 일터입니다. 아아, 놀라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별이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인공위성 불빛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7월 7일 새벽 1시 정각에 11시 방향에 위치한 별을 자세히 보십시오. 제가 위성 전원을 껐다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켰다 3번 반복하겠습니다. 그리하면 당신은 캄캄한 밤하늘에 뜬 별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기이한 일을 목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지금 당신은 국정원으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촬영해서 본사로 전송하는 업무를 배당받았습니다. 물론 불법입니다. 이 모든 것은 불법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에 대한 자료는 모두 폐기처분했으니까요. 저는 불복종을 선택했습니다. 이곳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게 되면 복잡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당신을 돕기로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이곳에서 가장 힘든 업무는 고독과의 싸움입니다. 보이는 것은 오직 캄캄한 우주밖에 없으니까요. 누구와 대화를 할 수도 없습니다. 이 공간 안에는 나밖에 없습니다. 대화를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메시지는 통화가 아닌 문자 전송으로 이루어지니까 말이죠. 이 정지 궤도 위성에 오르기 전에 본사에서 1kg 미만으로 개인 소지품을 소지할 수 있다고 해서 영화 시디 몇 개 가지고 갔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영화 << 첨밀밀 >> 입니다. 보고 보고 또 보아서 이제는 100번도 넘게 본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장만옥이 연기한 대륙인은 당신 고향과 같더군요. ●●● 님도 중국 광주 출신이시죠 ? 장만옥도 광주 출신입니다.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인연이라면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만나게 되고, 인연이 없으면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우리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 건투를 빕니다.
- 2008. 6. 26 별에서 온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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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녀는 놀이터 공원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소리쳤다. 그 뜻을 알 수는 없었으나 알 것도 같았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3년 우주 업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자 내게 날아온 것은 해고 통지서와 법원 출두 명령서'였다. 나는 국가 안보 누설 혐의로 6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내 사건을 담당한 민변 변호사에 따르면 다행히도 그녀는 국정원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덧붙였다.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는 소식도 함께 ! 아, 먼곳에 있는 당신.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구나. 나는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했으나 앞날이 막막했다.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 ? 어느 날, 우연히 동대문 황학동 벼룩 시장 거리 장터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등려군 앨범이 보였다. 영화 첨밀밀에서 두 사람을 이어주던 곡 " 월량대표아적심 " 을 부른 가수가 바로 등려군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멈추고 그 앨범을 집으려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먼저 그 앨범을 낚아챘다. 내가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본 순간...... 나는 심장이 멎었다. 그녀였다. 그녀도 나를 흘깃 보았으나 이내 눈길을 돌렸다. 그녀가 나를 알 리는 없다. 나는 그저 달나라 먼 곳에 있던 사내였으니까. 그녀가 앨범을 살피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 ..... 거기, 당신 ? " 나는 벅찬 마음을 추스리고 대답 대신 웃어보였다. 아주 오랜 침묵. 내가 말했다. " 항상 당신을 보아왔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군요. " 그녀 또한 대답 대신 웃어보였다.
아주 오랜, 침묵.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 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었어요.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