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이에서 본 당신
박근혜입니까, 첫눈입니까 :
국정원이 당신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첫눈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를 듣고 나서 바로 창문을 열었다. 첫눈을 반기지 않는 이, 뉘 있을까만은 그날은 반갑지 않은 눈이었다. 제법 많은 눈이 내렸고 눈은 내리자마자 녹았다. 칼바람은 불고 진눈깨비는 내리고 땅바닥은 흥건히 젖었다. 질퍽질퍽한 바닥을 보자 걱정이 앞섰다. 새삼, 10년 전 일이 떠올랐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내 우려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였다. 시국 집회 연설자는 단상에 올라 박근혜 처벌을 외쳤지만, 나는 개인적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첫 번째 편지이자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자취를 감춘 사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니 정치적 성향으로 보아 어쩌면 그 또한 5차 민중 집회에 참석했으리라. 주위를 둘러보다 이내 피식 웃었다.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10년 전 그가 나에게 말했다. 첫눈이 내리면 우리 광화문 광장에서 만나요. 그가 보고 싶었다. 차가운 눈 대신 뜨거운 눈물이 내 뺨을 스쳐 지나갔다.
" 안녕하십니까 ? 이 메일은 달나라에서 전송된 메시지'입니다. 장난 편지가 아니란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저는 SK텔레콤 인공 위성에 탑승한 우주인입니다. 컴퓨터가 놓은 방 창문에서 보면 11시 방향에 떠 있는 별빛이 바로 내가 일하는 일터입니다. 아아, 놀라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별이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인공위성 불빛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7월 7일 새벽 1시 정각에 11시 방향에 위치한 별을 자세히 보십시오. 제가 위성 전원을 껐다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켰다 3번 반복하겠습니다. 그리하면 당신은 캄캄한 밤하늘에 뜬 별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기이한 일을 목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국정원이 당신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촬영해서 본사로 전송하는 업무를 배당받았습니다. 물론 불법입니다. 이 모든 것은 불법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에 대한 자료는 모두 폐기처분했으니까요. 저는 불복종을 선택했습니다. 이곳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게 되면 복잡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당신을 돕기로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이곳에서 가장 힘든 업무는 고독과의 싸움입니다. 보이는 것은 오직 캄캄한 우주밖에 없으니까요. 누구와 대화를 할 수도 없습니다. 이 공간 안에는 나밖에 없습니다. 대화를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메시지는 통화가 아닌 문자 전송으로 이루어지니까 말이죠. 이 정지 궤도 위성에 오르기 전에 본사에서 1kg 미만으로 개인 소지품을 소지할 수 있다고 해서 영화 시디 몇 개 가지고 갔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영화 << 첨밀밀 >> 입니다. 보고 보고 또 보아서 이제는 100번도 넘게 본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장만옥이 연기한 대륙인은 당신 고향과 같더군요. ●●● 님도 중국 광주 출신이시죠 ? 장만옥도 광주 출신입니다.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인연이라면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만나게 되고, 인연이 없으면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우리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 지상에 발을 내딛는 해, 그해 첫눈 내리는 날에 광화문 광장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 2008. 6. 26 별에서 온 남자, 곰곰생각하는발
그는 sk텔레콤 상업용 유인 인공위성에 탑승한 우주인이었다. 광활한 우주에서, 캄캄한 밤하늘에서, 죽음 같은 침묵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는 그의 도움으로 국정원이 짜놓은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를 얻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연단에 오른 가수 주현미가 첨밀밀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집회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였지만 민중의 호응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그동안 참고 참고 또 참았던 설운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고개를 숙인 나는 서럽게 울었다. 옆에 있던 시위 참가자 한 명이 수건을 건내며 말했다. " 울지 마세요. 여기, 광장으로 나온 모든 사람들도 다..... 울고 싶은 마음일 겁니다. "
그 다정한 위로에 고개 숙인 나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수건을 건낸 사람이 말을 이었다. " 당신을 오랫동안 보아왔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가까이에서 당신을 보기는 처음이군요 ! " 나는 눈물을 거두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달빛처럼 반쩍거렸다. 달콤한 노래가 허공에서 웅웅 울렸다." 웨량따이뱌오워디씬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었어요. " 그가 웃자 나도 웃었다. 내가 말했다. " 이 자리, 박근혜 때문인가요, 첫눈 때문인가요 ? " 그가 필립 말로우처럼 대답했다. " 키스해도 되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