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맛있오 씨와 그 딸내미는 어떻게 대한민국을 점령했나

 

 

 

 

 

 

김기영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 << 하녀 / 1960 >> 가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10년 뒤 같은 작품을 리메이크한 << 화녀 / 1971 >> 를 만든다. << 하녀 >> 가 A급 영화였다면, << 화녀 >> 는 B 무비'였다. 이 영화 또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 잊을 수 없는 명장면 " 이 수두룩하지만 인상 깊은 장면 하나를 고르라면 닭집 데이트 장면'을 뽑겠다. 하녀는 집주인 남자를 < 칠성 전기 통닭 구이 영양 쎈타하우스' > 로 초대한다. 하녀 입장에서 보면 칠성전기통닭구이영양쎈타하우스는 고급 레스또랑 못지 않은 장소'다. 격식을 차린 데이트 장소였다. ( 필자로써 이 글을 읽을 독자에게 작은 바람 하나를 말하자면 : 철성전기통닭구이영양쎈타하우스'라는 상호를 읽을 때에는 쉼없이 단숨에 읽어주세요. 멘델스존 풀네임 "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 라는 이름을 단숨에 읽어야 세에에에련된 것처럼.... )

 

하녀는 협박 섞인 애걸복걸( 집주인 사내와 몸을 섞었다는 이유로 ) 로 남자를 유혹하려고 하지만 남자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남자가 떠나려고 할 때 하녀는 비장한 목소리로 외친다. " 닭 잡숩고 가요 ! " 하지만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남는다. 하녀는 빵 대신 닭을 뜯으며 운다. 눈물 젖은 닭이다. 현대인은 울면서 칠성전기통닭구이영양쎈타하우스 닭을 뜯는 하녀를 이해 못하겠지만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면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당시 전기구이 닭은 국민 간식'이 아니었다. 이벤트 음식에 가까웠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나는 이별 앞에서 침이 고인 적 있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심정으로 여자를 호프집으로 불렀다. 하지만 여자는 단호했다. 나는 슬퍼서 눈물이 났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때론 격렬한 몸짓을 섞으며  술만 마셨다. 여자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안주로 시킨 닭다리 하나를 허겁지겁 뜯었다. 슬픔보다 강한 건 식욕이었어 !  우리는 닭 조각 일곱 개를 남겨둔 채 헤어졌다. 이별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곱 조각이나 남겨두고 떠났다니 ! 체면이고 뭐고, 하녀처럼 용기가 있었다면 야멸차게 떠나는 애인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을 것이다. " 닭 잡숩고 가요 !! "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제 < 닭 > 은 서민들이 즐겨 먹는 국민 간식이 되었고  < 치맥 > 은 대한민국 대표 문화가 되었다. 공중파 전지현 치맥 먹방은 이제 중국 대륙을 휩쓸고 있는 중이다.  닭 입장에서는 심란한 소식이다. 전지현을 향해 닭똥집'이라도 던져야 할 판이다.

 

내가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생긴 버릇은 읽고 싶은 신간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예전처럼 바로 구매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전략적 공천을 통해 이 책이 뽑히기를 기다릴 작정이다. 정은영의 << 대한민국 치킨전 >> 은 치킨 발전사로 본 대한민국 사회상을 다루는 미시사 분야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 미각의 역사 " 따위는 온통 바깥 나라 사람이 쓴 미식견문록'이니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인이 쓴 한국 식문화에 대해 알고 싶다. 닭의 계보학'이라고 할까 ? 닭은 진화했다. 백숙에서 전기통닭구이로, 전기통닭구이에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으로, 켄터기 후라이드 치킨에서 양념 치킨으로 진화를 거듭했고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동네를 온통 점령한 것은 닭'이었다. 

 

계급을 A, B, C로 나눈다면 A계급은 닭을 시키고,  B계급은 닭을 튀기고, C계급은 닭을 배달한다. 여기에 열외 계급인 특권층(재벌, 정치가 따위)을 포함하면 D계급은 닭을 지킨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닭 공화국이다. 청와대 안주인도 닭이요, 동네 가게를 점령한 것도 닭 가게'이니 말이다. 닭 가게'라는 말이 나와서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박근혜 대통령 아버지 이름이 " 닭고기 맛있어 " 가 아니었던가 ! 닭의 지배'는 글로벌 현상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맥도날드는 노동 시장을 변화시켰다. 조지 리처의 <<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 는 맥도날드가 어떻게 포드 시스템(포드주의)를 무너뜨렸는가를 자세히 다룬다. 맥도날드는 개나 소나 닭을 튀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든 재료와 레시피는 본사에서 공급한다. 시간과 온도만 체크하면 끄읏 !

 

기술력이 필요 없으니 노동력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한다. 기술자를 없애는 것이 맥도날드의 전략이었다. 맥도날드는 고급 기술자에게 월급을 주는 대신 시스템을 만드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이 전략은 전통적 노동 시장을 붕괴시켰다. 우리가 맥도날드 치킨을 뜯으며 아메리칸 스타일을 흉내 낼 때, 노동자의 삶과 일터는 망가졌다. 이제 현대인은 세 가지 계급으로 나뉘었다. 닭을 시킬 것이냐, 닭을 튀길 것이냐, 닭을 배달할 것이냐 ? 영화 << 화녀 >> 에서 하녀인 명자가 일하는 곳은 서울 근교 에서 양계장을 하는 집이다.  오, 오오 ! 닭장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잡는다. 어쩌면 김기영 감독은 예언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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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1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12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슈퍼고양이 2014-07-1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은 짭쪼롬한 교촌 치킨이 생각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7-12 09:16   좋아요 0 | URL
마늘치킨 먹고 싶군요. 장거리연애는 잘하고 계십니까 ?

toqur 2014-07-12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옛날에 프랑소와 오종의 엽기발랄 집약이라던 [시트콤]이란 영화를 보고
나중에 김기영의 [하녀]를 보고 [화녀], [충녀]를 보면서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오종이 김기영 감독 영화를 흉내낸 건 아닐까 확 의구심이 들 정도더라구요.
더구나 오종은 김기영 감독의 엽기와 계급의식에 째비가 안 되는.. 정말 앞서간 감독이란 생각이 듭니다.

고교 시절 이서방 양념치킨을 처음 맛보고 받았던 쇼크(?)가 생생하네요. 치킨 맛의 신기원이었던. 본문에 위배되는 얘기이긴 하지만 :)

곰곰생각하는발 2014-07-12 09:18   좋아요 0 | URL
글구보니 김기영과 오종이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거 같근요. 전혀 생각치 못했는데 비슷해 보입니다.
기영의 < 살인나비를 쫒는... > 요거 함 보십시요. 아주 기가 막히게 후진 영환데 엄청 웃깁니다.
섹스를하는데 뻥튀기 기계에서 펑펑 소리를 내며 펑튀기 과자가 벌거벗은 남녀 몸 위로 쏟아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 그거 보고 엄청 웃었습니다. 김기영 미친 감독이다... ㅎㅎㅎㅎㅎㅎㅎㅎ

페리카나 치킨은 기억나는데 이서방 치킨은 기억이 안나네요... 페리카나 아작도 있나 모르겠네요..

toqur 2014-07-12 20:5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 글로만 읽어도 웃겨요 ㅎㅎㅎ
나중에 꼭 보겠습니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마립간 2014-07-12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닭고기 맛있어' 뒤의 '()' 안의 글은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저는 확실히 계급 B, C는 아닌데, 그렇다고 우리집 튀김닭 총량제 1년 12마리에 걸려 마음대로 A 계급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니, A 계급도 아니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7-12 09:21   좋아요 0 | URL
첫 문장을 제가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 이 부분 말이죵.. ㅎㅎ

1년에 12마리면 정말 적게 드시는군요. 전 한달이 2마리 정도 먹는 거 같습니다. 요즘은 서로 입맛이 달라서 예를 들면 한쪽은 삼겹살 좋아하는 반면 다른 쪽은 삽겹살 못 먹어서 해물 쪽으로... 반면 삽겹살 좋아하는 사람은 해물 못 먹는 경우... 이럴 땐 치킨으로 합의를 보면 딱이더라고요..ㅎㅎㅎ

마립간 2014-07-12 12:01   좋아요 0 | URL
(다카기 마사오)요. 명시적으로 보니 이중구조의 충격이 완화되는 것 같아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7-12 12:3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얼릉 지워야지..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