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동 더하기 25, 읽어 보셨나요 ?

 

 

영국 프리미어 축구 클럽 대항전'에 빠지면 국내 K리그 클럽 대항전'은 재미가 없어서 못 본다. < 네덜란드 : 독일 > A매치 경기를 보고 나서 곧바로 < 베트남 : 캄보디아 > A매치 경기'를 볼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이라고 할까 ? 풋볼이 아니라 똥볼이다.  " 레베루(레벨) " 가 다르다. 사대주의적 속물 근성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국내 K리그 경기는 거품 빠진 미지근한 맥주 맛이 난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에 빠지면 한국 프로야구는 시시하다 ! 국내에서 홈런 타자로 활동하는 용병 선수들이 대부분 메이저리그에서 방출된 선수들이니 실력 차를 굳이 비교 평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나는 엘지 팬으로써 야구 중계를 보는 낙으로 살고, 

 

종종 야구장을 찾는 편이지만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다가 한국 야구를 보면 전국 고교 대항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 메이저리그 선수, 특히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 수염을 보다가 반들반들한 국내 프로야구 선수 턱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에 응원 문화도 한몫 한다. 치어리더와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율동을 하는 중년을 보라 !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 야구장이 도떼기시장도 아니고 음악 틀어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풍경을 보면.... 할 말은 많다만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 그냥 < 정 > 때문에 본다. 하지만 어쩌랴, 관심이 있어야 실력이 느는 법이고, 실력이 있어야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칠 수 있으니 국내 축구와 야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야 한다. 그래야 류현진이나 손흥민 같은 선수가 나오는 것이다. 우, 하다가도 아, 하게 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조은의 << 사당동 더하기 25 >> 라는 사회학 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엄기호의 << 단속사회 >> 나 오찬호의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같은 사회학 서적을 읽게 되면 " 레베루 " 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내가 만난 몇몇 크레타 인'이 거짓말쟁이라고 해서 크레타 인'이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부분을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 에 빠지게 된다. 같은 이유로 몇몇 사마리아 인'이 착하다고 해서 사마리아 인'이라면 무조적 묻지마-보증'을 섰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과도하게 무리를 묶으면 편견과 차별을 낳는다. 몇몇 유대인이 돈만 밝히는 사채업자'라고 해서 유대인 전체가 사악하다고 주장하면 안 되고, 몇몇 목사가 패악스럽다고 해서 기독교 전체가 사악하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

 

<< 단속사회 >> 나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라는 책은 몇몇 사례를 전체인 양 부풀린다. 작가 김연수를 닮아서 감수성이 예민한 문학소녀들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수다맨이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라는 책에 대해 남긴 100자평은 예리하다.

 

" 삼분의 일쯤 읽다 덮었다. 이 저자는 뭔가 착각하고 있다. 사회학적 글이라면 직관이나 귀동냥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 자료를 통해 논리적 증명을 해야한다. 단순히 주변인 몇 명의 사례를 들먹이며 `이십대 개새끼론`을 펼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이 책은 꼰대의 글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 "

 

 

프로이트는 같은 정신분석의는 귀동냥에 의존해도 되지만 사회학자가 귀동냥에만 의존하게 되면 위험하다. 오찬호는 교양 있게 < 괴물이 된 이십대 > 라고 표현했지만, 이 표현을 고양이 혓바닥처럼 까칠한 저잣거리 입말로 번역하자면 < 이십대 개새끼론 > 이다. 하지만 나는 오찬호의 사회 분석 방식(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 찬성하지 않을 뿐이지, 이십대 개새끼론'에는 찬성한다. 단, 선행 조건이 붙는다. 삼십대 개새끼론, 사십대 개새끼론, 오십대 개새끼론, 육십대 개새끼론도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꼰대'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바로 " 왕년 " 이다. 갈 왕 : 往 에 해 년 : 年 으로 옛날'이란 뜻이다. 왕년에 잘 나가지 않은 사람 어디 있나 ? 왕년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중년 있었던가 ?

 

오찬호는 < 왕년에 ~ > 라는 프레임을 작동시켜서 왕년에 우리는 이랬는데 왜 너희들은 팔 월 한낮에 늘어진 엿처럼 시들시들하냐고 질타한다. 인간은 " 상황적 동물 " 이다.  직면한 상황에 따라 행동은 달라진다. 80년대 상황과 2000년대 상황을 배제한 채 오로지 현상만을 놓고 분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차별에 찬성하는 이십대'가 있다면, 차별에 반대하는 이십대도 있다.  오찬호는 차별에 찬성하는 몇몇 이십대를 마치 전체인 양 말하고는 혀를 끌끌 찬다.  엄기호의 << 단속사회 >> 도 분석틀로 사용된 실험군'이 지나치게 협소하고, 진단은 성급하다. 소설가는 다작을 할 수 있지만,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자가 다작을 하게 되면 내용이 부실하게 된다.

 

<< 단속사회 >> 는 전작인 <<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후속편 같다. 전작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한다. 마치 팔도비빔면 같다. 왼손으로 비벼도 되고, 오른손으로 비벼도 된다. 그게 그거라는 말이다. 조은의 << 사당동 더하기 25 >> 는 가난한 가족을 25년 동안 찾아다니며 기록한 내용이다. 엄기호와 오찬호의 책이 < 겉절이 > 같다면 이 책은 < 묵은 김장 김치 > 다. 겉절이는 훌륭한 반찬이기는 하나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일 수는 없다. 반찬을 원한다면 호호 형제(엄기호+오찬호) 가 만든 겉절이를 추천하지만, 찌갯거리를 원한다면 조은이 푹 담근 묵은 김치를 권한다. 대학에서 29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던 조은은 정년을 맞아 < 사회학은 현장이다 > 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이 제목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엄기호와 오찬호가 귀'만 열었다면, 조은은 귀를 열고 눈으로 보고 발로 뛰었다. 그녀는 섣불리 진단하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리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가난에 대해 말한다. 무뚝뚝한 성실성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분석가의 부끄러운 욕망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조은은 정금선 할머니 가족이 별탈없이 지내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를 내심 기대한다. 기승승승'만 있는 스토리보다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가 재미있으니깐 말이다. 그리고는 그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이 책은 관찰과 기록에만 그치지 않고, 분석가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반성하는 과정이 담겼다.

 

참, << 사당동 더하기 22 >. 라는 다큐멘터리 시디'는 이 책을 살 때 덤으로 나온다.  누군가가 나에게 << 단속사회 >> 나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라는 책이 읽어볼 만한 책이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당신에게 되묻겠다. " << 사당동 더하기 25 >> 읽어 보셨나요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다맨 2014-07-08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이지 사당동 더하기 25는 걸작이라 불러도 아깝지 않지요!! 저도 작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무뚝뚝한 성실성'이 배어난 글쓰기란 이런 거구나, 하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에 비해 오찬호 글을 읽고 나면, 곰곰발님 말씀처럼 '레베루'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요...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겉절이보다도 '다꾸앙(단무지)'에 알맞아 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8 00:50   좋아요 0 | URL
저도 사당동은 작년에 읽었습니다. 이 글은 오찬호에 대해 쓰려다가 딱히 할 말이 없더군요. 그래서 사당동과 비교하게 되더군요. 모범 답안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