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손
시와 함께 영화 시리즈 1탄 : 사랑하는 손 + 시티라이트
시티 라이트의 이 장면은 워낙 유명해서 내가 굳이 내용을 디테일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강산이 예닐곱 번’은 바뀌었으나, 아직까지도 이 장면보다 더 감동적인 재회’를 보여준 영화가 있었던가? 내 기억 속에는 없는 것 같다. 소녀 앞에 방랑자’가 나타나지만 소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녀가 수술 후 눈을 떠서 처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을 때, 정작 그 소녀가 볼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이러니’다. “ 사랑하면 보이나니...“ 라는 경구도 있다지만 또 어떤 이’에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찾아오는 “캄캄한 사랑”도 있는 법이다. 눈을 감으면 보이고 눈을 뜨면 보이지 않는 사랑 말이다. 꽃 파는 소녀는 꽃과 동전을 건네려다 남자의 손을 스친다. 이때 여자는 손의 촉감을 통해서 이 낯선 남자의 손이 익숙한 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앞을 보지 못할 때 늘 자신을 위로하고 토닥이던 그 손이다. 작고, 조용하고, 사려 깊은 손. 아름다운 여자’가 초라한 남자’를 바라본다. 초라한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의 시선’을 피한다. 여자’가 뭐라고 말을 하지만 소리가 없다. 소녀는 이 초라한 방랑자’가 자신을 구해준 키다리 아저씨’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녀가 묻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막이 대신한다. “당신이에요 ?“ 소녀가 던진 질문에 방랑자가 대답한다. 역시 자막이 대신한다. “ 이제는 볼 수 있소 ?“ 소녀가 대답한다. “ 그럼요, 이제는 볼 수 있어요 !“ 여자가 웃는다. 남자도, 수줍게 웃는다. 채플린이 위대한 점은 바로 지금부터다. 소녀는 개안 수술비를 마련해 준 남자를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손’을 통해서 알게 된다. 발화(소리)’가 아닌 수화(손)가 그 뜻을 전달한 것이다. 무성영화’는 발화 대신 수화’로 소통하는 영화’이다. 무성영화의 본질은 꿀 먹은 벙어리가 아니었던가 ? *자막 카드’란 일종의 수화’다. 공교롭게도 <시티라이트> 는 무성영화 때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유성영화 시절에 만들어진 무성영화’이다.
채플린은 무성영화의 시대’가 끝났음을 느낀다. 그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심정으로자신의 마지막 무성영화’를 찍는다. 무성영화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을 담아서 말이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라기보다는 멜로 드라마’에 가깝다. 굳이 타협점을 찾자면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자. 형식적으로는 두 남녀 간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본질은 무성영화에 대한 채플린의 애정이 담긴 프로포즈’이자 모노로그’이다. 오손 웰즈의<시민케인> 을 보고 나면 < 감탄 > 하게 되지만, 찰리 채플린의 < 시티 라이트> 를 보고 나면 < 감동 > 하게 된다. 찰리 채플린’은 신이 인간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이다.
■ 말 그대로 무성영화에서의 자막은 현대의 영화 자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막이 인쇄된 카드’를 말한다. 관객은 자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막이 쓰여진 카드’를 보는 것이다. 수화’란 자막 카드’와 같다. 다만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다 글을 쓴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손’은 말을 할 수 없다. 입’이 없기 때문이다. 손은 언제나 조용하다. 입이 없기 때문이다. 손은 침을 흘리지도 않는다. 입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손 모양’으로 만드는 수화는 입이 할 수 있는 발화의 기능을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다. 손’은 < 제2의 입’> 이다. 하지만 손’은 말을 하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대체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손은 종종 입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다. 사람들은 < 손 > 이 의사와 감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나이가 들면 그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손이다. 손은 입처럼 감정을 속이거나 미화하지 못한다. 긴장하면 손에 땀이 나고, 무서우면 손끝이 떨린다.
정직하다. 손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거의 모든 것’을 말한다. 기도할 때 우리가 두 손을 모으는 까닭은 인간의 신체 기관 중에서 손이 가장 정직하기 때문이 아닐까 ? 사랑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말의 성찬’보다는 진심을 담은 손’의 울림이 더 큰 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을 때’가 기억난다. 십 분이면 도착할 곳을 느리게 걸었다. 손을 놓았을 때 손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사랑한다는 고백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말했지만, 그때 이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침묵하는 손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말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손은 가장 훌륭한 문학이다, 세레나데다, 프로포즈다. 시인 최승자는 < 사랑하는 손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주는 가여운 안식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주는 가여운 평화
- '사랑하는 손' 전문
입은 믿을 만한 기관이 아니다. 비록 입에서 욕이 아니라 아름다운 말을 쏟아낸다한들 정직하지 않다. 손은 말이 없고 무뚝뚝하지만 가장 정직한 것들을 쏟아낸다. 이성복 시인이 입이 없는 것들에게 연민을 느끼듯이 최승자 시인 또한 입이 없는 것(손)에서 연민을 느낀다. 손은 입이 없기에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며 꾸미지 않기에 정직한 기관이다. 시인은 내 손과 네 손의 합일을 통해서(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기도하는 숭고한 손을 본다. 그녀에게 맞잡은 손은 " 가여운 안식 " 과 " 가여운 평화 " 를 기원하는 손이다. 그리고 "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 " 았을 때 흥건히 젖는, 부끄러워하는 손을 보며 말한다. 비가 내린다고, "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 " 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