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별일 없으시죠 ?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기 6-1
펑크 락 밴드'였던 삐삐롱스타킹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공중파 가요 프로에서 느닷없이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며 침을 뱉는 돌발 행동을 했다. 퍽유와 침 뱉기는 언더그라운드 무대(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에 의하면 " 언더그라운드 무대 " 라는 표현은 " 십오 촉 알전구 반지하 밤무대 " 로 순화)에서는 도발적 퍼포먼스'가 될 수는 있었으나 공중파 생방송에서 송출된 퍽유 전파는 일파만파 논란이 되었다가 이내 격파되었다. 이 사건 이후, 도발적 롹 뺀드는 어르신들에 의해 얄짤없이 짤렸다. 이 삐삐롱스타킹의 전신이 바로 삐삐밴드'이다. 1집 < 문화혁명 > 은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제대로 된 물건이었어 ! 보컬 이윤정이 부른 < 안녕하세요 > 는 철없던 시절과는 달리 예의 바르게 당신에게 묻는다. " 식사하셨어요 ? / 별일 없으시죠 ? "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하는 인사말인데 두 문장을 연속적으로 배치하면 남조선은 끼니 걱정을 벗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죽도록 일해도 삼시 세끼 피밥 먹기도 힘든 시절이 있었으니 인사말로 밥 먹었냐고 묻는 것이다.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별일 없는 것이다. 이 < 밥 > 이 현대에 와서는 < 돈 > 으로 바뀌었다. 왜 ?! 자본주의 사회'니까 ! 이제는 < 돈 > 이 있어야 별일 없이 살 수 있는 시대가 왔고, < 밥 > 은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과식은 빈곤의 아이콘이 되었고 소식은 우아한 교양이 되었다. 이제는 남편이 " 일요일엔 내가 짜빠게티 요리사! " 라고 명랑하게 소리쳤다가는 맹랑한 소리라며 따귀 맞기 딱이다. 하나뿐인 소중한 아이'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먹일 순 없다. 인스턴트는 임포턴츠와 동일하다.
시대는 변했다. 음식에도 품격이 있다 ! 요리사는 쉐프'로 바뀌었고, 전통'보다는 퓨전'이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신종 직업이 생겨났으며, 맛집 소개 방송은 날마다 전파를 타며 시청자의 혓바닥을 공략한다. 침이, 고인다. 이제 계층을 결정짓는 것은 < 강남 대 강북 대결 > 보다는 < 패밀리 레스토랑 대 김밥 천국 > 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누가 중국산 김치를 체내에 많이 흡수했느냐가 빈곤 지수를 결정하게 된다. 김밥천국에서는 먹기 전에 휴대폰으로 음식 사진을 찍는 이는 아무도 없다. 찍어서 올리는 순간, 당신은 당신이 소속된 계층을 폭로하게 된다. 미녀 스타들이 맛집을 순례하며 맛있는 요리를 한입 베어 물며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 때마다 일본 포르노 여배우가 " 기모치, 야메떼 구다사이 !!! " 라고 외치던 황홀한 얼굴이 생각난다.
식욕은 성욕이었던가 ? 미녀 스타들이 출연한 푸드 포르노를 볼 때마다, 미녀들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내 페니스는 침이 고인다. 한울아카데미에서 출간된 < 음식의 문화학 > 은 음식 문화를 사회과학적 틀 안에서 바라본다(라고 출판사는 말한다). 개인적으로 여러 저자가 쓴 텍스트를 책 한 권으로 엮어서 내놓는 방식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일단 한울'이라는 출판사를 믿고 고른다. 한울아카데미는 적어도 본전은 하는 출판사'다. 책에 대한 정보가 미흡할 때는 출판사를 믿고 고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목차를 보니 레비스트로스와 엘리아스 그리고 부르디외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모양이다. < 신화학 / 레비스토르스 > 과 < 문명화과정 / 엘리아스 > 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고 침을 뱉었던 무례한 삐삐밴드는 왜 우리에게 식사하셨냐며 별일 없으시냐고 물었을까 ? 1995년인 시대에 1945년 남조선 인사말이 귀에 거슬렸던 것일까 ? 이제 풍요로운 남조선에서는 굶어죽는 일 따위는 없으니 쪽팔리게 밥 먹었냐며 인사하지는 말자는 뜻일까 ? 과식이 소원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식이 우아한 시대가 되었고, 맛보다는 멋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멋보다는 어떤 식재료를 사용했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른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목화씨'를 붓 뚜껑 속에 숨겨 들여와 심었고,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은 날마다 물을 주며 무럭무럭 키웠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공통점은 음식 문화를 중요 정책 아젠다'로 설정한 정권이었다는 점이다.
박근혜는 불량 식품을 사회 악으로 규정했다. 박근혜 말투를 흉내 내자면 : " 국민 여러분, 먹거리 때문에 얼마나 걱정이 많으십니까 ? 불량식품 가지고 장난치면 살인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네, 네네. 알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명령입니다. 전화번호 주십시요. " 그런가 하면 이명박은 서양인들에게 고추장과 김치를 먹이고 싶은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 먹방 > 의 근사한 외교 전술, 한식 세계화 정책'이다. 각하는 캡사이신이 서양인의 똥구멍을 가차없이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고 싶었을까 ? 내가 아닌 남이 먹는 모습에서 대리 충족을 느끼는 심리가 먹방에 투영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틀린 말도 아니다. 각하는 비빔밥을 뉴욕 히트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내와 함께 불철주야 노력했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무상 급식에 대한 새누리당와 보수 집단의 격렬한 계급 장벽이었다.
오세훈은 요즘 세상에 굶어죽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애비라는 놈이 쪽팔리게 나랏돈으로 자식새끼 밥값을 대신하냐는 논리로 딴지를 걸었으나 돌아온 것은 그의 지능이 5세 훈이였다는 사실이 폭로된 일뿐이었다. 뉴요커들에게 비빔밥을 먹이기 위한 퓨전 개발비는 아깝지 않아서 나랏돈을 펑펑 썼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천민 자본이 민주주의를 밀어낸 이명박근혜 시대에는 십오 촉 알전구 반지하 셋방에서 굶어죽은 예술가가 있었고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동반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촌스럽게 내 이웃에게 묻는다. " 식사하셨어요 ? 별일 없으시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