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바다.
개복치에 대한 글을 읽다가 < 속초 개복치 된장 물회 > 라는 글이 있길래 접속했다. 식도락 코너'를 보니 올라온 글이 모두 속초 관련 맛집'이었다. " 어쩌다가, 오고가다가, 글쓴이와 한번쯤 마주쳤을 지도 몰라. " 목록 중에 < 바다네 > 라는 제목이 있길래 설마 하는 마음으로 클릭했다. 아, 낯익은 풍경 ! 우심방 좌심실'에서 베짱이'처럼 살던 찌르레기'가 찌르르르, 찌르르르 울었다. 내가 속초에 살 때 늘 가던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실비집'이어서 맛집으로 소개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올라온 음식 사진을 보고 이내 지금의 주인이 내가 알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진 속 밑반찬은 모두 먹음직스럽게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낸 것'처럼 보였는데, 내가 알던 바다네 식당'은 최소한의 양념만으로 요리를 해서 음식'이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지금의 주인은 전에 있던 간판과 인테리어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반가운 것이다. 그리운 바다네.....
아저씨는 강원도에서 보기 드문 강원도 좌파'였다. 긴 머리를 묶은 양반이었는데 정치색'이 진보적'이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하다 보면 늘 싸움이 나곤 했다. 좌파의 비극이리라. 그것도 강원도 좌파라니... 차라리 전라도 좌파'는 행복한 것이다. 좌파 아저씨'는 아이들 교육에서도 좌파적 성향이 강해서 초등학생 1학년인 바다 ( 아이 이름이다. ) 는 드럼을 배웠다. 머리는 노랗게 물들여서 사자의 갈기 같았다. 정치적 성향이 비슷했던 나와 강원도 좌파 아저씨'는 식당 영업이 끝나면 곧잘 술자리'를 열었다. 식당에 남는 게 술과 반찬이니 맘껏 취해 보드래요. 막걸리 열 통은 우습게 비우고는 했다. 바다 엄마'는 오고가는좌파들의갈치같은험담'에도 늘 방긋 웃고는 했다. 아이는 늘 내 무릎을 베개 삼아 잠을 자고는 했다. 그 식당... 무척 그립다.
바다 엄마'는 음식을 할 때 최소한의 양념만을 사용했다. 조미료는 아예 넣지 않거나 소량만 사용했다. 그래서 감칠맛이 부족해서 손님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떤 손님들은 굉장한 식도락이라도 되는 양 음식 타박을 하기도 했다. 양념 뭐, 뭐, 뭐, 뭐'가 부족하다느니, 제철 재료'를 잘못 골랐다느니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지랄하고 자빠졌네, 라고 생각했다. 더러운 거지 입맛 가지고 훈계 하는 꼴이 가관인 거라. 쳇, 자신을 절대 미각이라고 소개한 저 사람들은 똥에 미원을 첨가하면 맛있게 먹을 양반들이야. 똥이, 참 맛있어요 !!!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맛있다고 느끼는 맛은 사실 인공조미료 맛'이라는 사실이다. 감칠맛'이란 화학 성분으로 만든 가짜 맛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바나나 우유에 바나나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는 감칠맛에 환장한다.
나는 바다네 식당 주인'이 고마웠다. 인공 조미료 맛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돈 벌 생각이었으면 미원 범벅 요리를 내놨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바다 엄마'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내가 왜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냐고 물었더니 바다 엄마의 대답은 명쾌했다. " 우리집은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아요. " 아, 좋은 말이다. 바다 엄마도, 바다도, 강원도 좌파 마초 아저씨도 좋은 사람이었다. 바다는 많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바다 아빠는 열심히 이명박과 박근혜를 경멸하며 동명항 가게에서 난상토론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바다는 알고 있을까 ? 바다를 볼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는데 눈치 없는 바다는 가장 비싼 구구 크러스티'를 골라서 내가 속으로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바다는 2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난 늘 500원짜리 비비빅을 먹으며 동해바다를 바라보고는 했다. 내가 바다에게 물었다.
- 맛있니 ?
- 네, 아주 맛이 좋아요. 얌냠얌냠... 아저씨는 비비빅이 제일 맛있나 봐요 ?
나는 정색을 하고서는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방긋 !
네이버, 2012/02/14