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를 위한 변명

 

 

 

 

 

최근에 나는 두 남자에 대해 말했다. 서평을 쓰기 위해 두 사람을 호출하다 보니 그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끌려나와 돌팔매를 당한 느낌이리라. 물론 그들이 내 글을 읽을 턱은 없지만, 혹여...... 내 글을 읽는다면 불편하지는 않을까 ?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두 남자를 위한 변명'이다.

 

속초에서 만난 남자는 하급 관리는 아니었다. 지점 지점장이었다. 중간 관리직에 속했다. 숙소와 직장은 무척 가까웠다. 걸어서 5분 거리 안에 있었다. 점심과 저녁은 직원 식당에서 해결했다. 본사에서 파견된 지점장들은 법인 카드가 있어서 한도 내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서 유흥업소에서 양주를 마시며 흥청망청 술을 마셨지만 그는 다른 지점장과는 달랐다. 직원들과 술자리를 자주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와 같은 뜨내기와 술자리를 갖거나 혼자서 술을 마셨다. 그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생각해 보라, 타향에서 혼자 타관살이하는 사내를 ! 집에 도착하면 6시 5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아픈 딸아이 수술 걱정을 하다가, 본사에 편입되지 못하고 파견 근로자로써 지방 변두리 생활을 해야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 하다가, 미래를 생각하다가, 이내 자기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닌가라는 근심으로 이어졌다. 잡생각이 늘어날수록 우울도 깊어졌다. 그에게는  < 생각 > 보다는 생각을 없앨 수 있는 어떤 < 몰입 > 이 중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결과가 청소였다. 청소를 하면 잡생각이 들지 않았고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날마다 침대보를 빨고 이불은 볕에 말렸다. 그러다 보면 밖은 어두워졌고 몸은 피곤했다. 꿈이 없는 조용한 잠이 이어졌다.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청소도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가스 레인지 전용 세제와 화장실 변기용 세제 따위를 샀다.

 

가스레인지를 반짝반짝 공들여 닦았을 때, 남자는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자동차 세차를 위한 청소 도구만 해도 수십 가지'였다. 자동차 바퀴 안쪽까지 싹싹 닦았다. 꿈이 없는 조용한 잠이 점점 깊어졌다. 누군가는 황금 같은 시간을 쓸데없는 데 사용했다고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가스레인지나 자동차를 분리해서 청소를 할 시간에 승진 시험에 유리한 영어를 공부하거나 직장 내 사교 활동에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 라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퇴근 후 생활을 " 일의 연장 " 으로 이어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훌륭한 직장인보다는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결국 그는 퇴사를 결정했다. 파견 근무, 십 년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가 떠나던 날, 나는 그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지는 못했다. 전날, 나는 술에 취해서 소주병을 달방 벽을 향해 던졌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침대가 온통 피투성이였다. 눈이 빠지도록 그리웠던 여자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슬퍼졌고, 느닷없이 화가 났다. 그리고는 벽을 향해 마시다 만 소주병을 내던졌다. 침대는 벽에 가까이 붙어 있어서 유리 조각이 고스란히 침대에 쌓였고, 나는 유리 조각 위에서 잠이 들었던 것이다. 유리 조각이 사면발니처럼 내 등을 파고들었다. 꿈이 없는 조용한 잠이었으나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통증은 뒷등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아팠다. 섹스가 끝나면 여자는 창문을 열어 밖을 보고는 했다. " 참... 이상하지 ? 당신과 함께 있는 날에는 항상 비가 내렸어 ! 오늘도 비가 내리네. 어제까지만 해도 화창했던 날씨였는데...... "

 

나는 일어나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걸어서 30분 거리였지만 택시를 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등에 박힌 유리 조각을 뽑고 링거주사를 맞았다. 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사이, 그는 속초를 떠났다.

 

 

 

서울역에서 만난 사내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명문대 신학생이었고 신앙심이 깊은 사내였다. 어떤 이는 내가 쓴 글을 읽고 공감 능력이 부족하거나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지만, 내가 가까이 지켜본 바로는 그를 단정적으로 어떤 부류에 속한다고 말하기에는 매우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는 폭력을 싫어했고, 겸손했으며, 상냥한 사람이었다. 결국 성직자의 삶은 포기했지만 동네 작은 학원을 운영하면서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이에게 매달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는 신문보급소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서 재판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재판 과정에서 진범이 잡히는 바람에 풀려나올 수는 있었지만 진범이 잡히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살인 자체보다 살인 현장에서 태연하게 아침밥을 차려 먹고 학원으로 가서 열심히 공부했다는 그 사실이 더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왜 그랬을까 ? 아무도 모른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하나님 말씀을 외면했던 그는 신학생이 되었고 성직자를 꿈꾸었다. 이 이율배반 앞에서 그는 혼란스러웠을까 ? <<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는 아버지에게 10년 동안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자가 직접 쓴 수기'다. 아버지는 딸을 성폭행한다. 딸아이 나이 아홉 살이었다. 그날 이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아버지는 딸의 침대로 향했다고 한다. 만약 거부할 때에는 무시무시한 폭력이 이어졌다고 !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녀 또한 희생자였다.

 

딸을 지키기에 자신은 너무 연약했고 남편은 성난 발톱을 가진 무서운 짐승이었다. 짐승 같은 아버지가 다니는 직장은 교회였다. 그는 목사'였다. 주말이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하나님 말씀을 설교했다. 그는 교회 신도들에게 친절했고, 겸손했으며, 상냥했고, 신앙심이 깊은 목사였다. 나는 친절한 타인을 믿지 않는다. 동료의 죽음을 외면한 그도 친절했고 짐승 같았던 그 목사도 친절했을 것이다.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서울역 사내와 짐승 같은 목사를 동일선상에 올려놓으려는 생각은 없다. 종교와 위선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예수를 사랑할 뿐이다. 부분을 전체로 확장할 생각도 없다. 기독교는 위대한 종교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서울역에서 만난 남자가 저지른 외면을 욕하지 않으련다. 타인이 나를 평가할 때 내린 하마평은 대부분 내가 친절한 남자'였다는 중론이었다. 하지만 틀렸다. 내가 당신에게 보낸 친절은 위선이었다. 나는 인간을 경멸했지만 내색을 안 했을 뿐이다. 인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사실 인문학은 ( 짐승 수 獸를 써서 ) 수문학에 가깝다. 인문학은 인간이 짐승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학문이다. 보름달이 뜰 때마다 두렵다.  온몸이 간지럽다. 털이 솟고, 이빨이 자랄 것만 같다. 혹시 나는 성긴 발톰을 숨긴 짐승은 아닐까 ?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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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2014-07-05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문학은 수문학,이란 문장이 인상적이네요. 사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들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동물을 통해서 인간을 보고 싶은 거죠. 다른 인간들을 통해서 자신을 볼 뿐이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5 15:17   좋아요 0 | URL
인성'이 위대하다고 찬양하게 되면 그것은 자기계발서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긍정적 마인드에 해당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제가 읽은 인문학서는 대부분 절대적 이성에 대한 경계'였습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끄집어냈고 다윈 또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한나아렌트는 악은 평범하다고도 했죠. 인간과 악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마립간 2014-07-0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표리부동하는 위선이라도 필요한 것인지, 수문학獸文學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게 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6 09:30   좋아요 0 | URL
위선은 인간의 본능이죠 ! 위선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ㅎㅎ

마립간 2014-07-07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in.co.kr/maripkahn/7063382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7 10:42   좋아요 0 | URL
네에, 찾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