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향뎐 >> 에서 가장 뻔뻔한 인물은 변학도'가 아니다. 변학도보다 더 뻔뻔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암행어사 이몽룡 되시것어요. 16살에 춘향이를 만났다고는 하나, 이미 그 전부터 현대판 룸살롱인 기방을 출입하며 음주와 성매매를 자연스럽게 하시었으니 지금이었다면 < 세태 보고 : 지도층 자녀들의 탈선 이대로 좋은가 ? > 라는 기획 취재에 음성 변조된 목소리와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로 등장했을 이력'이다. 이몽룡이 들락날락거린 곳이 고을 사또와 같은 세도가들이 드나들던 물 좋은 룸살롱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몽룡 집안이 얼마나 빵빵한 가문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니나 달라, 그는 한양에 살다가 남원 부사로 발령받아 내려온 세도가 아들이었다.
노력 없이도 선택 받는 존재요, 놀고 먹어도 굶어 죽을 걱정이 없는 지도층 양반 가문 아들이 바로 이몽룡이다. 그 지도층 자녀의 남원 기방 출입기'가 < 춘향전' > 이다. 사실 변 사또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당시 기생이란 신분은 관아 소속이었다. 타관 벼슬아치들이 방문하면 기생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그들이 해야 할 임무였다. 그러니깐 변학도'가 수청을 들라, 고 했을 때 춘향이가 거절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직무 유기다. 그 시대 눈높이로 보자면 수청'은 자연스러운 요구였던 셈이다. 그런데 사랑에 눈이 먼 춘향은 수청 대신 숙청'을 받기로 모진 결심을 한다. 한 마디로 목숨 걸고 사랑한 것이다. 아, 업고 놀자던 그 말 !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은 목소리와 솜털 같은 수염 그리고 여드름은 얼마나 멋있었나 !
춘향전 내용 모르면 간첩이기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바로 클라이막스로 가자. " 고약한 년, 지금 당장 저 년 목을 쳐라 ! " 라고 변 사또가 고함을 치는 순간, 때마침 이몽룡과 졸개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 어사출또'요 ! "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몽룡은 얼굴을 부채로 가린 채 고개를 숙인 춘향 앞에 등장한다. 그는 자기 정체를 숨긴 채 생글생글 웃으며 춘향이에게 유도 신문' 을 한다. 대중에게 각인된 이 장면은 대충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 허어, 네가 기생 주제에 한 남자에 푹 빠져서 변 사또의 수청을 거절했다는 그 기생이더냐 ? 변학도 저 놈이야 악랄한 탐관오리'이니 그렇다고 치자. 내 변 사또를 혼내줬으니 오늘 밤은 내 수청을 들거라 ! 기생 주제에 어사 수청마처 거절하면 어찌 되는 줄 아느냐 ? 호호호호호... "
내가 << 춘향전 >> 에서 문제 삼는 장면이 바로 이 부분이다. 어사가 된 몽룡은 모진 고초로 인해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춘향을 보며 측은한 마음을 품다가 이내 흔한 한국 남자의 속내를 드러낸다. 죽기로 결심한 춘향을 다시 한번 시험하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는 " 해학 " 으로 이해할 부분을 " 해악 " 으로 이해한다고 군소리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명문가 패밀리가 되기 위한 자격 심사 비스무리하다. 그가 던진 질문은 성 윤리 테스트 같다. 이몽룡은 변 사또보다 백 배는 비열하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한 여인에게 한다는 게 고작 청문회 놀이'더냐 ? 왜 갑자기 이몽룡은 춘향이 품고 있는 속내가 궁금해진 것일까 ? 만약에 춘향이가 수청을 들겠다고 말한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되었을까.
이몽룡이 춘향 속내를 떠볼 때, 춘향이가 " yes " 라고 말하는 순간 춘향은 모든 것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춘향이가 옥살이에 지쳐서 어사가 내린 청을 허락했다면 어떻게 될까 ? " 이 몸, 사악한 변 사또에게 줄 수는 없으나, 고결하고, 고결하고, 고결하신 어사 나으리시라면 기꺼이 수청을 들겠나이다. 긴긴 옥살이 다시 할 생각에 앞이 캄캄하니, 오늘 밤 어사 나으리를 향해 빗장처럼 걸린 비단 옷고름 풀어드리지요. 목욕재계하겠사오니 아랫것을 시켜 창포 달인 물을 받아주시옵소서. 오늘, 화끈하게 놀아 보아yo ~ o, yeah ! " 사건이 그렇게 흘렀다면, 외간 남자와 화끈하게 놀자는 춘향의 말에 이몽룡은 여전히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생글생글 웃을 수 있을까 ?
아니면 얼굴을 가린 부채를 거두고는 정색을 하며 " 어이 없어, 증말 ! 너, 낯설다. 되게 낯설다. " 라고 화를 낼까. 설령, 춘향이가 당차게 어사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해도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 춘향전, 그 후 >> 은 이몽룡에게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지만 춘향이에게는 해피엔드일 가능성이 더 높다. 기생은 절대로 정실부인이 될 수 없는 법. 기껏해야 첩이요, 첩이 낳은 자식 또한 기껏해야 서자가 되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해 호부호형을 허해 달라고 발악을 할 뿐이다. 이래저래 이몽룡은 참... 뻔뻔하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수청을 거부한 애인에게 한다는 짓이 고작 정절을 시험하기 위한 몰래카메라' 였던 것이었나 ?
고전 << 춘향전 >> 을 현대판 막장 드라마인 << 사랑과 전쟁 >> 스타일로 각색해 보자. 남편 이몽룡은 아내 춘향을 테스트하고 싶어 한다. 그가 짠 각본은 스타킹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강도 행세를 하며 아내를 겁탈하려는 계획이다. 아내는 과연 목숨 걸고 자신의 정절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 이 막장 드라마 제목을 << 위기의 여자 >> 라고 하자. 내가 보기엔 << 위기의 여자 >> 서사와 << 춘향전 >> 서사는 도토리 키재기'다. 둘 다 막장이라는 소리'다. 이몽룡이 나쁜 자식인 이유는 자신은 춘향이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을 향한 춘향이의 사랑을 시험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사랑을 시험한다는 것은 이미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니 이 말은 곧 사랑에 균열이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몽룡은 춘향이를 적어도 온몸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은 춘향이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춘향이에게는 절대 사랑을 강요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 사랑을 시험하는 게 나쁜 행동인가 ? > 라는 질문이 반드시 < 사랑을 시험하는 것은 나쁜 행동 > 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질문을 던지는 자 스스로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상대로부터 절대 사랑을 확인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간보는 행위는 나쁘다. 그리고 이몽룡은 개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